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아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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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등학생 댓글 8건 조회 3,690회 작성일 15-04-01 15:39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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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님의 댓글
아저씨 작성일아줌마님의 댓글
아줌마 작성일공무원님의 댓글
공무원 작성일학생은 공부나 잘해라님의 댓글
학생은 공부나 잘해라 작성일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님의 댓글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 작성일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
딱 한 번 그리스에 가봤다. 17년 전이다. 짧은 출장일정이라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아테네 해변에서 바라본 지중해의 그림 같은 노을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더 인상적인 건 이 나라 사람들의 낙천성이었다. 그때도 그리스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고 빈부 차도 가장 심한 나라였지만, 희랍인의 얼굴엔 근심도 조바심도 없어 보였다. 나라는 태평성대가 아닌데, 어쩜 국민은 그토록 태평할 수 있을까.
▶ 이성철<한국일보 산업부장>
아테네 도착 첫날, 현지 식당에 들어간 시각은 밤 10시 무렵이었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발걸음을 돌리려는 나에게 안내인은 “좀 있어 보라”고 했다. 잠시 후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내 식당은 만석이 됐다.
“이곳 사람들은 지금부터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새벽 한 두 시까지 먹고 떠들고 마시지요.”
불과 며칠간의 체류, 그저 슬쩍 들여다본 몇 가지 단면만으로 그리스와 그리스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적절치 않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고대문명을 창조한 위대한 민족이다. 세상의 진리를 찾아낸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의 후예다. 지금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좀 작다고, 인프라가 좀 부족하다고 찬란한 수천 년 역사를 가진 그리스를 경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만이다.
유럽의 사회복지와 경제위기
근면·성실만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교육받아온 한국인에게 그리스인의 생활태도는 게으름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리스인의 눈엔 기계부품처럼 사는 한국인이 딱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솔직히 그때엔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별 지장이 없고, 교육이며 의료며 노후연금이며 웬만한 건 국가가 다 해결해주는 그들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이후로도 유럽을 갈 때면 대체로 받는 인상은 비슷했다. 나라마다 똑같지는 않아도, 어쨌든 우리처럼 매일 전쟁 치르듯 살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배경엔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라가 기본적인 삶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시스템,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푸짐한 공짜점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지금 파국 상태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붕괴의 도미노는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등 남유럽 전체를 집어삼켰다. 멀쩡한 나라는 독일과 북유럽국가 정도뿐. 유럽 전역이 재정파탄의 화염에 휩싸여 있다.
원래 경제위기는 전염성이 강하다. 한 나라가 휘청거리면 이웃 나라도 흔들린다. 1997년 외환위기도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을 거쳐 한국까지 북상했다. 더구나 유럽은 유로 단일통화로 묶인 터라 감염속도는 더 빨랐다.
내가 느꼈던 유럽인의 여유, 그리고 지금 겪는 경제난은 동전의 양면이다. 바로 공짜 점심 얘기다. 돈이 없어도 학교에 다닐 수 있고(무상교육), 병원에도 갈 수 있고(무상의료), 직장을 잃어도 당장 생계는 보장되고(실업수당), 은퇴를 해도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연금) 훌륭한 사회안전망. 이 덕분에 유럽사회는 안정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재정위기의 쓰나미에 휩쓸리게 된 것이다.
사실 공짜 그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정부 능력만 된다면야 국민에게 무료혜택을 주는 것만큼 선정(善政)이 또 있을까. 독일이나 스웨덴, 노르웨이는 탄탄한 정부재정과 실물경제 기반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국민에게 공짜로 퍼줘도 괜찮았다. 그러나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재정능력이 안돼 결국 빚(국가채무)을 내면서까지 공짜 서비스를 제공한 탓에 굴욕과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2008년 리먼사태(글로벌 금융위기)가 없었더라면 유럽 재정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금융부실을 털어내고 침체된 경기를 살려내기 위해 유럽 각국이 공격적 재정지출정책을 썼는데, 그 결과 남유럽국가들의 취약한 국가재정이 한꺼번에 곪아 터지고 말았다. 언젠가는 올 수밖에 없는 재앙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밀어닥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정부재정 탄탄해야 무상복지 실현
이게 다 빚의 저주다. 빚은 중독성이 강해 멈춰지지 않는다. 작은 빚이 큰 빚을 낳고,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빚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끊기가 힘들다. 만약 그리스 정부가 복지지출을 축소하고서라도 빚부터 줄여갔다면 이런 참사는 오지 않았겠지만, 정치인도 국민도 부채감축의 고통보다는 공짜 점심의 달콤함을 택했다. 따지고 보면 리먼사태도 빚(대출)을 권한 금융회사, 기꺼이 빚을 낸 국민, 낮은 금리로 빚을 조장한 정부의 합작품이었다.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진 두 대형위기를 통해 세계는 빚의 위력을 실감케 됐다. 부채의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우리도 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옛말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했지만, 외상으로 소 잡은 사람의 결말이 어땠을지는 이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두 대형 위기를 통해 세계는 빚의 위력을 실감케 됐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했지만 외상으로 소 잡은 사람의 결말이 어땠을지는 이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