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위.. 전문위원실 한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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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통속 댓글 1건 조회 1,356회 작성일 12-12-11 13:3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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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일님의 댓글
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진 소명… 작성일
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일까. 아니 무엇이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혼란 그 자체인 대선 과정이야말로 차기 정부의 과제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옆길로 새고 있다는 것, 너무나 많은 정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 대통령 선거가 사회적 뇌물을 퍼주는 일종의 경매로 전락하고 있다는 생각들이 엉겨든다. 87년 민주화 이후 25년 동안을 오로지 끓어오르기만 했던 대중 민주주의 흙탕물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 법치와 신뢰로 나아가는 것, 폴리페서들에 공부를 더 하도록 요구하는 등의 긴 ‘가치 목록’을 생각하게 된다. 87체제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사회적 먼지와 정치적 오염의 물길을 성숙한 대의제로 돌리는 제도의 진화 말이다.
공동체의 운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죽음과 파괴에 매몰된 선거라면 지금의 한국이 한때의 추억으로 회상되는 그런 시기도 멀지 않다. 그래서 잠 못 이루는 밤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기회주의자 혹은 과격분자가 아니면 무대에 나설 수조차 없는 정치구조만 해도 그렇다. 국정의 전문가 아닌 음모와 책략의 전문가들이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증오를 조직하고 혁명을 꿈꾸는 세력들이 민주주의 절차에 편승하는 퇴행이요 조락이며 파행이다. 후보 자신의 입에서 “PK는 PK인 나를 찍어달라”고 호소하는 지연 혈연 학연의 밑바닥 선거다. 더구나 이번에는 종북이라는 종말적 과격 집단에서도 후보를 냈다.
양심은 내심의 자유일 뿐 당연히 행동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언론의 자유와 거짓말 할 자유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종북은 거짓말 할 자유를 언론의 자유로, 음모를 양심의 자유로 포장하고 있다. 체제 전복적 집단이 헌정의 수호자가 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민주당이 야권연대라는 미명하에 정치권에 끌어들인 것이다. 민주당은 언젠가는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중국 항모가 뜨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일본이 재무장하는 가운데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방을 걱정하고 국가 주권을 말하는 후보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해군 기지를 만들지 말자는 후보들이 더 많았다. 사분오열의 공동체요 기억상실이며 인지부조화에 집단적 뇌사다. 뇌사가 아니라면 백치라고 말해야 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이러다간 혼돈이 질서를 대체하고 전쟁이 평화의 옷을 빌려 입는 참담한 파국이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서 지도자의 조건과 임무를 고뇌하게 되는 것이다.
돌아보면 실로 고단한 한국 민주주의였다. 한국 민주주의에 1.0이 있다면 필시 근대 민주정을 처음 도입했던 이승만 정권기라고 할 것이다. 4·19로 마감되는 제1기였다. 박정희로부터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개발 독재를 민주주의 2.0이라고 한다면 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은 3.0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역사는 실로 변증적으로 나아가는 모양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모든 것이 잘되었다”며 아슬아슬한 한숨을 쉬게 하는 그런 우여곡절이 민주주의 1.0에서 3.0으로 연결되는 격렬한 대중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제 87체제의 부작용만이 남아 스스로를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고 말았으니 민주주의 3.0도 거친 숨을 들이쉬며 퇴장할 때가 왔다는 것인지….
대중주의와 집단주의가 모든 다른 민주적 가치를 압도하는 대중의 횡포가 이미 드러난 단계다. 법(Law)과 입법(Legislation)이 고의적으로 혼동되면서 국회가 법률 생산 공장화하는 자유의 질식 상태다. 무엇이든 다수를 장악하기만 하면 된다는 오도된 원리는 거리의 정치 투쟁을 일상화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정치를 정상 상태로 되돌릴 것, 입법부를 제자리에 위치시킬 것, 지역정당을 보편정당으로 재편할 것, 대중을 거리가 아닌 생업의 현장으로 돌릴 것이 바로 다음 대통령의 임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천민 민주주의의 변형된 구호인 자본주의 4.0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 4.0이다. 거리의 먼지와 흥분된 마음들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 그것에 자연법적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4.0이다. 누가 그 역사적 소명을 짊어질 것인가. 선택의 날이 바로 19일이다. 늦은 밤 홀로 소주잔을 들고 “민주주의 4.0을 위하여!”라고 가만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