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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떠나는데 한사람이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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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관사람들 댓글 5건 조회 2,201회 작성일 12-07-1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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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6(월) 경남도청 인사발령 사항을 보면
 
경남도보 발행을 책임지고 있는
도보편집실의 한관호님께서
김두관 전지사의 인물로서 사직을 하였다고 발령이 나 있는 것을 보고
씁쓸한 마음에 한마디 남기고 싶어서..........
 
참으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이다.
 
사나이가
치졸하게 붙어서 임명한 사람이 나갔음에도 연명한다는 것은
보기도 좋지 않을 뿐아니라, 좋지 못한
뒷모습으로 인생 후배들께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함에도
아직 자리에 연연하여
김두관전 지사의 사람으로 지칭되는 사람중 한명이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다.
 
- 노무사 자격도 없는 사람이 인사과 노무담당자로 있는 분.(계약직)
 
이 분도 나가야 합니다.
무자격자를 김두관 캠프에서
끌어들여온 대표적인 인물이 인사과 노무담당자입니다.
모집할 당시 자격이 미달임에도 도지사의 사람으로 계약이 된 부분이 있다고 모두들
이야기 합니다.
 
 
인사발령사항에 언제쯤 뜨는지 보고싶습니다.

댓글목록

사람님의 댓글

사람 작성일

중국에 있는 바둑이와 영희 친구도 아직 안나가고 있는데...

‘깜님의 댓글

‘깜 작성일

‘깜’이 안 되는데도
아류(亞流)의 시대인가. ‘깜’이 안 되는데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너도나도 나서는 이들 가운데는 스스로 진정성을 믿는지 의심스러운 이도 여럿이다. 새누리당의 당내 경선은 박근혜 후보의 독주여서 백설공주와 난쟁이 게임으로 치부될 정도다. 민주당은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후보의 3강 구도에 또 다른 후보자가 줄을 잇는다.

 # 경남도민들은 김태호, 김두관 두 전직 지사가 여야 후보로 각각 대권레이스에 나선 것에 관심을 쏟는다.

 그들은 경남지사 재직 때 자천타천으로 대통령 후보감으로 거론됐다. 물론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바람막이용 일수도 있다. 또 지명도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없지 않은 탓으로 혈세낭비도 자초했다. 6년과 2년간 재직기간의 길고 짧음은 차치하고 그들에 대한 도청 직원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달라 단면을 엿볼 수 있다.

 # 김태호 전 지사, 또 광화문에 섰다. 도정을 쥐락펴락한 도정 3인방과 함께 손을 흔들다 질타를 받은 그가 이번에는 출근길 90도 큰절이다. 청문회 탈락이 엊그젠데 국민을 코미디의 대상으로 보느냐는 지적이다. 국회의원인 그는 1998년 경남도의원을 시작으로 거창군수, 두 번의 경남지사와 국회의원 선거의 승리를 통해 ‘선거의 달인’이라 불린다. 하지만 부지깽이도 꼽으면 당선되는 새누리당의 텃밭임을 감안하면 과대포장일 수도 있다.

 그는 훤칠한 외모에 스킨십도 좋아 당내 경선에서 의외의 결과를 기대한다지만 대권도전에 대한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업무추진 능력에서다. 경남지사 시절 역점사업으로 추진했던 ‘이순신 프로젝트’의 실패, 수십억 원을 퍼 준 월드콰이어는 도민을 속인 국제행사로 드러났다.

 그래서인지 도정이 이벤트의 연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지난 2010년 총리 청문회 때 도청 직원의 ‘관사 도우미’ 활용,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둘러싼 ‘거짓말’은 도덕성에 직격탄을 맞았다. 당내 경선의 흥행사가 돼 지명도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기회로 삼기에 앞서 입법 활동이나 지역현안 해결에 발 벗고 나서는 등 본연의 업무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지로 표를 얻으려면 오래가지 못한다.

 # 김두관 전 지사, 그는 지사 당선만으로도 우뚝 섰다. 집권여당의 안방인 경남에서 총선과 지사직에 도전, 5번이나 패한 사실은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화려하게 부활한 동기다. 이장, 군수, 장관을 지낸 스토리 등 리틀 노무현이라 불리는 그가 경남도정의 수장이 된 후는 ‘자이언트 김두관’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는 도정의 기반을 ‘민(民)은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않고 균등하지 않은 것을 우려한다’(不患貧 患不均)는 것에서 출발했다.

 보편적 복지 사업으로 친환경무상급식, 어르신 틀니 보급 사업, ‘보호자 없는 병원’ 등은 타 지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고 시ㆍ군간 균형발전을 위한 시책도 폈다. 여권의 텃밭인 경남에서 지방자치 부활 20년 만에 첫 진보성향의 경남지사가 탄생한 후 집권당 도의원의 인신공격성 질의에도 ‘대화 모드’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그 예가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유일하게 도의회 출석률 100%라는 기록이다. 도정 2년간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내부 평가와 의견만을 참고한 인사는 노조와 직원들도 높이 산다. 하지만 그는 공약 143건 가운데 13건만 완료됐다. 130건은 정상 추진되고 있다지만 진보도정 2년은 미완의 작품이란 지적이다. 지사직을 중도 사퇴, 도정의 연속성에 문제가 생기게 만든 것도 흠결이다.

 # 유권자의 눈높이에서 지도자는 탄생한다. 각각 이유를 달리하지만 김두관,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대선레이스에 뛰어 들었다. 경남의 큰 정치인이 탄생하길 기대하지만 아류의 시대, 말과 행동이 다르면 불신을 낳는다. 로마의 패망도 불신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재직 중, 불신을 낳은 자가 누군지, 누가 ‘깜’인지를 묻고 싶다. 훤히 꿰뚫고 있는 경남도청 직원들에게….

정말 잘한다.님의 댓글

정말 잘한다. 작성일

정말 잘한다.
그런거여..
그렇게 세월은 가고
문제있는 것은 적당히 조용히
대충해서 기한이지나면 살랑살랑
로비허서 자리 옴기고 해서 그렇게
정년을 맞이하는거여 무슨 일에 대한 애착이여
문제가 커지지 않게만 수습허고 인사정치로비허서
잘되면 누이좋고 매부좋고 그런거 아니겠슈
그러니 젊은 고시들이 자리에만 눈독들이는 법부터 배워서
일은 뒷전이라고 노조는 제앞에 불은 보이고 먼불은 아니보이니
뭘~뭘~뭘~
너도...그렇게 모범적으로 습관을 바꿔봐!!!

윗집에서는....님의 댓글

윗집에서는.... 작성일

윗집에서는....



이제는 정말 일하는 사장님이 와야 할낀데

맨날 정치꾼만이 왔다가 뜬구름이나 바람이나 잡아샀다가 가고

그래봤짜 도민만 손해를 보는 기라 다른 지역에 가봐라

일하는 분위기인데.. 우리는 뭐꼬 놀자판 묵자판 얼렁뚱땅판으로 전략헜다아이가

제발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장이 와야 하낀데...

박정희 대통령과 장준하님의 댓글

박정희 대통령과 장준하 작성일

박정희 대통령과 장준하

단군 이래 가장 숨가쁜 사회변혁의 혁신을 주도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사건건 반대를 일삼았던 장준하가 있다. 좌파들은 교묘하게 조작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로 매도하고, 장준하는 당대의 항일독립투사로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좌파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다까기 마사오”를 앞세워 당대의 친일파로 만들려 노래를 불러왔지만, 장준하의 창씨개명 “치요모토 슌가와”는 철저하게 숨겨왔다. 그런다고 장준하의 호적에 버젓이 올려있는  “치요모토 슌가와”를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과연 장준하가 대단한 항일독립운동가로 칭송받을 이렇다 할 공로나 또는 그에 비견되는 혁혁한 활동을 했는가를 살펴보면 독립운동가 소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시의 모든 민초가 고통 속에 암흑의 세월을 견딜 때 장준하는 그나마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대척점에 서려 했던 장준하 너무도 달라 보이는 두사람이다. 그러나 한살의 나이차이로 암흑의 시대 일제시대를 지성인으로 살아오며, 치열한 자기투쟁을 통해 단련한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대 그나마 주어진 조건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노력했던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배운 지식이 훗날 박정희, 장준하 모두 조국재건을 위한 도움이 되었다.



박정희와 장준하 두사람의 삶의 과정이 놀라우리만큼 닮아 있다. 다만 박정희는 그를 임신한 어머니가 입이라도 하나 덜고자 낙태를 위해 간장바가지를 들이킬 정도로 가난했지만, 장준하는 한학에 조예가 깊으면서 일찍이 개화되고 신학문에 눈을 뜬 조부가 있었고, 그런 조부는 장준하의 아버지를 당시 엘리트였던 목사로 키웠다. 또한 장준하의 조부는 사비를 털어 학교를 세웠을 정도로 재력있는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정반대이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나사렛묘지에서 열린 고(故) 장준하 선생 32주기 추도식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 2007.8.17)
 
 
 




박정희와 장준하 모두 일본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으며, 중등교사로 재직했다. 단 일본식 교육을 받은 과정이 다른 것은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일본육사에 진학했지만 장준하는 유복한 집안을 등에 업고 일본으로 유학가서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의 민초가 일본으로 유학간다는 것은 대단한 경제력과 배경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장준하는 신학을 공부했고, 박정희는 군사학을 공부했다. 신학은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교육 받을 곳이 많았고, 신앙생활을 통한 독학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군사학은 식민시절 일제교육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박정희는 만주군관 졸업 후 임관하여 만주국 군인이 되어 부대장의 부관으로 있다 해방을 맞는다. 장준하는 학도병으로 일제국군대에 자원입대하여 근무하다 탈출 후 광복군에 몇 개월 훈련받다 광복을 맞는다. 장준하의 자원입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장준하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원입대임을 고백했고, 장준하와 절친했던 고향친구인 최기일은 장준하가 동경신학교 재학 중 일본군에 입대하려 하자 이를 만류하였지만 자원입대했다고 증언까지 하고 있어 장준하의 일제국군대 자원입대는 논란의 여지가 끼여틀 틈이 없다. 특히 최기일은 “그는 어떤 뜻을 품었는지 일본군에 입대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회고 하고 있어 매우 자발적인 자원입대였음을 알 수 있다.



좌파들은 장준하가 자원입대했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숨기며, 장준하의 탈출을 놓고 광복군이 되기 위해 “탈출을 위한 기획입대”였다고 진실까지 왜곡하고 있다. 일제국군대에 자원입대하여, 훈련을 받고 전장터에서 몇 개월간 근무하다 탈출하는 것보다, 장준하의 본가가 있는 압록강 연안의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압록강만 건너면 중국이고, 국경을 넘어 광복군을 찾아가는 것이 손쉽고 손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좌파가 주장하는 장준하의 “기획탈출”은 언어도단이자 매우 불손한 진실왜곡인 것이다.



일본군대를 탈출하여 중국이 세운 군사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장준하는 독립이 되던 1945년 2월에 광복군에 편입되어 합류하지만 “차라리 다시 왜군에 항복해서 임시정부를 폭격하러 오고 싶습니다”라고 스스로 울부짖을 정도로  임시정부는 심각한 분열에 있어 실질적으로 장준하가 독립을 위한 투쟁이나 전투를 치를 처지도 되지 못했다. 이 후 장준하는 몇 개월간 미군 전략첩보대(OSS) 대원이 되어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대기하다 광복을 맞는다. 장준하의 실질적 독립운동은 전무한 것이다.



박정희와 장준하 너무나 다른듯 하지만 일제시대를 살은 두사람의 삶이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그런데 어째서 박정희는 친일파고 장준하는 당대의 항일독립투사로 진실을 왜곡하는지 그 뻔뻔함이 대단할 뿐이다. 내일 지구종말이 와서 오늘 교회가서 한번 기도한다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박정희가 친일파면 장준하도 친일파이다. 박정희가 훈도였으면 장준하도 훈도였다. 일본식교육을 받아 왜놈정신을 가진 박정희라면, 장준하는 왜놈정신을 배우기 위해 자비를 들여 유학까지 갔다 왔으니 왜놈정신이 박정희 보다 더욱 철저히 배어 있었다는 주장이 옳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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