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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직들에게도 관심을 이란 내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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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설직 댓글 6건 조회 2,696회 작성일 13-02-0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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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직들여러분
 
시설직 승진하는데 건축직이 없다고 아우성이신데
 
그리고 토목이 승진하는데 건축인 승진안된다 하시고
 
이부분에 대하여 사실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불과 1~2년전에는 시설직이 통합되어 같이 근평을 하고
 
그기에 따라 사실상 승진이 되다보니
 
근무연수에 따라 시설직인 토목, 건축, 지적이
 
근평을 받고 승진순위에 의해서 승진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던 인사규정을 귀 건축직 실무대표인 김성덕님께서
 
노조에 수도없이 건의하여 시설직에서
 
토목, 건축, 지적을 분리하자고 강력이 계속 주장
 
하였고 그래서 시설직이 모든 근평과 승진이 개별 직렬로 분리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사실상 지금 인사는 퇴직자의 인원에 따라
 
승진자가 결정되는 구조이며
 
시설직중 토목직 간부가 퇴직이 되어서
 
토목직이 승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승진을 요구하는
 
건축직님들 둥 5~6급 중 토목직들보다 근무기간이
 
오래되시고 경력이 많다고 하시는 분들 계시면
 
말씀해 보십니요
 
훨씬 근무경력과 기간도 떨어지고 건축직 퇴직하시는
 
분들도 없고 그렇다 보니 불만을 토로하시고 계시는 건대
 
그 사유를 토목직에 전가하여 잘못된 사실인양
 
말씀하시는데 정확하게 근거와 사실의 내용을
 
밝히고 주장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기준과 근거에 의해서 이야기 하시고 행정부지사님께
 
말씀을 하셔야지 단순한 자기논리로 이야기 하시는 것은
 
전혀 명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위직렬이 높다고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하여는 조직진단을 해서 조직을 개편하도록 하고
 
그기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지는 부분이므로
 
 
하루빨리 조직부서에 조직진단을 하고
 
건축직들 자라를 늘려달라고 하세요
 
괜히 다른 직렬 물어뜯어 봐야 지살 뜰어먹는 일입니다
 
행정직렬 말고 대부분 하위직렬이 높습니다 그부분도
 
조사를 하셔서 형평성에 맞도록 주장을 하십시요
 
 

댓글목록

건축직님의 댓글

건축직 작성일

그래 토먹직  말 잘하셨다.
너거 5급 승진자와 똑같이 2003년에 6급 승진자가 2명이나 있는데 못했다. 어쩔래?

토먹직 답네
 
노조에서 그렇게 언급한 토목직 과장해양수산과장에 보임시킨 것.
기획조정실장에 보임된것은 쏘옥빼고 말 없네
할말해보라.
아님 공개토론을 해보까
항상 인사,조직에는 눈에 불을켜든 토먹직들이
어찌 이부분에는 말이 없는고 ?

할말 있으면 씨부렁 그려보라

진실은님의 댓글

진실은 작성일

시설직님 말씀잘하셨습니다.
2년전 시설직으로 같이 근평하다 보니 주무과장, 국장 다들 토목직이시라서
그런지는 확실치 않치만
근평을 하면 할수록 토목직은 유리하고 그외 직은 후퇴되는것을 보고
소수직렬 보호를 위하여 토목, 건축, 지적을 분리하자고 한것이며

그래놓고 이제와서 분리되었으니 토목직 퇴직하면 그자리에 토목직이 해야된다니
거기에다 하위직은 조직진단에 문제있으니 그기 알아보라니 

그럼 기획조정실장, 해양수산과장도 토목직이 되면 문제있는거 아닌가요

바른소리님의 댓글

바른소리 작성일

건축직도 김두관 전지사님 시절엔 토목직보다는 유리하게 승진했습니다.

하위직급6급이하는 일부 손해본 부분이 있었지만 5급이상은 결코 손해본 장사는 아니라고

보는데 실질적으로 김두관 지사시절엔 4급승진 5급승진 토목직 선배 퇴직자리에 많이

보전해준걸로 아는데요 6급자리 일부 손해 본것만가지고 전부 손해다 하시는건 조금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기획조정 실장 자리가 어디 행정직만 차지하란 법이 있습니까

어차피 4급이상 공무원이 되면 직렬이 의미가 없습니다. 부군수 부시장 할수 있는겁니다.

지금은 직렬이 의미가 많이 없습니다. 행정직 자리에 토목직 건축직 지적직 소수직렬이

일을 추진못하겠습니까 모두 할수 있습니다. 그만큼 공무원의 업무능력이 많이 좋아졌고

옛날에 운전직들이 관용차 운전 했었습니다 지금 대형면허 등 몇몇 특수 차량 빼고 운전직

배치 해줍니까 그만큼 운전이 보편화된 기술인 것입니다.  모두가 운전을 하니까요

4급이상이면 건축직도 지적직도 화공직 행정직 다 될수 있는겁니다.

그리고 그런 고위직은 불변의 자리가 아니고 다른직렬로 언제든 바뀔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건축직 기획실장도 나올수 있는것이고요  그리고 기술직의 장점을 살릴수도 있는

겁니다. 중국의 경우도 현재 급성장 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도 주요 관료들을 공대 출신들

즉 기술관료를 적폭적으로 전면배치하면서 국가 경쟁력이 살아 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술직이 기획실장 등 높은 자리에 가면 왜이리도 말이 많은지 우리도가 발전

하려면 기술직(건축, 화공, 지적, 등등 포함)이 고위직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법대나와서 검사 판사 출신  변호사가 연봉을 몇십억을 받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기술직이 몇십억 받으면 이상하게 보는 시각이 아직도 만연한것 같습니다.

제발 건축 토목을 경쟁자로 보지 마시고 이젠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하시길

바른소리 1님의 댓글

바른소리 1 작성일

영국이 어떻게 산업혁명을 일으켜 전세계의 1/4를 지배했는지 아십니까 자국민의 힘만으

로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국 즉 프랑스 및 독일의  기술자들이 천대 받는것을 알고

엄청난 특혜를 주면서 기술자들을 대거 자국민으로 포합시켜 국가경쟁력을 확보해 산업혁

명을 일으켜 대영제국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일본역시 명치유신을 계기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기술자들을 당시 일본 고위관료

일년 연봉 800만엔 받을때 3000만엔을 주며 기술자들을 유치 했습니다.

그러한 기술을 배워서 아시아의 절대강자로 호령했었습니다.

지금 미국  하버드 엠아티 스탠포드 졸업해서 능력있는 기술자 절대 외국으로 내보내지

않습니다. 자국에서 연봉 몇십억식 주면서 잡아둡니다.  그기에는 한국에서 유학간 사람도
]
상당수 있습니다. 한국에 넘어 왔다가 연봉과 처우가 형편없어 다시 미국행 합니다.
]
]이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미국이 강대국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도 기술자들

을 천시하다간 다시 주변 강대국에 유린당합니다 .

지금 이만큼 경제발전을 이룩한것도 박정희 시대 기술인은 조국근대화의 기수란 구호아래

기술자들을 우대 했기 때문에 이만큼 경제가 성장한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른소리 2님의 댓글

바른소리 2 작성일

이면우 교수의 바른소리

이공계 기피의 역사적 뿌리

우리 사회는 기술을 천시하던 조선조의 문화로 회귀하고 있다. 기술을 중시하고 이공계가 우대를 받았던 1960년대 이후의 시기는 기술을 냉대한 긴 역사에서 잠시 반짝한 예외적인 시기였다. 역사 속에서 내 선배 과학자 기술자들은 모두 처절한 최후를 맞았다.

신라 무영탑의 전설은 아주 로맨틱하다. 탑 만들기에 동원된 석공은 오랫동안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스스로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탑 만드는 데 동원되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가정이 파탄난다' 불사에 동원된 석공들에게 오두막 하나씩 지어 주고 거기서 아내가 밥을 지어 주게 했을 법한데도 위정자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영탑의 전설이 주는 교훈은 '석공에게 시집가면 죽는다'였을지 모른다.

에밀레종 설화도 마찬가지다. 공명 설계는 컴퓨터 기술로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신라 시대에 종을 만들려면 보통 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독촉과 질책을 받았으면 끓는 쇳물에 제 아이를 넣어 볼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흉내만 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대대손손 축복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얻었다. 아들을 제물로 바쳐 맑고 그윽한 소리를 만들어낸 신라의 종 만드는 기술자가 그 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설화 역시 '주조 기술자가 되려면 자식을 제물로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새벽 안개처럼 은은하게 사방에 퍼지게 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기술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천민 계층이었다. 장영실을 보자. 관노 출신 천민인 장영실은 당시 지극히 예외적으로 종 6품까지 벼슬이 올랐다. 세종이 신임을 하니 문반들의 시기 질투가 대단했다. 문반들은 '천민이 종 6품까지 올라가는 것을 좌시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 아래 세종에게 온갖 간언을 했으나 세종이 듣지 않았다.

그러다 장영실이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공주의 가마 손잡이가 부러져 공주의 가마가 구르고 말았다. 왕족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면 모반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세종도 감싸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가마 손잡이에 미리 톱질을 해 놓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당시 돌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후 아무도 장영실이 어떻게 됐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과학 기술자로 출세하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관존민비

국내의 몇 개 안 되는 과학관에 가서 보면 서양 과학자들은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전부 기록돼 있는데 우리나라 과학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출생연도만 밝혀져 있을 뿐 사망연도는 물음표로 처리돼 있다. 과학 기술자들의 말로가 안 좋았다는 증거다.

나는 1990년대에 '손빨래 세탁기', '골고루 전자레인지', '따로따로 냉장고' 등을 개발해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제품 6개를 만들었다. 이 덕에 1996년에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세종문화상을 받았다.

시상식 전날 예행연습이 있다고 해서 불려갔다. 단상에 올라가는 걸음걸이가 씩씩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몇 번을 단상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연습하러 나온 여고 합창대원들 앞에서 서울공대 교수의 자존심은 말이 아니었다.

이튿날 시상식장에서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시상을 맡은 이수성 국무총리는 나와 함께 서울대학 교수로 일했던 분이다. 그의 연설이 이어지는 10여 분 내내 나는 객석을 등진 채 그를 바라보고 서 있어야 했다. 시상식의 주인은 상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맨 앞에 앉아 사진기를 들고 있던 아내는 나의 뒤통수만 실컷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상품 개발로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는 나는 수상 소감 한 마디 못해 보고 단상을 내려와야 했다.

조선 시대 장영실의 얘기가 아니라, 1996년 서울공대 교수가 겪은 일이다. '이러니 다들 관료가 되려고 하지 누가 과학기술자가 되려고 하겠나' 하며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바른소리 3님의 댓글

바른소리 3 작성일

이면우 교수 바른소리 2

우리 기업이 가격결정권을 가지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내가 내놓은 아래의 물음들에 독자들이 응답을 해주었으면 한다.

'정부가 5년 이내에 이공계 기피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을 내놓을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기업이 5년 이내에 정부지원 없이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보는가?' '대학이 5년 이내에 스스로 교육개혁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학부모들이 내 자식만은 편안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고, 자녀에게 이공계 대학 진학을 권유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항목이든 "10% 이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응급실로 가야 한다. 온전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산업은 도시가스에 밀려 설 자리를 뺏긴 구공탄 공장에 비유될 수 있다. 생산성을 향상해 하루에 구공탄을 10%씩 더 찍으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날 수 있을까? 구공탄 공장의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답은 둘 다 '아니오'이다.

도시가스가 도입되는 초기에 '도시가스로 업종을 전환하라'고 했다면 연탄공장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 웃기지 마라. 온돌방이 존재하는 한, 겨울철이 존재하는 한 구공탄은 영원하다.' 연탄공장은 그렇게 전의를 불 태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음가게와 냉장고, 우마차와 용달차, LP와 CD 모두 똑같은 원리다. LP 5000장을 모은 음악 애호가에게 CD로 바꾸라고 한다면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오스트리아에 여행 갔을 때 밥 굶으면서 산 오페라 판, 유학할 때 아내에게 잔소리 들어가며 산 클래식 전집,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그래서 음악 애호가도 이렇게 외친다. "클래식이 존재하는 한, 아니 오페라가 존재하는 한 LP는 영원하다." 그러나 지금은 축음기 생산이 중단되어 더 이상 LP를 들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과거의 산업구조가 일직선인 주로를 눈감고 뛰기만 하면 되는 마차 경주였다면, 지금의 산업구조는 폴로 게임이다. 말의 눈을 절대 가리면 안 되고 주로도 일직선이 아니고 그라운드다. 어디로 갈지 모르며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빨리 설 줄 알아야 하고 세 박자 쉬었다가 달릴 수도 있고, 세 걸음 뛰다가 정지도 해야 하는 복잡한 게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마차 경주 챔피언들이 폴로 복장을 하고 나와서 설치고 있는 형국이다.

요즈음 우리의 국가 목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이다. GNP로 국가의 비전을 내세우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의식은 거의 필리핀 수준이다. 우리에게는 '이웃을 돕겠다', '인류에 혹은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이 희박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기 조차 힘들다. 원래 패러다임의 전환은 극히 일부가 시도하는 것이고 시도한 사람 중에 극히 일부가 성공한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조선조의 한 왕이 정승들에게 "광풍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초가삼간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의정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광풍이 쇠잔해지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 지도계층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사방의 문을 열어 놓으면 초가집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방 안에 있던 민초들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 바람에 날려가서 죽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끈질기게 버텨왔다. 7년 전쟁에서 절반에 가까운 민초들이 사라진 임진왜란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이공계의 위기는 역사적 뿌리가 깊다.

이공계의 위기에는 기업과 대학, 사회 전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잭 웰치의 얘기에서 거론했듯이, 이공계의 위기는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각오로 달라붙어야 할 문제다. 정책 구호나 유인책 몇 가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대학이나 이공계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기업, 우리 사회 전체가 이공계 기피현상의 최종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살고 싶으면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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