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라 그런지 중앙 명망가들의 지역방문이 줄을 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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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거철 댓글 0건 조회 774회 작성일 10-04-20 10:34본문
선거철이라 그런지 중앙 명망가들의 지역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정당 관계자는 물론이고 각급 기관의 책임자, 그리고 슬그머니 내려와 지역의 여론과 동태를 살피는 사람들까지....아닌 말로 각종 생명체들의 봄철 준동(蠢動)만큼이나 두드러진다.
이들은 필히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 특히 정관계,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언론계 인사들을 주로 만나 공·사석의 자리를 갖게 마련인데 그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지역의 부정적 측면을 화젯거리로 하는 얘기들이 예외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도대체 이곳 표심은 알 수가 없다"고.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말에 대한 지역 인사들의 반응이 즉각적이다 못해 가히 폭발적이라는 점이다. 소위 오랜 세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충북의 정서 내지 성향으로 치부되고 있는 내용들이 지역인사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줄줄이 꿰어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렇다. '표심을 알 수 없는 이유는 앞에선 말을 않고 뒷말만 즐기기 때문이고 그렇다 보니 잘되는 사람 못봐 주고 오히려 끌어 내리는가 하면, 이로 인해 지역의 단결은커녕 되는 일이 없다'는 등등. 늘 이런 식이다.
자기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것은 어디 이곳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그야말로 우리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속담도 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유독 충북인의 부정적 '캐릭터'로 각인돼 지역사회에서 끈질기게 원용되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석에서, 특히 외지인들에게 지역을 폄훼 혹은 비하하는 발언을 일삼는 행위에 대해선 이미 여러 차례 여론의 질타가 가해졌고 몇몇 인사들의 경우 이 때문에 상당한 이미지의 실추를 경험했다. 지난번 세종시 논란이 한창 극에 달했을 때도 중앙에서 내려 온 인사들에게 충북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알아서 기면서' 역으로 자신을 키워준 지역에 대해서는 험담하는 이른바 몹쓸 '자학병' 때문에 뜻있는 사람들을 아주 곤혹스럽게 한 적이 많다.
지역에 살면서도 오히려 지역에 대못질하는 사람들의 생존술은 나름대로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처럼 지역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떳떳지 못한 처신을 희석시키는가 하면, 더 나아가 그런 졸렬한 차별화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실제로 세종시와 청주 청원통합 논란이 가열될 당시 원안과 수정안, 그리고 통합과 반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사들이 이런 박쥐같은 처세로 하루하루 연명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기가 발붙이고 사는 지역을 오히려 낮춰 평가하는 행위는 일종의 자기비하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비하의 철학적 의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듯 무한한 희생과 겸손, 그리하여 새로운 희망과 긍정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록 일부이겠지만 이 지역의 리더라는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일그러진 존재감을 만회할 요량으로 지역정서를 난도질하고, 또 이를 무기로 자기행세를 이어간다. 지역에 대해 '인격살인'을 일삼는 사람들이 되레 지도자인 양 설쳐대는 꼴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는 노예근성과 다를 바 없다. 아양떨고 빌붙어 덕좀 보자는 심보가 아니겠는가. 그러는 와중에 모든 경제, 물리적 지표에서 전국 3%라는 왜소함을 벗지 못하는 충북은 외지인들에게 더욱 작고 조악해 보일 수밖에 없다. 작은 것이 살아남으려면 역으로 강해져야 하는데도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거리에서 혹은 식당에서 지역정서 운운하며 예의 그 부끄러운 말을 입에 올리는 이들에게 한 가지 묻고싶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지역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우리가 보기엔 그들만큼 지역사회에서 욕먹는 사람도 없다
이들은 필히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 특히 정관계,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언론계 인사들을 주로 만나 공·사석의 자리를 갖게 마련인데 그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지역의 부정적 측면을 화젯거리로 하는 얘기들이 예외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도대체 이곳 표심은 알 수가 없다"고.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말에 대한 지역 인사들의 반응이 즉각적이다 못해 가히 폭발적이라는 점이다. 소위 오랜 세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충북의 정서 내지 성향으로 치부되고 있는 내용들이 지역인사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줄줄이 꿰어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렇다. '표심을 알 수 없는 이유는 앞에선 말을 않고 뒷말만 즐기기 때문이고 그렇다 보니 잘되는 사람 못봐 주고 오히려 끌어 내리는가 하면, 이로 인해 지역의 단결은커녕 되는 일이 없다'는 등등. 늘 이런 식이다.
자기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것은 어디 이곳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그야말로 우리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속담도 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유독 충북인의 부정적 '캐릭터'로 각인돼 지역사회에서 끈질기게 원용되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석에서, 특히 외지인들에게 지역을 폄훼 혹은 비하하는 발언을 일삼는 행위에 대해선 이미 여러 차례 여론의 질타가 가해졌고 몇몇 인사들의 경우 이 때문에 상당한 이미지의 실추를 경험했다. 지난번 세종시 논란이 한창 극에 달했을 때도 중앙에서 내려 온 인사들에게 충북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알아서 기면서' 역으로 자신을 키워준 지역에 대해서는 험담하는 이른바 몹쓸 '자학병' 때문에 뜻있는 사람들을 아주 곤혹스럽게 한 적이 많다.
지역에 살면서도 오히려 지역에 대못질하는 사람들의 생존술은 나름대로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처럼 지역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떳떳지 못한 처신을 희석시키는가 하면, 더 나아가 그런 졸렬한 차별화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실제로 세종시와 청주 청원통합 논란이 가열될 당시 원안과 수정안, 그리고 통합과 반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사들이 이런 박쥐같은 처세로 하루하루 연명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기가 발붙이고 사는 지역을 오히려 낮춰 평가하는 행위는 일종의 자기비하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비하의 철학적 의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듯 무한한 희생과 겸손, 그리하여 새로운 희망과 긍정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비록 일부이겠지만 이 지역의 리더라는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일그러진 존재감을 만회할 요량으로 지역정서를 난도질하고, 또 이를 무기로 자기행세를 이어간다. 지역에 대해 '인격살인'을 일삼는 사람들이 되레 지도자인 양 설쳐대는 꼴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는 노예근성과 다를 바 없다. 아양떨고 빌붙어 덕좀 보자는 심보가 아니겠는가. 그러는 와중에 모든 경제, 물리적 지표에서 전국 3%라는 왜소함을 벗지 못하는 충북은 외지인들에게 더욱 작고 조악해 보일 수밖에 없다. 작은 것이 살아남으려면 역으로 강해져야 하는데도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거리에서 혹은 식당에서 지역정서 운운하며 예의 그 부끄러운 말을 입에 올리는 이들에게 한 가지 묻고싶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지역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우리가 보기엔 그들만큼 지역사회에서 욕먹는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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