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黨’과 ‘시알리스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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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黨 댓글 0건 조회 1,392회 작성일 10-08-03 21:36본문
할머니가 손자의 ‘고추’를 만지며 "어이구, 내 강아지 고추 맛있네"라고 했을 때 그걸 성희롱이라고 시비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린 시절 누구나 그런 추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 같은 어린애 고추라도 학원 강사가 만지면 세상이 시끌시끌하고 국회의원은 고추는 고사하고 입만 잘못 놀려도 금배지가 왔다 갔다 한다.
왜 그럴까. 답을 논하기 전에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세칭 ‘와이(Y)담(談)’의 1인자로 유명했던 퇴역 교육감님의 해묵은 에피소드다.
이분은 어느 자리에서든 처음 듣는 와이담은 잊어버리기 전에 즉석에서 수첩이나 종이쪽지 같은데다 적어두곤 했다.
어느 날 또 한 가지 새로운 Y담을 들었다. "여름날 시아버지가 점심 밥상을 받다가 허리를 구부린 며느리의 적삼에서 삐져나온 젖꼭지가 살짝 시아버지 입술 위로 스쳤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던 아들이 오해를 하고 ‘아버지 왜 우리 집사람 젖을 먹습니까’ 했다.
오히려 난감해 있던 아버지 왈 ‘이놈아 네 녀석은 어릴 때 3년이나 내 마누라 젖 먹어놓고 무슨 소리냐" 했다는 낡은 우스개였다.
평소처럼 안 잊어먹으려고 명함 뒤쪽에다 제목만 적었다. ―'며느리 젖'―
그로부터 며칠 뒤 아들 혼사로 사돈댁과 상견례를 하게 됐다.
근엄하게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때까지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그날 밤 명함을 받아간 사돈 내외가 기절초풍을 했다.
시집보낼 딸아이 시아버지 될 사람 그것도 교육감님이란 양반이 명함 뒤에다 ‘며느리 젖’이라고 써놨으니….
뒤늦게 사돈 붙잡고 손이야 발이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당대 와이담 1인자 소리 듣던 호쾌한 성격이 인정돼 혼사는 잘 마쳤다나?
두 가지 예화(例話)에서 외설 시비의 경계가 어디쯤인가 해답을 끌어내 본다면 성희롱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당사자 간의 신뢰 관계나 우호적 감정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할머니의 손자 고추 만지기가 희롱이 아닌 것은 사랑이 담긴 때문이고, 교육감의 젖꼭지 명함은 외설이나 비속한 감정이 섞여 있지 않다는 신뢰가 믿어지기 때문에 유쾌하게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의 경우는 입만 뻥긋해도 성희롱 시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그런 짓이 한두 번이 아닌데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 관계나 우호적 감성도 못 얻고 있어서다.
일부이긴 하지만 평균 수십억 원의 재산을 지니고 있는 계층들이 치열한 의정 활동 대신 여성 비하적인 말 유희나 즐기며
노닥거리고 있다는 불신이 깔려 있으니 가벼운 유머나 실언도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강 모 의원 발언보다 더 진한 성적 표현들은 초등학교 남녀 동창회에서부터 노`장년 술자리까지 어디서나 통하고 있다. 그래도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이해와 아량이 소통할 수 있는 신뢰가 쌓여있고 우호적 감성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걸핏하면 성희롱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한나라당의 경우, 속된 말로 비아그라라도 먹고 양기(陽氣)가 입으로 올라 그런 거냐는 비아냥이 나오게 돼 있는 것이다.
민주당도 오십보백보, 누드 촬영 발언으로 ‘시알리스당’이냐는 역풍을 맞고 있다.
여야 간의 성희롱 시비를 새삼 논하는 것은 단순히 성 비하적 발언의 옳고 그름을 따져서가 아니다.
서민, 빈곤층은 하루 끼니를 위해 뙤약볕에서 치열하게 생존 투쟁을 하고 있는 판에 가진 계층, 누리는 계층은 한가하게 외설적 패설이나 지껄이며 노닥댄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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