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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또 오르면'과 '쉬어간들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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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르면 댓글 0건 조회 745회 작성일 10-02-0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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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지나가버림으로 끝나거나 없어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과거는 연속성을 가지고 현재를 관장하며 미래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때때로 추억이라는 과거를 가지고 가파른 현재의 삶을 위로하기도 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기도 한다.
 
문득 초등학교 여선생님의 추억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특히 풍금앞에 앉아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하면서 노래를 가르쳐 줄 때는 더욱 아름다웠다. 마침 교실의 창문으로 코스모스를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있으면 더욱 아름다웠다.
 
전쟁과 가난에 찌들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세대, 그러나 멋있는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새로 반이 편성되고 교실도 다시 배정을 받는다.
 
묵은 학년이 쓰던 교실을 새롭게 정돈하고 환경미화 심사라는 것을 받는다. 심사에 앞서 선생님과 학생들은 방과후까지 남아 청소를 하고 그림도 새로 붙이고 '급훈'이나 '우리반의 자랑'따위도 써 붙이곤 한다. 재미있고 달콤한 시간이다.
 
그때 선생님은 옛시조 두편을 단정한 붓글씨로 써서 교실 양쪽 벽면에 걸었다. 지금도 그 시조를 정확히 기억한다. 우리는 일년간 그 교실에서 공부하면서 늘 보며 외웠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하늘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놀라 하더라
또 하나는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였다. 앞의 것은 김천택의 시조요 뒤의 것은 황진이의 시조다.
그때는 매일 운동장 조회를 했다. 애국가 봉창, 묵념, 교장선생님 훈화, 주번교사와 교무주임의 전달사항등 어찌나 길고도 재미가 없는지 우리는 그때가 인내심을 함양하는 시간이었다.
 
 
어떤 때는 학생 한 두명 쯤 땡볕에 못이겨 쓰러질 때도 있었다. 판에 박힌 듯한 조회가 끝나면 군가를 부르며 열을 맞춰 교실로 입실했다.
 
동요 대신 살벌한 군가를 부르던 소년들,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년이냐/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또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그때의 군가는 대개 이런 내용이었다. 가난과 억압과 열악한 환경에 눌려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왜소한 시골 아이들은 이런 우악스런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입실해서 대하는 시조는 매우 상큼했던 기억이 난다. 뜻은 정확히는 몰랐다. 다만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다'는 뜻과 '달밝은 밤이니 쉬어간들 어떻냐'는 뜻은 대충 알았다.
 
두 편의 대조적인 시조, 하나는 근면과 끈기를, 하나는 낭만과 여유를 노래한 시조다. 선생님은 전쟁과 가난에 찌든 우리에게 이 두 가지를 다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근면과 끈기를 가르친 김천택의 시조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던 그 난세에,
그것도 초등학교 꼬맹이들에게 황진이의 시조를 가르치겠다는 발상은 쉽지 않았으리라. 아마도 그때 선생님은 황진이의 시조를 벽에 걸기 위해서 고심과 용기가 필요했을 터이다.
 
우리 어린이들은 이 선생님을 통해서 균형과 조화라는 마음의 양식을 은연중 터득하며 자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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