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 집단행동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위직 댓글 4건 조회 2,027회 작성일 14-11-14 14:24본문
댓글목록
제도도입 취지 살리고님의 댓글
제도도입 취지 살리고 작성일
제도도입 취지 살리고
로스쿨 통한 법조인양성제도
자리 잡으려면 시간 필요
대안없이 사법시험 폐지
혼란 불러올 수 있어 일정기간
로스쿨과 병행 고려해 볼만
국회 본회의 제268회 임시회 폐회를 몇 분 앞둔 2007년 7월 3일 23시 51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로스쿨법)'이 본회의에 상정되고 전격적으로 처리 제정됐다. 2009년 3월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개원돼 3년 과정 입학정원 2천명으로 운영됐고, 2014년 현재까지 3회에 걸쳐 변호사시험이 실시됐다. 우리나라의 법조인 선발제도는 지금까지 시행돼 오던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으로 이원화돼 있다. 그러나 기존의 사법시험은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지금부터 3년 뒤인 2017년을 끝으로 폐지되고, 2018년부터는 로스쿨체제로 일원화돼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만이 변호사시험에 응시해 법조인이 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 법조인 양성제도는 1949년부터 시행됐던 고등고시가 1963년 사법시험 제도로 바뀌었고, 사법시험 합격자는 2년 과정의 사법연수원을 거쳐 법조인이 됐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자 새로운 법조양성시스템에 대해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 미국식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국제화시대를 맞아 다양하고 전문화된 법조인력을 교육으로 양성해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법률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5년간 운영해 본 결과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어 이에 대한 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몇 가지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양하고 전문화된 인력을 교육으로 양성한다는 로스쿨의 설립 취지와 어긋나게 최근 교육과정이 변호사시험 과목 위주로 편성된다는 것이다. 시험 필수과목은 수강생들이 많으나 선택과목 중 학생들이 선호하지 않는 과목은 아예 수강신청한 학생이 적어 폐강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둘째, 로스쿨 제도가 법조계 진입장벽을 높여 사회계층간 이동을 막고 있어 올바른 법조인을 선발 양성하자는 원래 취지와 어긋나고 있다고 한다. 셋째, 현행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은 어느 정도 높지만, 로스쿨 졸업자의 변호사시험 응시기회가 5년 동안 5회의 제한이 있어 시험에 낙방한 사람이 누적되면 몇 년 뒤의 합격률은 50%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은 로스쿨은 상대적으로 입학경쟁률이 떨어질 것이고, 그것이 몇 년 지속되면 일본과 같이 운영이 어려운 로스쿨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매년 로스쿨마다 입학정원의 제한으로 예산확보의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일정 수 이상의 교원을 확보하고, 시설과 기타 인가조건을 충족하려면 재정부담이 많은데 학생 수는 정해져 있어 등록금만으로 운영하기가 어렵다. 로스쿨 인가 시 약속한 학생들에게 지급해야 할 장학금을 충분히 지급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최근 변호사 숫자의 증가로 인해 취업하지 못하는 변호사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심도있는 논의와 연구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로스쿨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변호사예비시험을 도입하자는 논의도 있는데,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도 소정의 예비시험에 합격하고 교육부장관이 지정하는 대체법학교육기관에서 3년간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경제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예비시험 합격 후 추가적인 3년 교육과정 수료라는 것이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최소한 국민에게 균등한 법조계 진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로스쿨을 수료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하다.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리고 로스쿨을 통한 법조인 양성 제도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대안없는 사법시험 폐지는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어, 법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일정기간 사법시험과 법학전문대학원을 병행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2차세계대전 전, 무대는 헝가리 부다님의 댓글
2차세계대전 전, 무대는 헝… 작성일
2차세계대전 전, 무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고급 레스토랑이다. 종업원 여자가 있다. 팜므파탈 형이다. 주인 남자 A가 그녀를 사랑했다. 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B도 그녀를 사랑했다. 여자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다. 남자 A는 남자 B와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말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같이 사랑해도 좋다는 의미다. "놓치기보다는 반만이라고 갖는 것이 낫겠다"는 대사는 한동안 회자된다. 얼마 뒤 또 한 남자 C가 등장한다. 여행 온 독일인이다. 여자에게 구애했으나 거절당하자 검푸른 다뉴브강에 투신한다. 뒤따라간 남자 A가 건져낸다. 전쟁이 일어났다. 남자 C는 점령군 독일군의 고급 장교로 등장한다. 엄청난 권력자다. 피아니스트 남자 B는 권력자로 돌아와 다시 여자를 욕망하는 그를 보고 좌절해 자살한다. 남자 C는 생명의 은인인 남자 A를 가스실로 보낸다. 남자 A를 구해준다는 말에 여자는 남자 C에게 몸을 허락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훌륭한 사업가로 변신한 남자 C가 추억속에 레스토랑을 다시 찾았다. 늘 찾던 비프 롤을 먹던 그는 목을 움켜쥐고 죽는다. 독살이다. 이어 백발의 한 여자가 샴페인을 치켜들며 행복해한다. 수십 년을 기다려 온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
이쯤 되면 아! 하고 이마를 탁 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사람은 꼰대소리쯤 들어도 될 법하다. 1999년 개봉된 영화 그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줄거리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공유한다는 설정이 우리 정서에 불편하지만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으며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다.
뜬금없이 영화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방학을 틈타 헝가리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방문 일정중 어느 하루,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영화속에 등장하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레스토랑은 부다페스트 도심 외곽 동물원 옆에 있었다. 고풍스러운 현관에는 교황·영국여왕·반기문총장 등 세계 저명인사가 다녀갔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순간 영화속의 한 여자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저마다의 인간관계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무엇이 인간의 영혼을 무너뜨리고 그 상처가 얼마나 지독하고 오래 가는지를 생각게 한다. 동시에 영화는 인간의 변신과 집념, 광기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더불어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약한 피아니스트는 권력자의 위세에 눌려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고, 부유하지만 무기력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남겨두고 운명에 순응한 채 가스실로 간다. 여자는 몸을 던져서라도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 하지만 도로에 그치고, 광기에 휩싸인 남자는 생명의 은인마저 가스실로 보내는 것으로 인간의 도리를 배반한다. 이런 장면은 우리게도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망에 따라 배신하고 낯을 바꾼다. 믿음과 신뢰, 사랑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는 하루가 다르게 빛바래져 가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지금까지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말 중의 하나는 의리다. 잔혹한 폭력영화라고 몸서리치면서도 느와르 영화를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의리가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보다는 동양에서 훨씬 강력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의리라는 말은 본래의 말보다는 패거리 정서 정도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 '의리없는 놈'이란 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건달들이 주고받던 '의리'는 원래는 인간의 참된 도리를 의미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나는 의리없는 한국 사회를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다. 의를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극단적인 태도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조차 없는 우울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의리없는 시대에 나 홀로 의리를 외치는 한물간 한 남자가 뜬금없이 '으리으리하게' 보이는 것이다.
타도님의 댓글
타도 작성일우울한일상님의 댓글
우울한일상 작성일
gioomy Sunday !!!!!!!!!!!!!!!
참 좋은 영화지요!
오래 전 처음 그 영화를 봤을 때 가졌던 강렬한 충격!
그리고 일곱번을 다시 보았고...
인간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본성과 유약하고 무력한 인간의 운명을 예감케 한 수작!
그 영화의 제목을 들으면 아직도 마음이 새근새근해 집니다.
요즘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상이 마치 그 영화의 배경시대와 비슷한 것 같아
엄청 GLOOMY 하네요.
인간은 없고 야만이 넘쳐 흐르는 시대.
오히려 그 야만이 지성과 정의로 치장되는 혼돈의 시대.
그래도 살아 남아야 처자식을 먹여 살리지요.
하루하루 잘 견디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