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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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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버리고 떠나기 댓글 0건 조회 686회 작성일 08-04-2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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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던 후배가 언론사를 돌연 그만뒀다. 함께 공연을 봐도 다음날 실어놓은 그의 공연평은 어찌나 '똑' 부러지던지.
 
더구나 짧은 글 속에서 빼놓을 게 하나 없는 알짜배기로 채워 놓은 인터뷰 감각이라니. 스무살 나이 차이조차 무색하도록 내 기를 꺾어놓던 인재가 사표를 낸 것이다.
 
그러나 1년 일정으로 세계를 돌다 오겠다는 한마디에 난, 모든 걸 다 이해한다는 얼굴이 돼 버렸다. 왜 그랬을까, 언제라도 바람처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슴 가득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일까.

"1786년 9월3일.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테니까."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의 첫 구절이다. 이미 작가로 유명해진 그였지만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무뎌져 버렸다.
 
그는 자신의 37세 생일 파티를 마친 뒤 여행가방과 오소리가죽 배낭만을 꾸린 채 홀로 역마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곤 1년9개월 동안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른다. 괴테에게 여행은 곧 숨막히는 일상으로부터 탈출이었으며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통해 진정한 예술가로 변모해가는 시간들이었다.
 
 그 기행문을 읽노라면 그가 여행길에서 어떻게 새로운 세계와 소통하고 있는지를 쏠쏠히 엿보게 된다.

천장까지 닿은 책들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방송원고 작업을 하는 나는 언제쯤 '이제 짐 꾸리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괴테처럼 여행가방을 챙겨들고 무뎌진 감각을 재충전하러 길 떠날 수 있을까.

남북조 시대의 화가이자 이론가였던 종병은 젊은 날 틈틈이 산수유람을 즐겼다.
 
한번 가면 돌아오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 들고 병 들어 여행할 수 없게 되자 사방벽과 천장에 그 옛날 여행길에서 봤던 기억들을 되살려 산수화를 그려놓는다.
 
그리곤 '가슴을 맑게 하고 진리를 바라보며(澄懷觀道)' '누워서 유람(臥游)'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을 그대로 묻어두고 살지 못해서 기어이 배낭을 꾸린' 후배는 보름 사이에 일본을 거쳐 태평양을 건넜다.
 
달고 살던 핸드폰을 해지하고 떠났으니 지금쯤 그의 손엔 카메라와 지도만이 들려 있을 것이다. 그의 여행 블로그에 들어가 봤다.
 
그가 사진 찍어 올린 에도시마의 카페가 앙증맞다. 카페 창으로 살포시 비치는 푸른 바다. 모니터 앞에서 나는 종병처럼 상상 속의 산수유람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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