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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리주의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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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리주의자 댓글 0건 조회 652회 작성일 08-03-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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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서 '실용'이라는 말 만큼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말도 없다.
 
 실용과 실천이 국가경영의 기본원칙이라고도 하고, 신정부는 구태여 부르자면 스스로를 실용정부라고 지칭하고 싶다고도 한다. 이념의 시대가 가고 실용의 시대가 왔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이념과 실용이 이렇게 확연히 갈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용을 한다 해도 무엇을 지향하는 실용인가에 따라서 일정한 이념이 실릴 수밖에 없다.
 
구정부가 이념적이었고 신정부가 실용적인가 하는 것도 더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구정부에 이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범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으로서의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념적이라면 평등보다 자유를 더 내세우는 편인 신정부도 이념적인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 민주주의에서 자유와 평등은 늘 공존하면서 조화를 취해나가야 하는 양대 원리다. 그런 점에서는 이념이 있었다고 탓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념을 제대로 구현했느냐를 따지는 것이 더 실용적일 것이다.
 
현재 이야기되고 있는 실용주의의 연원을 더듬어보면 영국의 사상가 벤담의 공리주의와 그것의 미국적인 형태인 프래그머티즘 등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둘은 서로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효용성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하자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다른 것들을 제치고 효용이 기준이 된다는 것이므로 실용주의도 이념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이념의 중요한 흐름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주도적인 이념이기도 하다.
 
실용주의의 이념으로서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 공리공론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실천하는 것이 좋고 탁상행정의 관행을 혁파할 수도 있다.
 
다만 실용을 중시하더라도 모든 것을 효율성의 견지에서만 바라보아서는 많은 다른 중요한 가치들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계량화하거나 효용만을 따지기에는 곤란한 면들이 또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한 실용인가가 동시에 고려되지 않으면 인간은 거기에서 사라지고, 메마른 수치와 실적만이 남게 된다.
 
벤담을 이어받아서 영국의 공리주의를 확립하고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이 J.S. 밀이다. 그는 집안에서 철저하게 벤담적인 공리주의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사실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효용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엄격하게 길러졌던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20대 초에 그는 심각한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공부를 하든 사회활동을 하든 어떤 식으로도 그 질곡을 벗어날 수 없었던 그에게 구원이 왔다. 바로 시였다.
 
어느날 워즈워드의 시를 읽던 그는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그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가득 차 있는 워즈워드의 시가 그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밀의 공리주의에는 벤담의 그것과는 달리 인간의 얼굴이 어리게 된다.
 
그가 인권을 옹호하고 노예제도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거나, 당대사회에서 여성의 예속을 지적하고 남녀평등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었던 힘도 이처럼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소수자들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촉발된 것이다.
 
한 공리주의자의 눈물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은 이 시대의 실용이 그의 눈물을 이해하는 실용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모든 것이 계량화되고 수치화하고, 심지어 인간의 행복조차 객관적으로 잴 수 있다고 보는 공리주의적인 사고방식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얽힌 문제들을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사실에 근거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용의 정신은 서구사상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조선 후기 정조의 개혁시대에 실학이 추구하던 기본정신도 바로 실용의 정신이 아니던가.
 
실사구시(實事求是)하겠다는 정신은 공론을 피하고 사실을 존중하자는 정신이고 나아가서 그것을 통해서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정신이기도 하다.
 
여기에도 냉혹한 공리성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소외된 민중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인간애가 어려 있다.
 
그러나 최근의 청문회를 보면, 앞으로 실용정책을 집행할 이들 가운데, 자신들이 신주처럼 모실지도 모를 J. S. 밀의 눈물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 지 심히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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