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와 지방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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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민이 댓글 0건 조회 811회 작성일 14-01-23 08:42본문
-손태규의 직필직론/동아일보-
많은 국민이 정치인들을 사정없이 욕하고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그들을 뽑아 정치를 하도록 했는지는 쉽사리 잊어버린다. 자신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선택을 했는지 반성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깨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정치에 눈 밝은, 국민을 두려워하는 인물이 뽑히겠는가. 선거와 부정부패가 늘 함께했던 것이 한국 정치사의 경험이다. 돈이나 연줄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이 선거를 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올해 지방선거는 민주주의를 위한 또 하나의 시련이자 실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깨어 있으려면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 언론은 후보자들의 인간성과 정책능력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국민의 대리인이다. 지역 언론은 주민 대신 가장 가까이서 지방행정과 지방정치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지방선거의 타락을 막아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깨어 있는 언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에 대한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언론으로부터 얻는 것을 사실상 포기한 지 오래라고 한다. 대부분 언론들이 자치단체장에게 줄을 섰다고 믿는다. 오로지 지사나 시장들의 치적을 홍보해주는 기사만 보도한다는 것이다. 선거는 애초부터 재선, 삼선에 도전하는 단체장들에게 치우친 불공정 경기가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언론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변명한다. 지방경제에는 지역 언론에 광고를 할 만한 기업이 드물다. 돈 주고 신문을 보는 주민도 별로 없다. 어디서 살아가는 돈을 버는가. 지자체 홍보 예산이 지역 언론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지자체는 수시로 광고를 내고, 언론사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많게는 수억 원의 협찬금을 준다. 언론사는 정체가 불분명하고 내용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숱한 행사들을 만들어 낸다. 어떤 도시에는 언론사가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만도 열 개가 넘는다. 그러니 언론들이 단체장들의 비위를 거스르기 어렵다. 선거 때는 더욱 그러하다. 비판했던 단체장이 재선, 삼선이라도 되면 협찬이나 광고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 한 지역 언론인은 “확실하게 밀어야 크게 받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단체장들은 언론의 강한 요구를 견딜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일부 언론은 단체장과의 거래 속에 여론조사를 왜곡, 조작한다는 의심도 받는다.
이런 언론을 국민들이 믿고 찾을 리 없다. 국민들이 외면할수록 언론들은 지자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단체장들은 언론의 영향력이 시답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선거를 겨냥한 헛소문이나 악의적 비난 기사를 막기 위해서 예산을 활용한다. 지자체들은 선거 해만 되면 언론의 어려운 속사정을 악용하기 위해 의회의 협조 속에 홍보예산을 늘린다(정당이 다를 경우 의회는 예산을 깎아버린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그래서 언론시장에서 사라지는 언론이 드문 것이다.
외국에서는 유수의 언론사들이 문을 닫고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기자들이 줄줄이 해고를 당한다. 한국에서는 인터넷 언론을 비롯한 언론사와 기자 수가 늘고 있다. 인구 100만 명이 겨우 넘는 도시에 20여 개 일간지가 난립한다. 돈 주고 신문 보는 독자가 100∼200명인데도 버텨나가는 신문사도 있다. 언론의 이유와 목적을 상실한 채 모기업의 보호를 위해 존재하거나, 기자들에게 제대로 월급을 주지 않는 대신 광고 유치를 통해 수입 보전을 해주는 등 도저히 언론사라고 하기 민망한 곳이 상당수이다.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상황. 건전한 시장경제의 원리가 한국의 언론 산업에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주민 세금을 언론 통제에 탕진하는 단체장들과 언론이 부패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탓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언론인들은 선거가 타락한 기자나 언론사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앞장섰다. 2012년 11월 파키스탄 언론인들은 ‘선거 보도를 위한 윤리헌장’을 제정했다. “파키스탄 선거는 경쟁이 아니라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라고 표현한 마자르 아바스 기자연맹 회장은 “내부의 부패에 대한 기자들의 저항은 당과 정치인들의 자정을 유도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1월 필리핀의 유력 언론 사주와 기자, 정치인 20여 명은 선거 기간의 언론 부패를 막기 위한 새로운 규약에 서명했다. 규약은 “정당과 후보자들은 언론인들에게 어떤 돈이나 혜택도 제공하지 않으며, 언론인들은 어떤 돈이나 혜택을 정당과 후보자들에게서 받지 않을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한다”고 선언했다. 서명을 이끈 언론인 바르트 깅고나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난 40년 동안 선거철의 언론 부패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이제는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과 필리핀 언론인들의 고뇌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 곳이 한국이다. 선거 때면 더 심해지는 부정부패를 막으려는 깨어 있는 언론이 절실하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깨어 있으려면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 언론은 후보자들의 인간성과 정책능력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국민의 대리인이다. 지역 언론은 주민 대신 가장 가까이서 지방행정과 지방정치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지방선거의 타락을 막아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깨어 있는 언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에 대한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언론으로부터 얻는 것을 사실상 포기한 지 오래라고 한다. 대부분 언론들이 자치단체장에게 줄을 섰다고 믿는다. 오로지 지사나 시장들의 치적을 홍보해주는 기사만 보도한다는 것이다. 선거는 애초부터 재선, 삼선에 도전하는 단체장들에게 치우친 불공정 경기가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언론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변명한다. 지방경제에는 지역 언론에 광고를 할 만한 기업이 드물다. 돈 주고 신문을 보는 주민도 별로 없다. 어디서 살아가는 돈을 버는가. 지자체 홍보 예산이 지역 언론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지자체는 수시로 광고를 내고, 언론사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많게는 수억 원의 협찬금을 준다. 언론사는 정체가 불분명하고 내용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숱한 행사들을 만들어 낸다. 어떤 도시에는 언론사가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만도 열 개가 넘는다. 그러니 언론들이 단체장들의 비위를 거스르기 어렵다. 선거 때는 더욱 그러하다. 비판했던 단체장이 재선, 삼선이라도 되면 협찬이나 광고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 한 지역 언론인은 “확실하게 밀어야 크게 받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단체장들은 언론의 강한 요구를 견딜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일부 언론은 단체장과의 거래 속에 여론조사를 왜곡, 조작한다는 의심도 받는다.
이런 언론을 국민들이 믿고 찾을 리 없다. 국민들이 외면할수록 언론들은 지자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단체장들은 언론의 영향력이 시답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선거를 겨냥한 헛소문이나 악의적 비난 기사를 막기 위해서 예산을 활용한다. 지자체들은 선거 해만 되면 언론의 어려운 속사정을 악용하기 위해 의회의 협조 속에 홍보예산을 늘린다(정당이 다를 경우 의회는 예산을 깎아버린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그래서 언론시장에서 사라지는 언론이 드문 것이다.
외국에서는 유수의 언론사들이 문을 닫고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기자들이 줄줄이 해고를 당한다. 한국에서는 인터넷 언론을 비롯한 언론사와 기자 수가 늘고 있다. 인구 100만 명이 겨우 넘는 도시에 20여 개 일간지가 난립한다. 돈 주고 신문 보는 독자가 100∼200명인데도 버텨나가는 신문사도 있다. 언론의 이유와 목적을 상실한 채 모기업의 보호를 위해 존재하거나, 기자들에게 제대로 월급을 주지 않는 대신 광고 유치를 통해 수입 보전을 해주는 등 도저히 언론사라고 하기 민망한 곳이 상당수이다.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상황. 건전한 시장경제의 원리가 한국의 언론 산업에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주민 세금을 언론 통제에 탕진하는 단체장들과 언론이 부패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탓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언론인들은 선거가 타락한 기자나 언론사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앞장섰다. 2012년 11월 파키스탄 언론인들은 ‘선거 보도를 위한 윤리헌장’을 제정했다. “파키스탄 선거는 경쟁이 아니라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라고 표현한 마자르 아바스 기자연맹 회장은 “내부의 부패에 대한 기자들의 저항은 당과 정치인들의 자정을 유도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1월 필리핀의 유력 언론 사주와 기자, 정치인 20여 명은 선거 기간의 언론 부패를 막기 위한 새로운 규약에 서명했다. 규약은 “정당과 후보자들은 언론인들에게 어떤 돈이나 혜택도 제공하지 않으며, 언론인들은 어떤 돈이나 혜택을 정당과 후보자들에게서 받지 않을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한다”고 선언했다. 서명을 이끈 언론인 바르트 깅고나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난 40년 동안 선거철의 언론 부패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이제는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과 필리핀 언론인들의 고뇌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 곳이 한국이다. 선거 때면 더 심해지는 부정부패를 막으려는 깨어 있는 언론이 절실하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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