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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를 내려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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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내천 댓글 1건 조회 1,946회 작성일 12-09-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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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박형규 목사께 무죄를 내려달라"

한인섭 "임은정 검사의 무죄구형! 모처럼 감동"

 
유신시절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89) 목사에 대해 검찰이 사상 초유로 '무죄'를 구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부장판사 김상환) 심리로 열린 지난 6일 선고공판에서 임은정 검사는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며 "몸을 불살라 칠흑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임 검사는 이어 이어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며 "무죄를 내려달라"고 무죄를 구형했다.
그동안 유신 관련 재심 사건에서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달라’고 암묵적으로 무죄 의견을 밝힌 적은 있지만 검사가 직접 무죄를 구형한 것은 처음이다.
재판부도 이에 "피고인과 그를 대변한 변호인뿐만 아니라 검사도 재판부의 판단과 동일했다"며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울였을 노력 등이 이 판결을 가능하게 하였음을 고백하면서도 이 판결이 부디 피고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우리 사법에 대한 안도로 이어지길 소망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 목사는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9개월간 복역한 뒤 출소했으며, 지난 2010년 재심을 청구했다.
보도를 접한 한인섭 서울대 법대교수는 13일 트위터에 "임은정 검사 무죄구형! 모처럼 감동이네요"라며 "앞으로 검사는 재심사건에 기계적으로 유죄구형하는 악선례를 깨고 정의의 검사 되길 바랍니다"라고 임 검사를 격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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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開土大王님의 댓글

廣開土大王 작성일

광개토대왕 [廣開土大王, 375~413] 고구려 19대 왕.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군주이다. 한국 최초의 연호를 사용했다. 백제를 치고 동예를 통합, 동부여를 정벌했다.


근초고왕 [近肖古王, ?~375] 백제 제13대 왕. 371년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켜, 지금의 경기·충청·전라도와 강원·황해도의 일부를 차지하는 강력한 고대국가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박사 고흥에게 국가기록을 맡겨 《서기》를 쓰게 하였고, 아직기·왕인 등을 일본에 보내 학문과 문화를 전파하였다.


원효 [元曉, 617~686.3.30] 신라의 승려.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사상을 중심으로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대혜도경종요》,《법화경종요》 등의 저술을 남겨 불교사상 발전에 기여하였다.

 

장보고 [張保皐, ?~846] 신라의 무장. 해로의 요충지 청해에 진을 설치하고 청해진 대사로 해적을 완전 소탕했다. 840년 일본에 무역사절을, 당나라에 견당매물사를 보내 삼각무역을 했다.

 

서희 [徐熙, 942~998] 고려의 외교가·문신. 거란의 내침 때 서경 이북을 할양하고 강화하자는 안에 극력반대, 자진해서 국서를 가지고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철수시켰다. 그 후 여진을 몰아내고 지금의 평북 일대의 국토를 완전히 회복했다.

 

강감찬 [姜邯贊, 948~1031] 고려시대의 명장. 거란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서북면행영도통사로 상원수가 되어 흥화진에서 적을 무찔렀으며 달아나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일연 [一然, 1206~1289] 고려시대의 승려이자 학자로 운문사 주지로 있으며 왕에게 법을 강론하였다고 전해진다. 저서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신화와 설화 및 향가를 집대성한 책이다.

 

문익점 [文益漸, 1329~1398] 고려시대의 학자·문신. 공민왕 때 좌정언으로 서장관이 되어 이공수를 따라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붓대 속에 목화씨를 감추어 가져왔다. 장인 정천익과 함께 재배에 성공하였다.


세종 [世宗, 1397.4.10~1450.2.17]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1450). 젊은 학자들을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으며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기구를 제작하게 했다.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정치·경제·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장영실 [蔣英實, ?~?] 세종 때의 과학자.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의 자격루를 만들었으며,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신사임당 [申師任堂, 1504~1551]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는 조선중기 여류 서화가. 시문과 그림에 뛰어나 여러 작품이 전해진다. 여성 특유의 섬세 정묘함을 더해 한국 제일의 여류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이순신 [李舜臣, 1545~1598]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명장. 옥포대첩, 사천포해전, 당포해전, 1차 당항포해전,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명량대첩, 노량해전 등에서 승리했다.
 
김정호 [金正浩, ?~1866] 《청구도》,《동여도》,《대동여지도》를 만든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대동여지도》는 조선시대 가장 정확한 과학적 실측지도다. 19세기 조선의 국토정보를 집대성·체계화하였다.
 

정약용 [丁若鏞, 1762.6.16~1836.2.22] 조선후기 학자·문신.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주요 저서는《목민심서》,《경세유표》등이 있다.

 

이승훈 [李昇薰, 1864.4.25~1930.5.9] 교육자·독립운동가. 신민회 발기에 참여했고, 오산학교를 세웠다. 105인사건에 연루, 옥고를 치렀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 동아일보사 사장에 취임,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을 추진했다.

 

김구 [金九, 1876.7.11~1949.6.26] 정치가·독립운동가.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신민회, 한인애국단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안중근 [安重根, 1879.9.2~1910.3.26] 독립운동가.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양성에 힘썼으며, 만주 하얼빈에서 침략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사형되었다.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신채호 [申采浩, 1880.12.8~1936.2.21] 독립운동가·사학자·언론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활약하며 내외의 민족영웅전과 역사논문을 발표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힘썼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유관순 [柳寬順, 1902.12.16~1920.9.28]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우장춘 [禹長春, 1898?~1959.8.10] 한국의 농학자. 겹꽃 피튜니아꽃의 육종합성에 성공하여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였고 종의 합성설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육종학 연구에 전심하여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벼의 수도이기작 등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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