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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선거 당선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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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합원 댓글 2건 조회 1,575회 작성일 12-02-2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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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도청 임원선거 당선을 조합원의 한사람으로써 축하합니다
 
그러나 기권 105표, 반대 74표 무효 3표가 나왔습니다
 
당신을 대 놓고 반대하는 세력도 많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요
 
지금까지 임원으로서 강력한 노동조합건설이라는 미명하에  안하무인격행동,
 
정말 4가지 없는 행동 조합원이 내가 봐도 정말 아니었습니다 그런 행동이 결국 조합원
 
에게 부메랑이 되어 불이익이 되어 온다는 사실을 명심, 명심 또 명심하십시요
 
노조위원장이 큰 벼슬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아무리 변하고님의 댓글

아무리 변하고 작성일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더라도 희생정신만큼 숭고한 것은 없다. 가정, 사회, 국가, 세계 등 그 어떠한 집단이든지 희생정신이 살아 있는 집단은 생명이 있고 반드시 발전한다. 특별히 이 희생정신은 지도자들에게 갊아져 있어야 한다. 특히,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정신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살신성인(殺身聖人)의 희생정신이다. 지도자들이 살신성인(殺身聖人)의 희생정신을 발휘한다면, 그 집단은 놀라울 정도로 무서운 발전을 할 것이고, 그 지도자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자리 할 것이다.

공도헌신자 이부사지(公道獻身者 以父事之)라하여 공도자를 어버이처럼 섬길 것이니까. 그런 희생이 인(仁)을 이룬다고 한다. 이 인(仁)은 도덕적의 인(仁), 진리적 인(仁), 성스러운 인(仁)이다. 이 어질 인(仁)을 성스러운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지도자의 참다운 가치는 대중들을 위하여 그가 속한 사회집단을 위하여 살신성인(殺身聖人)의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신을 마음과 대동하게 여기고, 마음을 ‘나, Ego, 자아’로서 보편적으로 표현을 한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의 자아가 있다고 한다. 진리적 자아( 眞理的 自我 ), 습관적 자아( 習慣的 自我 ), 사회적 자아 (社會的 自我 )가 그것이다.

진리적 자아를 실현시키면 그것이 곧 인(仁)의 근본이 된다고 한다. 각자 사람들은 본래적 자아가 있다. 그것을 무아적 자아라 하고, 무아적인 본래 자아를 깨닫고 그것을 본 받아 실천하는 것을 진리적 자아라고 한다. 이 진리적 자아가 인(仁)의 모체를 실현하는 것이며, 인의 모체가 실현 될 때 살신성인(殺身聖人)의 희생정신이 저절로 무의식적으로 발현하게 된다. 그리고 무아적인 본래 자아를 깨닫는 방법은 찰라 찰라에 변화하는 자기 마음을 잘 성찰하면 알 수 있다. 매일, 매일 접하는 경계 경계 마다 자기 마음을 잘 성찰하여 무아적인 자아가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터득해야 한다.

다음은 습관적 자아이다. 습관적 자아는 본래 똑같은 마음인데, 경계 따라서 한 마음을 내면, 마음 내는 그 쪽으로 마음이 길들여지고, 말(언어)이 길들여지고, 몸이 길들여지게 된다. 이렇게 길들여진 자아가 지금의 ‘나’ 인 것이다. 이것을 습관적 자아라고 한다. 바로 나의 인격이고 나의 인생이다. 흔히들 말하는 그 업의 정의가 습관적인 자아이다. 습관적인 자아가 잘 길들여진 사람들을 우리는 지혜롭고, 덕성스럽다고 한다. 지혜와 덕성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지혜와 덕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한다고 했다. 천지는 민심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대인여천지합기덕(大人與天地合其德)이라. 대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한다고 했다.

다음은 사회적 자아이다. “누구,누구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세상에 돌아다니는 소문이 있다. 아무게 하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있다. 우리가 청문회를 보면 그 사람의 사회 기여도를 알게 된다. 이것을 사회적 자아라고 하고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면,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과 타인이 나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착하고 실력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평가가 다르면 사회적 자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어떤 평가를 받는가,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여실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아 형성의 좋은 방법은 사람을 바르게 볼 줄 알아야 하고 (知人) 사람을 바르게 잘 기를 줄 알아야 하며 (育人) 사람을 바르게 잘 활용(用人)할 때 지도자의 사회적 자아가 잘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많은 지도자들이 배출될텐데, 덕목을 잘 갖춘 자질 있는 지도자들이 많으면 좋겠네!

문화인류학자님의 댓글

문화인류학자 작성일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자신의 논문 ‘두꺼운 묘사(thick description)’에서 온갖 종류의 ‘윙크’에 대해 얘기한다. 그의 주장은 ‘눈깜박거림’과 ‘윙크’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이 논리를 어찌하여 저명한 학자가 구구절절이 설명하는가? 기어츠는 한 사물·사건·현상에 여러 가지 의미가 내재함을 윙크를 예로 설명한 것이다. 다른 예로 설명을 더하자면, 저기 저렇게 오랜 세월 그대로의 모양새로 견뎌내는 산 들 계곡 강 바다 늪 등으로 구성된 거대한 자연도 실은 여러 가지 내용, 즉 ‘두꺼운’ 의미를 담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식의 얘기다.

모든 것이 이러함에도 예컨대 개발을 위주로 하는 토건적(土建的) 논자에겐 산 들 계곡 강 바다 늪 같은 대자연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 개발돼야 할 존재’ 그 이상이 아니게 된다. 기어츠의 말로 표현하면 토건 논자는 대자연에 ‘두꺼운 묘사’가 아니라 ‘얇은 묘사(thin description)’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대자연을 ‘심층(深層)’이 아니라 ‘표층(表層)’만으로 이해한다. 문제는 이 표층적 토건 논리가 공직자 사회로 이전돼 모든 행정적 사안이 표층적 척결 대상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이 같은 공직 사회 분위기를 ‘사물맹(事物盲)’이라 할 것이다. 다른 말로 ‘현장맹(現場盲)’이라 해도 좋다.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만지고 하여 ‘두껍게’ 곧 심층적 다양한 의미를 찾아내려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서류로 일을 ‘얇게’ 즉 표층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뜻이다. 선출직을 포함하여 일부 공직자들이 현장에 맹이요, 사물에 맹이므로 토건업자의 주장에 맹목적 순종적일 수밖에 없다. 현장 혹은 사물의 진면목을 알아야 진위를 가릴 수 있을 터인데, 가보지 않으니 업자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조상들의 인문학 편식증과 연관된다. 즉, 몸으로 부딪쳐 뭔가 얻는 무실역행(務實力行)이 아니라 관념만으로 “이미 다 했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민 의사를 ‘두껍게’ 묻지 않은 홍천 구만리와 강릉 구정면 골프장 건설, 주민들의 불편을 심층적으로 헤아리지 않은 순포호 생태습지 조성, 실증을 외면하여 ‘얇게’ 해석한 경포대 개조 등 현장의 고통과 그로 인한 주민 저항을 예상치 않은 지자체의 각종 사업이 그렇다.

그리하여 피해 본 주민들이 도청과 시청 앞에서 살을 에는 강추위 속에 장기간 농성을 벌이는 안쓰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는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공직자의 의식은 우리네 오래된 고질병인 사농공상(士農工商) 계급의식 아래 형이상학에 치중했던 일부 사대부의 훈구학 심취 현상과도 관련 있어 보이고, 우리 정치가들이 빈수레에 가치가 모호한 ‘뻥쟁이’가 된 것 역시 사물과 현상에 관심 갖길 거부하는 우리네 관념 지상주의적 인문 전통과 관련 있어 보인다. 그리하여 예컨대 엄마야 누나야가 강변 살던 삼천리금수강산의 습지와 모래톱과 강바닥을 파헤쳐 거대한 인공 수조로 개조하는 ‘4대강 사업’이라며, 그 진의와는 무관하게 이 사업이 ‘얇은’ 결정이며, 권력에 곡학을 해대는 학자들과 ‘사물맹’ ‘현장맹’ 일부 공직자들의 표층적 판단에 의한 것이란 비판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빌미를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윙크로 가보자. 어떤 사람이 윙크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특정인에게, 특정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인정된 코드에 의해, 같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던가. 겉으로 보기에는 조건 반사와 다르지 않은 눈깜박임이지만, 애정과 음모와 조롱의 윙크는 각기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단순한 눈깜박이 아닌, 주민들의 ‘뜻이 담긴’ 윙크를 공직자들은 깊이 있게 그리고 다양하게 해석해야 마땅하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문제는 다시 ‘주민과의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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