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의 창이냐? 지방정부의 방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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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작교 댓글 0건 조회 812회 작성일 10-09-15 17:42본문
창과 방패 장면 1. 9월 3일 정부중앙청사
행정안전부가 시·도 감사관 회의를 소집했다. 정부중앙청사에 모인 감사관들은 며칠 전 행안부 차관이 주재한 시·도 부단체장 회의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딱히 긴장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행안부가 요구하는 성적을 못 낸 지역의 감사관은 숙제를 못 해 안절부절못한 학생같이 심한 압박감으로 불편할 뿐이었다.
행안부의 푸념으로 시작된 회의는 큰소리로 호통치지만 않았을 뿐 수학공식을 설명하듯 '이렇게 하면 되는데….'라며 성적이 저조한 시·도 감사관을 능력 없는 존재로 몰아갔다. '교과부는 한 달 만에 완료했는데….'라는 말은 감사관의 무능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그 기간의 차이만큼 강한 압박으로 느껴졌다.
9월 3일 행안부는 그동안 두 차례 공격에도 움직이지 않는 지방정부를 향해 마지막으로 선전포고를 하듯이 반짝반짝 빛나는 창을 높이 들었다. 지난 6.2지방선거 이후 녹이 슨 창을 날카롭게 만들어 방패를 뚫고 말겠다는 기세로 최후 공격을 준비하는 행안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정당가입 및 당비납부 혐의가 있는 공무원을 징계의결 요구하라.'라는 협조를 처음 구한 날은 지난 5월 25일이다. 공문을 내리기 전 광역시와 도 부단체장·감사관 회의(5월 20일 개최)를 통해 공유한 일이니 100% 완료라는 기대를 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60개 기관 89명 중 28개 기관 37명만 징계의결 요구하여 50%를 넘기지 못했다.
심기가 불편했지만 8월 5일 한 번 더 협조공문을 내려보기로 했다. 처음 공격을 잘 버틴 지방정부는 두 번 째 공격도 무난히 넘겼다. 대부분 '법원의 재판 결과를 보고 징계를 할 건지 말 건지 판단해야 한다.'라는 방패로 맞서 행안부의 요구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징계의결을 요구한 28개 기관의 37명에 대해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를 열었지만 '징계의결을 유보한다.'라는 결정을 했다. 1차 방패만 뚫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인사위원회라는 2차 방패에 행안부의 창이 멈추어버린 일이 발생했다.
9월 3일 최후통첩이 또다시 지방정부의 방패에 막힐뻔한 일이 있었다. 지난 9일 인천지역 군수·구청장 협의회가 성명서를 통해 공무원에 대한 1차 징계권한은 해당 기초단체에 있는데도 일괄적인 중징계를 요구하는 것은 단체장의 권한을 제약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징계절차는 현재 진행 중인 법원의 판결을 지켜본 뒤 적법하게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뜻을 내놓았다. 이 일은 하루만에 번복되어 '백기투항'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방정부가 호기 있게 방어를 했지만 하루 만에 '백기투항'을 했다. 행안부의 창을 견디지 못하고 일일천하로 끝나버린 지방정부가 자신 있게 내놓은 방패의 약점은 무엇일까?
창과 방패 장면 2. 7월 27일 수원지방법원
지난 7월 27일 중앙과 지방의 격전 중 가장 흥미롭게 진행되어 마지막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수원지방법원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특권교육 정책을 반대하고, 무상 급식 등 서민을 위한 교육 정책으로 첫 주민 직선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한 김상곤 교육감은 진보교육감으로 불리며 혁신학교를 실험하는 등 철옹성같이 견고했던 보수적 교육행정을 바꾸기 위해 분주한 날을 보낸 덕택에 재선에 출마하여 성공했다.
처음 교육감으로 당선된 이후 그의 교육철학과 이념은 일부 세력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몇 번이나 좌초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무상급식이 그랬다. 그랬던 무상급식이 지난 6.2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대표공약의 자리를 차지했다.
김 교육감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걸어왔던 길마다 덫을 놓고 함정을 파놓아 항복선언을 받아내려던 교과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창을 겨누었다. 교과부는 김 교육감을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를 징계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직무유기죄로 검찰에 고발해버린 것이다. 정조준하여 깊숙하게 찌른 창은 힘을 발휘했다.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와 교원의 정치적인 중립성이 상충되는 점에서 다툼의 소지가 있다."라며 시국선언 교사의 징계를 유보한 김 교육감을 검찰이 불구속 기소하여 징역 10월을 구형했다.
교과부가 준비한 창이 부러지느냐? 김 교육감이 교과부의 창에 배수진없이 정면으로 들이민 방패가 성공하느냐? 그 갈림길에서 사법부는 김 교육감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원지법은 교사들의 시국선언 가담 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인지 불명확한 상태에서 해당 교사들의 징계를 유보한 김 교육감의 소신과 양심에 따른 행동이 교육감의 정당한 재량권 행사에 해당한다며 무죄로 판결하였다.
행안부가 김상곤 교육감 사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유는?
장면1.과 장면2.는 중앙과 지방의 대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장면1.은 '백기투항'으로 끝나버려 아쉬움을 남기고, 장면2.는 유퀘하지 못한 일을 저지르는 중앙 권력에 맞서 소신과 양심이 승리한 일이라 '쾌'하다. 상쾌함, 통쾌함과 함께 스폰서로 얼룩진 사법부를 불쾌하게 바라보았던 시선을 잠시나마 거두게 하는 유쾌한 결정이었다.
행안부도 장면1.과 2.를 모를 리 없다. 장면2.의 교과부처럼 망신살이 뻗지 않으려면 사전에 지방정부를 단속하는 일이 필요했다. 9월 3일 회의에서 감사관들이 다른 해석을 하지 못하도록 자세한 안내도 곁들였다. 그런데 인천의 대표선수들이 방패를 치켜드니 처음에는 당황하고 곤혼스러웠다.
'인천을 잠재울 묘수가 없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안다. 중앙이 지방정부의 지방자치권을 무디게 만들고 명령에 따라올 수밖에 없는 치명적 약점을 너무나 잘 안다. 비록 녹이 슨 창이지만 방패의 약점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그들의 공격은 '백기투항'을 이끌어내었다.
고전적 수법이지만 중앙이 쥐고 있는 강점은 '돈'에 있다. 중앙정부가 말을 듣지 않는 지방정부를 압박하고 길들이는 방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가뜩이나 가난한 지방정부에 돈을 내려보내지 않으면 달리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치명적 약점을 알고 있다. 중앙정부가 거둬들인 국민의 세금이 국비지원, 특별교부세라는 이름으로 지방정부에 내려갈 때 지방은 숨통이 트이게 되는 구조적 약점에 손을 들지 않고 버텨낼 강심장은 많지 않다.
장면2.처럼 소신과 양심이 승리한 예도 있지만, 공무원노조 파업에 참가한 소속 공무원들을 징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무정지를 당한 울산 이갑용 동구청장과 이상범 북구청장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이상범 전 구청장은 1심과 항소심에서 유죄판결로 직무가 정지됐으나 최종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코미디를 끝내고 모순이 아닌 정도의 길로 들어서라.
행안부는 지금이라도 김상곤 교육감 사례에서 교훈을 찾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 지방정부를 향해 법을 어겨서라도 징계절차를 밟으라고 떼를 쓰면서 법치국가를 강조하는 코미디는 중단돼야 한다. '스폰서' 검사 중 비위 정도가 중하기는 하지만 인사 조치 외에, 징계라고는 일절 없었던 대상자가 몇 있다. 이도 징계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 지방공무원법 제73조 2(징계 및 징계부가금 부과 사유의 시효) ① 징계의결등의 요구는 징계 등의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2년(금품 및 향응 수수, 공금의 횡령·유용의 경우에는 5년)이 지나면 하지 못한다. [개정 2010.3.22]
나성군 전국공무원노조 해남군지부장의 신념은 '정권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다.
행안부의 녹슨 창은 그가 들고 있는 손피켙을 결코 뚫지 못할 것이다. ⓒ 공무원노조
민주노동당을 후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중징계 대상으로 분류되어 중징계 대상이 된 공무원노조 나성군 해남군지부장이 "2004년 3월 30일 공무원노조가 정치활동 보장 촉구선언을 했습니다. 저도 그때 해고됐습니다. 해고자 시절 정말 어렵고 힘들 때 어려울 때,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늘 옆에서 지지해줬어요.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구나 하면서 용기도 많이 얻었죠. 어려울 때 도움 받았으면 보답하는 거야 인지상정 아닙니까. 당원은 못 되고 후원이라도 해야지 싶었습니다."라며 담담하게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한나라당 당원을 조직적으로 모집한 인천 부평구청 소속 공무원들은 유죄를 선고받았음에도 파면·해임되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한나라당 소속인 구청장의 선거 당선을 목적으로 당원 모집을 했다. 그리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고액의 후원금을 낸 혐의로 수사를 받던 현직 교사 7명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들 중 많게는 500만 원을 후원금으로 기꺼이 내놓았다. 인지상정의 소박한 마음으로 많아 봐야 500만 원의 1/10도 안 되는 금액을 후원한 공무원을 사지로 내모는 권력을 정상으로 볼 사람이 있겠는가?
국민에게 유쾌한 웃음이 아니라 불쾌함을 주는 코미디는 이 정도에서 막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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