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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당선자 감사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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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성운 댓글 3건 조회 2,378회 작성일 10-06-1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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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사단 이전사업과 팔용터널 민자사업 커넥션


 39사단 이전 사업은 2020국방계획에서 예비사단들은 축소를 하거나 폐지, 또는 일부 이전하는 쪽에서 정부예산으로 할 사업이었다. 그런데 권경석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공약사업으로 민간사업자를 끌어들여 조기에 사업을 성사시키고자 하였다.


 그 동안 이 사업의 추진과정을 보면 어떤 때는 쥐 죽은 듯이 주춤하다가 어떤 때는 급물살을 타다가 도대체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국회의원 선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창원시민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박완수 창원시장 퇴임 전 3월 31일에 최종 계약을 하려다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계약을 중단하였다. 한마디로 이번 선거에서 이 사업을 성공리에 성사시켰다고 자랑하려다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것이다.

 


 계약을 중단한 이유가 무엇일까?

 꾸린 내가 없으면 당당히 계약을 하였을 것이다.

 그가 시장에 당선되었으니 이 지역 국회의원들과 손을 잡고 그 꾸린 내 나는 사업에 도장을 찍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팔용터널 공사에 태영건설이 참여하고 있고, 그 노선은 한일합섬부지에서 39사단 부지를 연결하는 도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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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영은 한일합섬부지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이 도로가 개설될 것을 전제로 하여 광고에 십분 활용하였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39사단 이전부지에 아파트를 건설하게 되면 이 도로는 또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러면서 터널 통행료는 통행료대로 받아먹을 수 있으므로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민간사업을 하는 것이다.


 창원시는 민간사업자가 하는 사업은 정부예산을 투자하지 않고도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므로 창원시는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하면서 민자사업 유치의 당위성을 강변한다.


 과연 그럴까?

 그러면 민간사업자가 손해 보는 장사 하면서 도시를 개발해 줄까?


 기업의 목표는 시민의 행복이 아니라 이윤추구이다. 기업이 도시를 개발하게 되면 쾌적한 도시환경이나 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같은 것은 기대할 수는 없다.

 민자유치사업은 지금 당장 정부예산이 투자되지 않는 것뿐이지 언젠가는 국민의 빚으로 남거나 환경의 질, 삶의 질을 담보하여야 하는 것이다.


 39사단 이전사업은 지금 함안군 이전지의 부지매입과 각종시설 설치한 다음 이전하려면 현 39사단 지역의 공사는 2017년 정도 가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3년 사업 앞당기려고 1조원에 가까운 재원을 퍼붓는단 말인가?


 팔용터널 또한 공단의 물류이동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등의 미사여구로 기만하는데 실상은 한일합섬부지와 39사단부지 아파트 분양을 유리하게 하기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부대가 이전해 가는 함안군의 사정은 어떻게 되는가?

 이 사업이 처음 거론되던 2004년경만 하더라도 함안군에는 기업유치와 같은 성장동력이 없으므로 39사단 군부대라도 유치하면 장교, 하사관들의 인구유입효과와 소비증대를 통한 지역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이 사업에 동의를 하였다.


 그러나 협상의 과정에서 39사단 장교와 하사관들이 자녀의 취학문제를 비롯한 이런저런 사유로 함안으로 이사를 거부함으로써 결국 현 창원의 39사단 부지에 군인아파트를 다시 지어주는 조건으로 협약이 체결되었다.

 그렇다면 함안에는 병장기와 영내에서 생활하는 사병 외의 인구의 증가나 소비증대와 같은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함안군민들은 군부대가 이전해 옴으로써 얻는 것은 군사시설 보호를 위한 각종규제 말고는 얻는 실익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지금 이 곳에 부동산 투기를 한 사람들은 하루빨리 보상이 나오기를 확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함안군민들은 이 시점에서 깨우쳐야 한다. 군부대가 하나 들어서게 되면 그 이후에 감당해야 할 불편과 손실이 얼마나 큰지를 꼼꼼히 짚어 보아야 한다.

 창원시가 그동안 발전해 오면서 39사단 때문에 얼마나 애를 먹었기에 부대를 밀어 내려고 그토록 노력하였는지를 역지사지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39사단 민자유치사업은 한마디로 특정업체 배불려주기 위한 정치권의 술책 외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창원시민과 함안군민은 깨우쳤으면 한다.


 김두관 당선자는 취임 즉시 이 두 가지 민자유치사업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실시하여 계획도시 창원이 망가지지 않고, 함안군민의 아픔이 생기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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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님의 댓글

문제가 작성일

문제가

1. 상위직급의 젊은 지방고시와 세대간 갈등문제
2. 승진소요년수의 직렬간 형평성 문제
3. 부서간 조직구성원 규모와 사무배분, 사무량 문제
4. 시군과의 인사교류문제
5. 선호부서, 비선호부서간 보직경로 문제
6. 사업소와 본청과의 교류인사 문제
7. 새로운 시책과 민원서류 등 서로간 핑퐁형태 문제
8. 훈·포상(표창), 해외연수 등 형평성 문제
9. 업무추진 실적평가의 실효성 문제
10. 직원과 간부간 의사소통문제
11. 예산배분의 타당성, 형평성, 등 성과분석문제
12. 직무교육의 현실성, 실효성 문제

미안해 여보!님의 댓글

미안해 여보! 작성일

한참을 기다려도 아내는 오지 않았다. 약속시간인 오후 6시가 훌쩍 넘었지만 아내는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았다. 땅거미가 짙게 깔리고 가로등에 하나씩 불이 켜졌다. “당신 퇴근할 때 맞춰 나갈게요. 같이 한의원에 들러 화분에 거름 줄 한약재 찌꺼기 좀 받아와요.” 출근길에 아내가 했던 말이 귓가에 생생했다. 그는 살짝 짜증을 내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담장 안으로 아내가 타고 다니는 구형 그랜저 승용차가 보였다. “집에 있으면서 왜 안 나와?” 초인종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크게 어머니를 불렀다. 퇴근 무렵이면 늘 아내와 함께 저녁 준비를 하던 어머니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담을 넘어 마당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벽난로 앞에 웅크린 검은 물체. 그것이 아내(당시 60세)의 주검이란 것을 알아챈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방에서 피비린내가 몰려왔다.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 올라갔다. 4대 독자였던 아들(당시 35세)의 모습은 더 처참했다. 다시 계단을 내려오니 화장실 앞에 쓰러진 어머니(당시 85세)가 보였다.

1심 판결문은 그날의 상황을 무미건조한 문체로 이렇게 기록했다. “피해자의 목에 잭나이프를 들이대고 2층 복도로 끌고 올라와 해머로 머리를 내리쳐 쓰러뜨린 후 두개골이 부서져 뇌가 빠져 나올 정도로 머리를 수 회 내리쳐….” 2003년 10월 9일. 고정원 씨(68)는 살인마 유영철의 손에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을 떠나보냈다. 2층 아들 방에 켜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느 목사의 설교가 사이렌처럼 귓가에 윙윙거렸다.

“가족의 말라붙은 핏자국을 닦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오?” 한숨을 쉬며 그가 물었다. “그 흔적은 눈물로만 닦을 수 있어요.” 그는 눈을 감았다. 아내의 환갑 선물로 그가 준비했던 것은 새 승용차였다. 15년 된 자동차는 자꾸만 고장이 났다. 그동안 사업으로 번 돈도 적지 않았지만 땀 흘려 번 돈으로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어느 기업체 빌딩 경비원으로 취업해 한 달에 100만 원씩 꼬박 3년을 모았다.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되겠지” 했던 것이 평생 전해주지 못한 정표(情表)가 되고 말았다.

“살인마 용서하다니”… 멀어져간 두 딸

그는 아내에게 용서를 빌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손수 집을 지으며 담장을 낮추자고 우긴 건 그였다. “내가 예전에 고학하던 시절에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신문을 돌렸는데 장면 전 국무총리 저택이 참 부러웠어요. 나도 나중에 성공하면 저런 집에 살아야겠다. 그런데 이웃들과 얼굴을 마주볼 수 있게 담은 좀 낮춰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는 담 높이를 120cm로 정했다. 그 담을 넘어 유영철이 들어왔다.

“그게 1982년이었지 아마.” 한참 입을 떼지 못하던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와 아내는 성당에서 부부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그때 서로에게 유언장을 썼다. 아내를 묻은 뒤 유품을 정리하다 그 유언장을 보게 됐다. “여보 나 죽기 싫어. 어린 아들과 딸 잘 부탁해.” 힘겹게 억눌러온 숨이 차올랐다.

처음엔 모든 것이 두려웠다. 원한에 의한 범행인지 돈을 뺏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은 없는지 애써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길을 나설 때마다 온몸이 떨렸다. 살인범이 곁에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도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이내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두려움은 슬픔으로 바뀌었다. 음식도 먹지 못했고 잠도 들지 못했다. 밤마다 한강을 찾았다. 다리 위에서 몇 시간씩 시커먼 물을 내려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제 그만 뛰어내리자, 아니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 하루에도 수만 번씩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이 이어졌다. 울고 소리를 지르다 아침 햇살을 맞는 일이 반복됐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살아남은 두 딸과 손자 손녀들은 어떡하나. 하느님이 저 아이들을 보살피라고 날 살려주신 게 아닐까.” 발길을 끊었던 성당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을 잃었던 집을 팔았다. 하지만 아내의 손길이 묻은 자동차는 차마 남의 손에 넘길 수 없었다. “타지도 않는 그 차가 아직도 집 지하주차장에 있어요.” 그는 메마른 침을 삼켰다.

9개월이 지난 뒤 유영철이 잡혔다. 이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가족도 죽였단다.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왜 우리 가족이 이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하는 분노가 커졌다. 화가 치밀 때마다 성경을 베끼기 시작했다. 구약성경을 세 번 썼고 구약과 신약을 합쳐 한 번 썼다. 대학노트 20여 권이 쌓였다. 그제서야 아주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성경 필사로 성당에서 받은 상금을 모두 유영철에게 영치금으로 보냈다. “저는 추호도 용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숨쉬는 동안 평생 사죄하며 살겠습니다.” 유영철이 짧은 답장을 보내왔다.

“살인자가 나쁘지, 그 자식이 무슨 죄가 있겠소. 유영철을 용서했다고 말한 것은 그 아이가 아비 없는 자식으로 키워지는 것이 가여워서요.” 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계속되는 보도로 유영철에게 아들이 있고 그 아이가 자신의 손자 또래라는 것을 알았다. ‘용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 그는 유명세를 탔다. ‘유영철을 양자로 삼기로 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그건 기사가 잘못 나간 거요.”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 가족을 죽인 원수를 어떻게 아들로 삼겠소. 그 아이가 불쌍해 양자로 거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이 와전된 거요.”

종교생활을 하다 조성애 수녀를 만나면서 사형제 폐지운동이란 걸 알게 됐다. 2007년부터 사형 폐지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가 ‘원수를 용서한 성자(聖者)’라는 뜻하지 않은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두 딸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갔다. 두 딸에게 아버지는 ‘어머니와 동생을 죽인 살인마를 너무 쉽게 용서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살인마를 용서한다면 우린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어요.”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두 딸은 울부짖었다. “할아버지가 용서했으니 유영철이 감옥에서 나와 나도 죽이러 올 거예요.” 어린 손자가 내뱉은 말도 가슴속에 가시가 돼 박혔다. 사형제 폐지운동도 거리를 두게 됐다.

“영화 ‘밀양’… 내 마음과 똑같습디다”

그는 2008년 ‘용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한 뒤로 최근 2년간 언론 보도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유영철을 죽여선 안 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으십니까”라고 물었다. “유영철도 인간입니다. 그의 목숨을 빼앗기보다 감형 없는 종신형을 살게 해 평생을 반성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이 짧은 한 마디를 하면서도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 듯 몇 번이나 숨을 골랐다.

“영화 ‘밀양’을 보셨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소재로 ‘인간의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화가 내 마음과 똑같습디다. 내가 용서했다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진정 용서를 한 것이 맞는지, 고해를 하고 성경을 베끼면서도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인지…” 7년간 눈물도 다 메말랐다는 그의 눈가에 살짝 물기가 배어들었다. 그가 사는 33m2 남짓한 오피스텔 창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아플 만큼 눈부셨다. 그 햇살을 받은 커다란 사진 속에선 여섯 가족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개한테도 그런 짓은님의 댓글

개한테도 그런 짓은 작성일

"개한테도 그런 짓은 못할 텐데…. 그런 놈은 죽여 버려야 합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납치돼 성폭행을 당한 A(8)양 아버지 눈엔 핏발이 서 있었다. 11일 오후 6시쯤 서울의 한 공원에서 만난 아버지는 "딸아이가 7일 변을 당한 뒤 이틀 동안 잠 한숨 못잤다"며 "아이가 겪었을 그 몹쓸 상황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라 괴로웠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딸 아이가 장하다고 했다. "그놈이 자고 있을 때 도망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아이를 못 찾고 헤맸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더 끔찍한 일이 있었을 수도…."

그는 화를 삭이며 사건 당일 상황을 설명했다. "오전 9시 50분쯤에 아이 엄마가 시장에 가는 길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줬다고 하더군요. 수업이 10시 시작이니까.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하는 수업이라더군요. 그런데 그날이 학교가 쉬는 날이어서 교실로 들어가는 현관문이 잠겨 있었답니다. 그래서 평소 가던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갔다가 그런 일을 당했답니다."

11시에 수업이 끝나고 30분이 지나도 딸은 후문 바로 앞에 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수업을 맡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집에 오지 않았다"고 하자 선생님도 "아이가 수업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황급히 학교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CCTV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학교 관계자는 "CCTV 담당자가 지금 자리에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학교측에 "경찰에 신고해도 되느냐"고 묻자 "신고해도 상관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를 찾으러 다니는 사이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아이가 흰색 핀을 꽂았느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CCTV 화면에 웬 아이가 어떤 남자와 같이 있는 모습이 잡힌다"고 했다.

회사에 있던 A양 아버지는 "아이가 유괴된 것 같다"는 아내 전화를 받고 모든 일을 접고 학교로 달려갔다고 한다. "학교에 도착했더니 담임 선생님도 와 있었습니다. CCTV 화면에서 그놈이 9시쯤부터 학교 건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리고 교장실에 경찰관, 선생님과 함께 있는데 아이 엄마가 운동장 귀퉁이에 앉아 있는 아이를 발견한 겁니다."

A양 등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고, 머리에 꽂았던 핀이 사라졌고 머리칼이 헝클어져 있었다. 목과 옷에 핏자국이 있었고, 손목에도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아무도 아이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이 기억이 남아있을 때 뭐를 물어봐야 한다면서. 내가 ‘○○야, 아빠야!’라고 소리쳤지만, 아이는 멍한 상태로 대답이 없었습니다. 충격이 얼마나 심했는지…."

A양 아버지는 곁에 있던 여경(女警)이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으면서 몇 마디 말을 나눈 뒤, 아이를 차에 태우고 범행 장소를 찾으러 학교를 떠났다고 했다. A양은 범행 장소 인근 공원까지는 기억했지만 더 이상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 뒤 A양을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서 아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무슨 도구를 쓴 것 같은데 감염이 됐을 수 있으니 빠른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처음 발견했을 땐 그런 몹쓸 짓까지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의사에게 상처를 좀 봐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안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다음날 새벽까지 인공항문 수술을 받았다. "그 어린 게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정말…."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A양 아버지는 학교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렸다. "그날이 학교가 쉬는 날이었답니다. 그럼 수업을 하지 말든지. 수업을 받으러 아이들은 오는데 학교 문은 잠겨 있고, 담임 선생님은 출근도 안 했습니다. 누구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학교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으면 보내준다던 문자 메시지도 없었어요."

그는 "이건 마치 학교랑 김수철이랑 짜고 ‘우리 아이를 학교에 보낼 테니 당신이 와서 데리고 가라’하고 내준 것과 똑같은 겁니다!"고 언성을 높였다. A양 아버지는 "제가 김수철이 몇 년 형을 받겠느냐고 검사에게 물었더니 ‘조두순이 12년을 받았고, 이놈은 얼마 전에 법이 개정돼서 17년 정도 받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형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A양 아버지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 전날 아이에게 TV 그만 보고 책을 빌려 보자며 책 대여점에 데리고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그러더군요. ‘아빠, 이상한 아저씨가 과자 준다고 따라오라고 해도 가면 안 되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럼 인마 당연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런 일이…."

A양 아버지는 "이젠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돌아서는 그의 어깨가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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