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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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생님 댓글 1건 조회 959회 작성일 15-05-14 08:27본문
싫어하는 선생님으로는
지금 다니는 학교에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79%가 있다고 답했다.
진학사 황성환 기획조정실장은 “2011년, 2013년 조사 때와 비슷하게 많은 학생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으며, 성적을 올리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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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글로벌님의 댓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작성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글로벌 마인드를 외치던 1980년대 말이었다. 모 기업 회장님은 잦은 해외출장에 교육계, 문화예술인 등 명망 있는 분들을 초빙해 동반여행을 했었다. 하늘에서의 만남과 대화는 신선한 시도였으며 나도 초대를 받는 인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삶을 살아온 명사와 함께하는 여정은 의미가 많았는데,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회장님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스케줄이 짜여 있지만 교수님은 어쩌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공항을 나오자 뭔 시위라도 하는 양 야단법석이었다. 물결 치듯 하는 플래카드와 피켓에는 교수님을 환영한다는 글과 함께 몇 기생, 몇 기생이라며 서로 모시겠다는 아우성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가장 값진 일은 누군가의 참된 스승이 되는 것이라고 쓴 그 회장님의 글이 생각난다. 내일이 스승의 날이다.
결핍투성이였던 지난 시대엔 스승님이 많이 계셨다. 중학생 때 K선생님도 그랬다. 고정된 수입이 없는 나를 양친회와 연결해주셨다.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미국의 양부모가 매달 20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보내주는 복지단체였다. 하늘의 별 따기처럼 선정되기 어려웠고 3년간만 후원받을 수 있었다. 어린 가장들에겐 극빈을 면할 수 있는 고마운 기간이었다.
대학생 때는 연출의 대가이신 고 이원경 교수님을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괜찮은 목소리와 재능도 있었지만 연기의 기초교육이 안 돼 있는 것은 절대적 결격사유였다. 신구, 이호재, 전무송 같은 선배님들도 극진히 모셨던 이 교수님은 아주 깐깐하고 까다로우셨다. 대충이나, 얼렁뚱땅은 바로 불호령감이었다. 교수님께 무척이나 야단을 많이 맞았는데, 난 그럴 때마다 노트에 그 말씀을 깨알처럼 적었다.
성우 시험 보기 전날이었다. 칭찬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넌 배운 대로 하면 합격할 거다” 하시고는 휙 사라지셨다. 야속함과 고마움의 눈물이 떨어졌다.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어도 성우는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C급, D급의 성우로 말이다.
영화 ‘위플래쉬’도 스승과 제자의 열정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병적일 만큼 완벽함을 갈망하는 플렛처 교수는 제자 앤드루를 못 견디게 다룬다. 학대하듯 몰아붙이는 것은 예사고 열심히 함에도 그것이 최선이냐고 비아냥대고 조롱한다. 아울러 “오, 그만하면 됐어”라는 말은 쓰레기라고 소리친다. 80점에 만족하지 말고 궁극의 경지를 찾아내라고 계속 윽박지른다.
나야 그 교수에는 어림없지만 학교에서 나름 악명(?)이 있다. 우리 때처럼 치열한 열정이 부족한 것 같아 화도 내고 미주알고주알 잔소리를 해대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을 향한 뼈아픈 지적도 많다. 죽은 시민을 양산해 내는 곳이 지금의 대학이라는 질책까지 있다. 기업 입사 요령이나 전수하면서 취업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에 신경 쓰며 대학의 기업화에 열중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사회 변화에 막대한 책무를 지고 있는 대학이 비슷비슷한 커리큘럼으로 표준화된 학생들을 양산해 낸다면 그들이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며 미래에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고 우리 교육의 전반적인 딜레마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혁신적인 역할을 해야 할 분들이 바로 선생님이다, 이런 선생님들이 스승의 날을 맞으면서 편안함보다는 어색하고 불편한 속내를 어쩌지 못하며 매년 어정쩡하게 기념(?)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친다고 한다. 훌륭한 교사는 직접 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위대한 교사는 학생들 가슴에 불을 지른다고 한다. 위대함은 또 다른 경지다. 누군가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도 그렇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였던 마리 퀴리 박사의 언행 역시 또 다른 경지다. 그녀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위원회에서 날짜와 시간을 얘기하며 상 받으러 오시라고 전화를 했다. 퀴리 박사가 말했다.
“미안합니다만 그날은 선약이 있어서 참석할 수 없네요. 대학 강의를 하는 날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학생들과 한 약속이기에 꼭 지켜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