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청공무원노동조합

경남도청공무원노동조합
  • 오늘접속 : 74
  • 전체접속 : 10,062,275

메인메뉴

본문컨텐츠

나도 한마디Home>참여마당>나도 한마디

공직을 떠나면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떠나면서 댓글 8건 조회 4,572회 작성일 12-06-22 09:00

본문

공직을 떠나면서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청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고향 창녕 부군수로 재직하다 명예 퇴직하는 허병찬 입니다.

언젠가 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정들었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自然人으로 돌아갑니다.

역설인지 모르지만 언제나 꿈꾸었던 自由人,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뜨고 그 동안 우리가 몰랐던 不識의 깨우침으로 범부가 스스로 불성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깁니다.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진정 아름다운 삶인가?

조금은 알듯 알듯한 나이만 먹었습니다.

마음은 청춘이고 갈 길은 먼데 육신은 예전만 같지 않으니 새로운 세상에 두려움이 없지 않습니다.

 

창녕에서 공직생활 20여년하다 ’97년 사무관으로 늦게 도청에 입성하여 이 자리까지 왔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선후배 동료 여러분께 고마움과 감사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공직이 나의 등에 짐이 되어 거센 세파에도 휘둘리지 않고 살아오게 한 버팀목이었음에 감사합니다.

 

언제나 가슴속에 공자님이 말씀하신 “思無邪”(시편 300수를

요약해 한마디로 하면 모든 일에 사악한 마음이 없어야 한다.)를 좌우명으로 삼아 나의 맡은 일에 임했습니다.

 

동료 여러분, 저는 퇴임 후 수년전에 마련한 밀양 산내면에 작은 집(億山房)에서 소요(逍遙)할 것입니다.

지나가시는 길이나 들르시면 차 한 잔, 때 되면 국수 한 그릇 이라도 대접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 내내 건승하고 행복하십시오.

 

2012년 6월

昌谷 許柄贊 올림

댓글목록

후배공무원님의 댓글

후배공무원 작성일

명예로운 퇴임을 축하드립니다. 퇴임후의 나날들도 아름답기를 기원합니다.

따르리님의 댓글

따르리 작성일

참 좋은 퇴임입니다, 퇴임 후의 나날도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소개님의 댓글

소개 작성일

김두관(金斗官, 1959년 4월 10일 경남 남해군 ~ )은 대한민국의 시민사회운동가, 언론인, 정치인으로, 민선 5기 제 34대 경상남도지사이다. 기초자치단체장을 거쳐 참여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 등을 지냈다. 그 동안 걸어온 정치 행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매우 유사해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갖고있다.[1]

목차
1 생애
1.1 남해군 군수 시절
1.2 노무현과의 인연
1.3 노무현 이후
2 약력
3 주석
4 바깥 고리
 

[편집] 생애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낙향해 남해 농민회 사무국장(1987년), 민중의 당 남해·하동 조직책(1988년), 남해신문 발행인(1989년-1995년)을 역임하며 농민운동을 했으며, 1995년 초대 지방선거와 1998년 2회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남해군수에 당선된다.

[편집] 남해군 군수 시절
김두관은 남해군수 시절 치세를 연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36살의 나이로 군수가 된 김두관은, 취임 직후 기자구락부를 폐쇄하고, 공무원과 지역 언론사와의 유착 관계를 근절하였다. 또한 취임 직후 군수 관사를 철거하고, 그곳을 민원인 쉼터와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등 파격적인 행정을 열었다. 김두관은 3대째 살고 있는 낡은 집에서 출퇴근하였다.

전국 번지점프대회를 남해대교에서 개최하였다. 김두관은 군수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직접 번지점프를 하여 당시 화제가 되었다.

또한 민원인 공개법정을 열어, 민원인들과 밀실에서 대화를 나누지 않고, 공개적인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렸다. 이렇게 해서 남해군의 골치병이었던 어장 분쟁 등을 해소하였다. 1970년대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 등 파독 교포들이 우리나라에서 쉴 수 있도록 '독일인 마을'을 만들었다. 또한 남해에 스포츠 파크를 만들어서 여러 나라의 국가대표들의 전지훈련장이 되었다.

이와 같은 김두관 체제는 당시의 지방자치 환경으로 보면 교범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로 인해 지자체 각종 평가에서 모두 1위를 하였고, 환경시범도시 선정, 환경대상 수상 등 각종 수상과 찬사가 이어졌다.

[편집] 노무현과의 인연
원래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에 도전하려 했으나, 당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권유로 고심끝에 민주당에 입당하여 경남도지사에 출마했다. 비록 한나라당 김혁규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지만, 당시 YS와 접촉하던 노무현에게 직언을 하는 등의 소신 행보를 보여 일각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3년 2월 25일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상당한 파격 인사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2003년 8월 한총련이 전쟁반대를 목적으로 포천에서 훈련을 하던 미군 스트라이크부대 사격 훈련장에 진입, 불법적으로 기습시위를 하면서 성조기를 불태우고 장갑차를 점거하는 행동을 보인 것으로 인해 한미간 우호적 관계 악화, 치안 부재, 경비소홀 등의 책임론이 당시 거대 야당이던 한나라당에 의해 제기되었다.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의 만류와, 김두관과 동향인 한나라당 중진 박희태 의원의 지도부 설득에도 불구하고 결국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안이 2003년 9월 3일, 여소야대 정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한나라당에 의해 가결된다. (한나라당, 자민련 의원만 출석, 160명 표결, 찬성-150표, 반대-7표, 기권-2표, 무효-1표)

노무현 대통령은 김두관 장관에게 국회를 설득하라고 지시했고, 철회 안을 요구했으나, [2]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노무현 대통령은 태풍 매미의 피해를 수습한 후에 적절한 시기에 해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해 9월 17일, 김두관 장관은 사표를 제출했고, 현직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상태에서 후임자 인선을 발표했으며, 허성관 해양수산부 장관이 새 행정안전부 장관직에 내정되었다.[3](해양수산부 장관에는 최낙정 해양수산부 차관이 내정되었다) 9월 19일, 정부 종합청사에서 두 신,구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임식, 취임식을 가졌다.

당시 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해임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대답이 높았다. (거부권 행사58%/해임안 수용42%)[4]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헌정사상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될수도 있었다.

이후 2004년 총선에서 경남 남해·하동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의 중진 박희태에게 7천여표차로 패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중앙위원(2004년-2007년), 청와대 정무특보(2005년-2006년)를 차례로 지냈으며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경남도지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김태호 지사에게 50여만표차로 참패한다.

2006년 11월 6일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다.[5]

2009년, 10월, 경남 양산의 재보궐선거에서 참여정부 출신 송인배 행정관이 출마를 하자, 김두관 전 장관은 문재인 전 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6]

[편집] 노무현 이후
2010년 4월 26일 경상남도지사로 출마하여 야권단일후보로 결정됐다. 희망자치만들기경남연대와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이 참여한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전국 최초로 야권단일후보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와 경쟁하여 1위로 당선되었다.[7] 이 과정에서 김두관은 당선축하 화환 대신에 '쌀을 보내오면 불우이웃을 돕는데 쓰겠다'고 하였으나 선관위측에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하여 이를 번복하기도 하였다. 네티즌들은 '수십만원짜리 화환은 합법이고, 불우이웃 돕는데 쓰는 쌀은 불법이냐'며 선관위측을 비판하기도 하였다[8]

[편집] 약력
1977년 남해종합고등학교 졸업
1981년 경북전문대학 행정과 졸업
1987년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7년 남해농민회 사무국장
1988년 민중의당 남해ㆍ하동지구당 위원장
1989년 남해신문(주)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ㆍ편집인 ( ~ 1995년)
1995년 7월 1일 ~ 2002년 4월 10일 : 38~39대 경남 남해군수 (2선,무소속)
2001년 자치연대 공동대표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남도지사 후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남해ㆍ하동지구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2003년 새천년민주당 당개혁특위 위원
2003년 행정자치부 장관
2003년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현재)
2003년 지방분권연구소 이사장 (현재)
2004년 열린우리당 경남도지부장
2005년 대통령 정무특보
2006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경남도지사 후보
2006년 (사)민부정책연구원 이사장 (현재)
2009년 민주당 송인배 후보 경남 양산 캠프 공동선대위원장
2010년 민선 5기 제 34대 경상남도지사

우리의모범님의 댓글

우리의모범 작성일

허병찬 님
님은 우리 공무원이 지켜야할 모범을 보이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퇴임할적에 욕먹고 퇴임하는놈이 있는 반면

님 처럼 퇴임하실적에 칭송을 받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그래도 공직사회를 밝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가시더라도 건강하시고 맘 편히 잘 사시길 진정으로 기원합니다

같이 근무했었던 적이 있는 후배가

지랄소개님의 댓글

지랄소개 작성일

허병찬 부군수님 퇴직에 왜 김두관이 소개가 나오노 지랄 옆차기 하고 있네

잘난 도지사 따위 퇴직을 허병찬 부군수님 퇴직에 비유하지 마라

균형ㆍ복지ㆍ공정 인사 등으로 '통합'님의 댓글

균형ㆍ복지ㆍ공정 인사 등으로… 작성일

균형ㆍ복지ㆍ공정 인사 등으로 '통합' 이미지 구축

중도사퇴로 '신뢰' 타격..장기사업 연속성 불투명

(창원=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지방자치 부활 20년만에 첫 진보성향의 경남도백이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출범했던 '김두관 도정' 2년이 지났다.

김 지사 취임후 '성장과 복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고, 새누리당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도의회와 '여소야대' 관계 속에서도 실험은 계속됐다.

그러나 무소속으로 출발한 김 지사가 민주당에 입당한 데 이어 임기 반환점인 7월 초 대선 출마와 도지사직 사퇴를 예고하고 있어 도정은 혼선이 불가피해졌다.





◇'통합ㆍ균등' 기치 아래 복지에 중점

김두관 지사가 내세운 도정 핵심 구호는 '민(民)은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않고 균등하지 않은 것을 우려한다'(不患貧 患不均)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다수인 의회와의 충돌을 각오하면서도 각종 보편적 복지 사업을 폈고 시ㆍ군간 균형발전을 이루도록 특수시책을 벌였다.

곡절 끝에 시행된 친환경무상급식, 어르신 틀니 보급 사업, '보호자 없는 병원' 등은 다른 지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야권단일후보로 당선된 김 지사는 일부 새누리당 도의원으로부터 인신공격성 질의를 수차례 받는 등 힘든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대화 모드'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유일하게 도의회 출석률 100%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도청 간부들에게도 항상 "도의원들에게 사전 설명을 충분히 하고 제기한 문제점은 도정에 적극 반영하라"고 주문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도의회 허기도 의장도 "김 지사가 의회와 관계 속에서 속이 상하고 힘든 점도 있었을텐데 항상 화합하고 큰 마찰없이 지내온 점을 평가한다"며 "그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경남도가 26일 도정 2년 성과를 브리핑하면서도 "의회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통합과 융합의 정치를 이룩했다"고 자평했다.

2년간 인사를 하면서 전혀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내부 평가와 의견만을 참고한 점은 노조와 직원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

김 지사는 취임 초기 기초자치단체 통합 대신 부산ㆍ울산ㆍ경남을 통합한 '동남권특별자치도'를 제안했다.

부산과 울산의 시큰둥한 반응 속에 진전을 보지 못했지만 도의회에서 '동남권광역연합'을 제안하고 양산의 '동남권 상생발전특구' 지정, 동남권광역교통본부 설치 등 성과로 이어졌다.

경제분야에서는 유럽경제 위기 등 세계경제 성장세 둔화로 고용지표가 악화일로를 걸었지만 경남도는 전국 최초로 고용우수기업 지원조례를 제정, 복지수요와 연계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을 추진했다고 경남도는 밝혔다.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테스트베드 구축사업에서 풍력부품과 수소연료전지 2개 분야가 선정됐고, 동남권 해상풍력부품 실용화 개발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옥상과 폐도 등을 활용한 165㎿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 조성사업과 그린홈 10만가구 보급 전국 1위로 신재생 에너지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사직 중도사퇴 예고..도정 '연속성' 과제

김 지사가 민주당 입당에 이어 최근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고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경선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도정도 흔들리고 있다.

당장 내달 중 지사직을 사퇴하면 임채호 행정부지사가 연말 대선과 동시에 치러지는 보선에서 새 지사가 선출될 때까지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지사가 누구로 바뀌든 김 지사의 주요 공약과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기 힘들 것은 뻔하다.

경남도는 김 지사의 공약 144건 가운데 13건이 완료되고 130건은 정상추진되고 있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 예산을 시ㆍ군별로 200억원씩 지원하는 '모자이크 사업'을 비롯해 장기 투자가 필요한 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될지 우려가 크다.

'야권 공동정부'의 상징인 민주도정협의회는 2년만에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김 지사가 낙동강 사업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운영한 낙동강특위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또 수요예측 잘못으로 천문학적인 재정부담을 하고 있는 김해경전철과 거가대교 등 민자사업 최소운영수익보장(MRG) 문제는 여전히 경남도의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부산시와의 오랜 갈등 요인인 동남권 신공항 건설과 입지, 지리산댐 건설을 비롯한 광역권 상수도사업 등도 별 진척 없이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허기도 도의회 의장은 "김 지사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도 소통에 힘쓴 점을 평가한다"면서도 "지사직을 중도 사퇴한다면 도정의 연속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평가했다.

도청 공무원노조 김용덕 위원장은 "김 지사가 소외계층의 의견을 경청하고 도정에 반영한 것이 여당 출신 지사와 확실히 달랐다"며 "특히 인사 만큼은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게 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취임 초기 일부 의견만 듣고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가 1년만에 바꾼 것은 흠"이라며 "중도사퇴한다면 도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잘못이지만 더 큰 일을 위해 나간다면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말 이해가님의 댓글

정말 이해가 작성일

정말 이해가 않된다 아이가...

님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고...

촌놈이면서 어럽고 불쌍한 놈을 지리발고 가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한다고 떠덜어대면....

누가? 아니 어느 귀신이 그걸 믿겠노야...

통탄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너가 알고 내가 알고

4방8방 귀신들이 모두 다 알고 있는데

비밀이 어디있노 말이다.

구멍문조리님의 댓글

구멍문조리 작성일

공무원이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에 중대한 손해를 끼쳐을 때는 민,형사상책임은 물론 변상책임이 따르고 있으며 이를 이행 하지 않을시는 구상권 행사로 법적 조치도 한다.선거직 공무원이 공직 선거로당선되어 중도 하차시는 선거 비용이 국민의 세금 즉 혈세로 치렸다 .중도 하차한  김두관 전도지사는국민의 혈세 도지사 재 선거 비용을  변상 시켜야 한다.누구 든지 중도 하차 하는 선거직 공무원은  선거 비용 변상 시키는 전 국민 운동으로 확산 시켜야 한다.

하단카피라이터

경상남도청공무원노동조합 / 주소 (51154) 경남 창원시 의창구 중앙대로 300 (사림동 1) / 대표전화 055.211.2580~3 / 팩스 055.211.2589 / 메일 ako2582@korea.kr
Copyright(c)경상남도청공무원노동조합.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