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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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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월혁명 댓글 0건 조회 1,989회 작성일 13-11-1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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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평전 -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김재규가 박정희를 총으로 쏜 다섯 가지 이유

우리나라 근대사에는 두 번의 10·26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10·26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10·26이며, 두 번째 10·26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를 사살한 197년 10월 26일 10·26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지만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조국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한 자기희생이며, 목숨을 던져 실천한 숭고한 독립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10·26, 거침없이 내딛고 있던 유신 독재를 멈추게 한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할 근대사의 오류입니다.

두 번째 10·26, 김재규를 역사적으로 온당하게 평가하려면 우리는 현직 중앙정보부장, 심복 중의 심복이었던 김재규가 주군으로 모시고 있던 박정희에게 왜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김재규 평전 -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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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지은이 문영심┃펴낸곳 (주)참언론 시사IN북┃2013.10.25┃1만 5000원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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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지은이 문영심, 펴낸곳 (주)참언론 시사IN북)에서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목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는 5·16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총으로 흥한 자 총으로 망하는 게 진리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부하의 총부리 앞에서 비참히 고꾸라지는 모습으로 최후를 맞았습니다.

박정희는 유신으로 영구 독재를 꿈꾸고, 독재의 칼날만을 휘두른 게 아니었습니다. 박정희는 사흘이 멀다 하고 권력과 돈으로 여성의 성을 능멸했습니다.
 
때로는 딸보다도 어린 여성들까지도 잠자리에 들였습니다. 안가에 끌려간 여성들이 박정희와 함께한 잠자리는 권력으로 자행한 성폭력이며 독재자에게 당한 성 매수입니다.

대통령의 '행사'는 소행사와 대행사로 나뉜다. 소행사는 대통령과 젊은 여성이 간단한 만찬 겸 술자리를 갖고 나서 잠자리를 하는 것이고,
 
대행사는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이 참석해서 두어 명의 여성을 데리고 술과 여흥을 즐기고, 여흥이 끝나면 대통령이 점찍은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걸로 마무리된다. 이런 행사가 사흘에 한 번, 한 달이면 열 번 가까이 있었다. - 본문 52쪽

박선호 "네. 그래서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시민이 깜짝 놀랄 것이고, 여기에는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그와 같은 진행 과정을 알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이것을……" - 본문 270쪽

김재규는 박정희와 동향이자 육사 동기입니다. 박정희 주변 인물들 중 최측근 중의 최측근입니다. 누리고 행사할 수 있는 권력도 막강했습니다.
 
김재규는 망나니놀음 같은 권력에 편승하지 않고 점차 강경해지는 정국을 풀고, 좀 더 부드러운 정치를 펴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권력에 도취한 박정희는 그 도덕성이 점점 파렴치해졌습니다. 독재를 옹립하기 위한 폭력은 점차 망나니처럼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은 캘린더가 새로 나오면 캘린더에 나오는 여자모델들을 구경시키고 박정희는 골랐습니다. 그러면 그날 당장 여자를 잠자리에 들여야 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죽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차지철의 추임새를 즐기면서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선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는 걸 공공연히 말하곤 했습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걸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박정희가 자행하는 만행을 김재규는 더 이상 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재규는 스스로의 몸을 던져 유신의 뿌리를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몇 번이나 기회를 엿보던 김재규가 드디어 유신의 원흉인 박정희의 숨통을 끊어 놓으니 그게 바로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발발한 두 번째 10·26입니다.

김재규가 품었던 혁명 다섯 가지 목적은 박정희를 죽어야 했던 이유

책에서는 10·26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밑그림으로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이유, 김재규가 역사적으로 다시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를 재판 과정의 기록 등을 통해 보다 실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의 회복,
둘째, 보다 많은 희생을 방지,
셋째, 적화방지,
넷째,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다섯째,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이 목적은 10·26 혁명 결행 성공과 더불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해결이 보장되었습니다. - 본문 242쪽

김재규는 법정 진술에서 박정희를 제거하고자 했던 목적을 다섯 가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질식 직전에 놓인 우리나라, 수백 수천의 희생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박정희 정권의 폭력성에 대한 우려이자 항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유신의 심장은 제거했지만 김재규가 꿈꾸던 자유민주주의는 다시금 총을 들고 나선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좌절됩니다.
 
그 과정, 김재규를 재판하는 과정에 법무사(군검찰)에서 보인 대한민국 사법질서야 말로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어 보이는 개들의 몸짓이며 영혼 없이 으르렁거리는 꼭두각시놀음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사회, 자유민주주의에서 검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합니다. 요즘 어느 주요 일간지에서는 검찰을 '견(犬)찰'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검찰을 견찰이라고 해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려지는 게 요즘 우리나라 일부 검사들이 그려내는 실상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건 잘못되거나 불행했던 역사가 반복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먼 후일 세 번째의 10·26으로 명명되는 어떤 원인과 불행한 결과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김재규가 총을 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권력에만 아부하는 사법이 어떤 모습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김재규는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비겁하고, 폭력적이고, 비열하기 그지없는 권력에 의해 형장의 이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는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김재규가 꿈꾸던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10·26이란 상흔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또다시 생기게 마련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살다간 김재규, 바람이 되어 꽃을 피우려했던 김재규 평전을 읽는 내내 '자식 팔자 부모 팔자 닮고', '딸 팔자 친정엄마 팔자 닮는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자식 팔자 부모 팔자 닮는다'는 말이 말짱 허망한 말이라는 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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