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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공모제의 취지에 걸맞게 내실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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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직위공모 댓글 9건 조회 4,658회 작성일 10-10-01 09:47

본문


1. 노조에서는 직위별 소견이나 소신발표회 및 공개토론회를 열어야 한다


2. 그 직위에 적합여부를 전 조합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공개하여야 한다.


3. 질문위원은 노조집행부에서 5명 이내로 선정구성하고 질문시간 등을 정하여 운영하면 된다.


4. 공개 청문회가 이뤄져야 만이 혈연, 지연, 학연, 로비전 등이 방지되고

   선정이후 뒷말이 무성함을 방지할 수 있다.


5. 대한민국 번영1번지가 경남이 되려면 타시도 보다 무언가 비교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한다.


6. 살아있는 노조활동으로 조합원 다수가 공감하고 맴을 읽어 정말 피부에 와 닫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생각님의 댓글

생각 작성일

생각이 모두 같지는 않을 것 같은데..직위공모에 응모하는 담당은 자기의 발자취를 A4요지 3-4매에 기술하여 전직원에 공개하고...지난 20-30년간의 행적을 이리저리 다 알수 있고, 심성 업무능력 리더쉽 등도 바로 알 수 있지  않나요, 오히려 문서화 하여 직원에 공지 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직렬별로 다 공개 발표회 하자면 1명당 10분 정도씩 소견 발표, 공개 토론회 하면, 며칠 걸리까요, 말 잘한다고 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소리 없는 실천력이 중요 하지 않을까요, 공무원 담당의 직위공모를 정치의 선거처럼 요란하게 해야만이 능력 있는 유능한 분이 담당으로 될까요, "공개 청문회가 이뤄져야 만이 혈연, 지연, 학연, 로비전 등이 방지되고" 하셨는데 공개적으로 소견이나 소신 발표 한다고 지연 학연 혈연 로비전이 방지 되나요, 우리나라 좋은제도 좋은 법 많아요, 중요한 것은 당신의 양심적인 표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부터 당신의 한표 한표를 양심껏 행사하면 좋은 분이 담당으로 될 수 있를 꺼예요, 그걸 동료직원께 이야기 하세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실천이 없어면 무용지물이에요,

말로해야님의 댓글

말로해야 작성일

지사님앞에서

말도 안하고
결재 받아오나요.

그~참~사무관쯤 되면
소신있게 자기표현을 할 줄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여?????

글로써 표현한다?? 그것은 글재주 좋은 분들께 용역 주면 됩니다.
작가 이상의 명품자서전도 나온다고요 출판사에 여쭤보세요.

정말 그사람에 대해 말로써 표현해야 진실을 알수가 있다
말이 어물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지는...  제대로 물어보면 될 것을...

어느님이 그리 글잘?쓰는지~~ 자기기술서 내용보고 찍었나봐여
2~30년 정도 경험있는 공무원은 비숫한 경험과 업무추진내용 등을 글로 쓰던데.....

통 알 수가 없더이더만~~~~~~

그래 맞다님의 댓글

그래 맞다 작성일

그래 맞다

청문회를
서면으로 했으면

모씨가
국무총리는 바로 했을걸~~~~~~

죽일 놈들님의 댓글

죽일 놈들 작성일

미친 놈들 정신 나간 놈들 직장이 없어 죽을 판인데 밥그릇 쌈 질이나 하고 애이 나쁜 놈들 일자리 없어 밥도 못 먹는다 이 죽일 놈들아

너두님의 댓글

너두 작성일

너두
미친놈이구

모두 미친 놈의 세상
 아이겠수

함께님의 댓글

함께 작성일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폐단에 대해 그대가 말을 많이 했는데 그 말들은 모두 명백하다. 그런데 어째서 풍습을 따라 남을 흉내내는 버릇을 근일의 일에 슬그머니 끼워 넣고는 함께 목욕하면서 남을 벌거숭이라고 비웃는 짓을 하는가? 과거에는 이른바 남을 징계하고 제방(制防)하는 일에 관해서는 충직한 자만이 감히 말을 꺼냈다. 지금은 지극히 나약하고 전혀 각을 세우지 못한 주제에 남의 잘못을 들춰내 경질시키는 짓거리에나 관심을 두는 자들이 떠도는 말을 흘려듣고 비교할 상대가 없을 만큼 모질게 대든다. 이 밖의 시정(時政)이나 일반 관료에게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은 토란을 씹고 대추를 삼켰는지 말을 하지 않는다. 징계하고 제방하는 것이 헐뜯고 아첨하는 자들이 출세하는 교묘한 수단이고, 약빠르고 날쌘 자들이 남의 뺨을 올려붙이는 졸렬한 꾀가 되었다.

1800년 3월5일 대사간 유한녕(兪漢寧)이 올린 상소에 정조가 답변한 내용이다. 같은 해 2월3일 정치적으로 금고되었던 조영순과 이재간을 사면하자 신하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 상소를 올렸다. 그러자 정조는 사흘 뒤 상소 금지령을 내렸다.

그때 대사간이 언로를 막지 말고 자신을 파면하라는 상소를 올리자 이렇게 답변했다. 그런데 이 답변은 지금 읽어봐도 상당히 거칠고 공격적이다. 언로를 터서 누구나 정치를 논하라고 했으나 상소에서 한다는 말이 정조가 보기엔 가관이다. 상소를 남을 거꾸러뜨리고 상대의 뺨을 후려쳐서 입신출세하는 간교한 도구로 악용하는 짓을 조정 관료들 가운데 안 하는 자가 없다. 강직하고 깨끗한 자가 제대로 비판도 하고 상소도 하는 것인데, 남들이 한다고 들으면 아무나 마구 덤벼들어 더 큰소리로 떠든다. 상대를 욕할 주제도 아닌 자들이 더하다. 그런 자들을 향해 정조는 ‘함께 목욕하면서 남을 벌거숭이라고 비웃는 짓(同浴譏裸)’이라며 비아냥거렸다. 관료 전체와 과감하게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착한 것이님의 댓글

착한 것이 작성일

요즘 내가 즐겨 보는 드라마는 SBS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MBC <동이>다. 얼마 전 종방한 KBS 2TV의 <제빵왕 김탁구>도 거의 빠지지 않고 챙겨봤다. 종방 시청률이 50%를 넘은 ‘김탁구’를 비롯해 나머지 두 드라마도 2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으니 요즘 이 드라마들이 대세인 것은 사실인 듯하다.

특별히 대단한 스타가 캐스팅된 것도 아니고, 엄청난 배신과 음모와 질곡의 드라마를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시선을 압도하는 멋진 장면이 연출된 것도 아니어서 이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꽤 있다.

그런데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내가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다. 그냥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다는 거다. 극단적인 음모와 복수와 배신의 충격을 감당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잘못된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주인공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옳지 않은 일, 부끄러운 일,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원칙을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갈등하는 일조차 없다. 한마디로 착한 주인공, 공정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담없이 편하고 담담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예전 같으면 교과서적이라고, 지나치게 착해서 촌스럽다고 비웃으며 외면했을 것이 분명한 드라마인데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생각해 봤다. 막장 드라마 전성기를 지나오면서 그것이 주는 재미와 함께 피로도도 얼마나 강력한지 체험했을 것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요즘의 막장 정치를 지켜보면서 완전히 지쳐버린 것 같다. 부정의와 비리, 진실에 대한 외면과 은폐, 배신, 거짓말로 얼룩진 청문회, 4대강 사업, 천안함 사건, 스폰서검사비리사건의 조사결과 등을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지켜보고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심리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지 절감한다.

뿐인가. 부조리하고 원칙 없는 사회에서 살다보니 개인의 삶은 또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모른다. 원칙을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나만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경직된 것은 아닐까, 무엇이 유연이고 무엇이 타협인가 하는 생각들로 매순간 수없이 흔들린다. 이러느라 우리는 집단적 스트레스 상황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우리는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고지식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회에 살았다. 1970, 80년대 대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지배층에 요구했던 것들은 비현실적이고, 철없으며, 강박적일 만큼 고지식한 것이라고 비난받았으며,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반성했다. 나 역시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선조의 가르침을 덕목으로 삼아 융통성 있고, 유연해지고 싶었던 때가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 역사에서 지나치게 맑은 물을 우려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했던 적이 있기나 했는가? 맑은물 콤플렉스, 정말 웃기는 일이다.

북유럽은 국가청렴도가 높은 지역이다. 스웨덴의 부총리는 조카에게 줄 30만원가량의 선물을 공적인 카드로 구입했다는 이유로 낙마했으며, 교통범칙금으로 1억8000만원을 냈다는 핀란드 노키아 부사장의 일화도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싶다. 비리와 잘못에 관한 한 정확한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원칙을 어긴 사람을 봐줄까 말까 혹은 원칙을 어길까 말까로 늘 고민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원칙을 지키는 게 사실은 훨씬 속편한 일이라는 걸 요즘 절감한다. 착한 행위, 공정한 선택이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룰이 되었으면 좋겠다.

배려님의 댓글

배려 작성일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중략.

-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착한 것이 편한 것이다 .
<인생은 아름다워> <동이><제빵왕 김탁구>
주인공 모두 착하니까 끝이 좋으네요

중상모략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는
반드시 비참한 결과로 보답되어지던데

오늘은 1004데이라고 하네요

착하게 바르게 배려하며 살아갑시다

비석님의 댓글

비석 작성일

추석 연휴, 아마도 수천만 명의 성묘객들이 조상의 묘소를 참배했을 것이리라. 조촐한 돌비석 하나뿐인 공원묘지에 국화꽃 한 다발을 갖다 놓은 후손들도 있을 것이고 거창하게 치장된 분묘에서 술잔을 올린 후손도 있었을 것이다.
성묘길 코스모스가 핀 길섶을 지나며 사람들은 왜 무덤 앞에 굳이 비석을 세우고, 그것도 가세(家勢)가 큰 집안은 육중한 가첨석을 얹거나 농대석에다 귀갑(龜甲)을 받친 비석에 긴 비명(碑銘)을 새기고 싶어할까를 생각해 본다.

왕의 능(陵)조차도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과 세종의 영릉(英陵)까지는 치적과 공덕(功德)의 비명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졌으나 문종 이후론 ‘임금이 행한 일이나 자취는 국사(國史)에 다 기록되어 있으므로 굳이 사대부와 같이 신도비(神道碑)를 세울 필요가 없다’는 주청에 따라 능표만 세우고 비명을 새긴 비는 없앴다. 오히려 세간에서 조상의 치적을 새기고 묘소 주변에는 울타리까지 치는 세칭 호화분묘를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런 별난 묘소를 보노라면 ‘본래 그 속(묘지)에 들어간 사람은 어차피 밖으로 못 나올 거고 바깥 사람은 그 속에 들어가고 싶어하지도 않을 건데 울타리는 왜 치느냐’고 꼬집었다는 마크 트웨인의 풍자가 생각난다.

비석은 고인의 삶의 행적이 비명으로 남겨야 할 만큼 빛나고 감동적인 것일 때만 세우는 게 걸맞다. 수많은 비명이나 치적을 기린 기념관 등을 보면 어느 누가 말했듯 ‘사람들이 비석을 세우는 것은 죽은 자의 체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체면을 빛내기 위한 것일 때가 많다’는 말을 되새겨보게 된다.

조조가 자신의 가짜 무덤을 72개나 만들어 스스로의 부끄럽고 악(惡)했던 삶을 숨기고 싶어했던 경우처럼 때로 후세가 만들어준 비석은 오히려 부끄러움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현대사에도 논란이 많았던 역대 대통령들의 삶과 행적을 기리는 기념관, 공원 등은 죽은 자를 위한 뜻이 없진 않겠지만 뒤에 살아있는 자들의 체면을 빛내기 위해 세워진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기념관, 동상, 기념비를 세우는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정치적 고려가 개입됐었기 때문이다.

추석 전 누가 필자에게 메일로 다섯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한 장은 김대중 컨벤션센터(총면적 1만 2천 평, 주차시설 1천700대, 공사비 785억 원) 사진이었고 또 한 장은 김영삼 기록전시관 사진, 다른 또 한 장은 음악가 윤이상 기념공원(국비 80억 원) 사진,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짓다 만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설 현장 사진이었다. 녹슨 리어카가 보이고 기초 골조만 다진 콘크리트 벽 앞에 잡초가 우거진 초라한 장면이었다.

DJ, YS의 공과(功過)와 치적 논란은 덮자. 김일성 주석 사망 5주년 때 ‘아~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 부디 영생불멸하십시오…’라고 썼다는 편지와 그런 행적을 지닌 사람의 이름으로 기념공원을 만드는 게 합당하냐는 논란이 덧붙어 있는 윤이상 씨에 대한 인터넷 자료 또한 덮자.

다만 우리 모두 이런저런 비석들 앞에서 큰절하고 돌아온 지금, 한국 땅에선 미루고, 멈춰지고, 책정된 예산마저 환수당하며 밀쳐졌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비가 한국이 아닌 독일에 먼저 세워진다는 소식만은 뼈저리게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46년 전 독일에 파견 간 광부들, 간호사들과 만나 목 놓아 울었던 그 장소다. 미국에서도 이 땅에선 동상까지 쓰러뜨렸던 이승만 전 대통령을 위해 ‘이승만 홀’을 만든다고 한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지우는 것은 비바람이 아니라 망각을 잘하는 인간의 마음이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진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죽은 자의 거짓과 진실을 가리기 전에 너무 쉽게 휩쓸리고 넘어가 버리며 그들의 숨겨진 허상을 망각한 채 안 세워야 할 비석을 세우고 세워야 할 비석은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닌지…. 추석을 보내며 비명(碑銘)의 진실과 허구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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