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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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비정신 댓글 0건 조회 901회 작성일 10-01-06 08:09본문
영국의 BBC방송과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공동으로 조사한 세계 각국의 경제생활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인들은 85%가 ‘불만’을 나타냄으로써 한국이 세계 제일의 불만족 국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내부 갈등이 심각한 국면임을 나타내주는 지표다.
사회 구성원들의 불만이 이토록 심각하다는 것은 한국 국민 상호 간의 내부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사회 통합과 국민 정체성의 형성을 저해함으로써 미래 한국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사회의 시급한 과제는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필자는 본다. 본고는 한국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유림의 전통 선비정신이 그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그 가능성을 논증하고자 기획되었다.
Ⅱ. 갈등 요인의 분석
양극화의 갈등, 결국은 가치관 부재의 문제다
경제의 속성상 빈부를 나누는 절대기준 같은 건 없다. 우리나라 부자의 컷 라인은 27억 6천만원대(한솔리서치)에서 23억원대(국세청, 상위 1%이내의 자산 평균치)라고 한다. 나머지 99%의 국민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가졌을 때 상대적 열등감 내지 박탈감을 느끼지 않느냐 하는 것에도 역시 절대적 기준은 없다.
이러한 기준의 상대성은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관에 따른다. 수년 전 각국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발표되었을 때 뜻밖에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결과 역시 그 나라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가치관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극심한 보유자산의 차이에 기인해 보이는 것 같은 양극화의 갈등에 대한 해결책도 다만 보유자산의 격차를 줄이는 데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가치관의 혼란과 부재에서 오는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에서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가치관의 확립은 미래의 한국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건이라고 필자는 예측한다. 이런 희망을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Ⅲ. 갈등 해소 방안의 모색
한국의 민주주의는 갈등 해소의 열쇠가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양극화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못된다. 이것은 여태까지의 한국 민주주의의 행보가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일컫는 각종 시민단체(NGO)들이 맹활약하는 전성시대에 돌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로 인한 계층 간의 양극화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스스로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 지난 10년간의 한국 시민단체(NGO)들의 활동을 보면 이들이 점차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권익주창형(advocacy) 단체로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서 이들은 정치권력의 전위대 역할을 자임한 듯 사회통합에 역행(逆行)하는 행보도 보였다. 이로 인해 비평가들은 이들이 더 이상 ‘비(非)정부기구’가 아닌 ‘친(親)정부’ 또는 ‘신(新)정부기구’로 전락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이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점차 이들을 떠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들은 더 이상 정치적 당파성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 중립’의 입장에 서서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의 행복을 위한 길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순수한 성격의 단체로 다시 태어나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치에 초연하면서도 인간 본연의 행복론에 충실한 가치관을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지식인을 통한 갈등 해소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식인들이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사실 탐구의 자리에서 사회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을 위배하게 되면 스스로 그 입지(立地)를 저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식인들은 너무 자주 절의(節義)를 버리고 정치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대행하는 길을 택해왔다. 당파성은 흔히 사실의 객관적 탐구를 위협한다. 조선조 5백년의 당쟁이 그러했고, 오늘날 황우석 사태에서도 그런 징후가 보이는 듯하여 찜찜해졌던 경험이 있다. 이런 류(類)의 지식인 집단에게도 우리는 갈등의 해소를 위한 어떤 역할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유학의 선비정신에 갈등 해소의 열쇠가 보인다
유교는 본래 그 태생이 혼란한 사회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오기 위해 탄생된 문화다. 그러므로 유교에 뿌리를 둔 선비정신은 갈등의 방지 내지 해소에 탁월한 원인 치료적 효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갈등의 근저에는 가치관 간의 충돌이 있어서 양자가 완전하게 만족 할 수 있는 합의를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협상이란 서로가 양해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협상에는 당사자 간 반드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선비정신 중 덕행(德行)은 바로 이 배려 정신의 바탕에 해당한다.
또 양극화로 인한 갈등의 근저에는 계층 간의 불신이 놓여있다. 그러므로 불신의 해소는 갈등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처방이 된다. 그렇다면 이 불신을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겠는가? 유교에는 가장 근본적인 해소책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이 저마다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어버이는 어버이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말이다. 유학은 바로 사람다움-이것이 바로 인(仁)이다-으로 돌아감으로써 불신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우리의 전통 선비정신에 잘 담겨져 있다.
본래 선비정신은 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를 거론함으로써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급속한 현대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만 지신(知新)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온고(溫故)에 소홀함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가진 전통 선비정신을 퇴물처럼 여기고 잊고 말았다. 선비정신은 결코 구시대적 퇴물로 간주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인간학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가진 사상인 것이다.
미래는 더욱 다양한 문화와의 접촉이 예상된다. 때문에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이 유발될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한다. 이러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인간학적인 입장에서 보편적인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어서 이것이 중화제와 같은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본다. 이런 보편적 가치관의 후보로서 전통의 선비정신만한 게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Ⅳ. 선비정신이란 무엇인가?
이제는 선비정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혀야 할 차례이다. 선비정신을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란 어렵지만 여태까지 학자들이 논의 해온 바를 정리하면 대충 학행(學行), 덕행(德行), 절행(節行)-시사여귀(視死如歸), 자존(自尊), 욕군자 (欲君子)로 분류할 수가 있다고 본다.
1. 학행(學行)
유학은 배움[=學]과 배운 바를 행하는 일[=行]을 매우 중요시 한다. 무엇을 배우려 하는가? 천리(天理)를 깨달아 본받으려는 것이다. 천리는 무엇으로 깨닫는가? 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본성을 잘 살펴서 깨닫는다. 무엇을 행하려 하는 것인가? 그 천리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왜 천리대로 살지 못하는가? 사람 속에는 이를 방해하는 요소, 즉 인욕(人慾)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仁), 즉 ‘사람다움’의 실현은 인욕을 여하히 통제하여 천리로 돌아가느냐에 달려있다. 주자학(朱子學)은 이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의 연원을 이(理)와 기(氣)의 작용으로 보고, 이를 보다 정세(精細)하게 밝히려는 학문이다.
도학자들이 지향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은 천리, 즉 자연의 순리대로 살자는 이상(理想)의 구현이다. 자연은 천리를 배우는 교과서요, 삶은 천리를 실천하여 구현하는 마당이다. 자연의 순리를 어기거나, 이를 역행하는 것은 반(反) 진리이자 부도덕(不道德)이다. 실천을 통해 천리를 체현하고, 검증하는 것이 선비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논어에 학이불염 회인불권(學而不厭 誨人不倦)이라는 말이 나온다. 제자가 공자님께 “선생님은 진실로 성인이십니다.”하니 공자님은 “그렇지 않다. 나는 성인이 되지못했다. 나는 다만, 배우는데 염증을 내지 않았고, 가르치는데(사람을 깨우치는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답하셨다. 이에 제자는“배우는 데 염증을 내지 않음은 천리를 이해한다는 것이고, 가르치는 데 게으르지 않음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성인이 아니고 무엇입니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깨달은 천리대로 실천 ․ 궁행하는 성인 공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대목이다.
지식 따로, 실천 따로 인 현대 한국인의 모습은 잘못된 교육이 남긴 커다란 병폐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갈등의 단초다.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 국가정책 입안자나 교육행정가가 모두 배운 바대로 행하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옛 선비들이 보인 학행일치의 고매한 선비정신이 더욱 그리운 때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물질적 가치와 그것을 획득하는 효율성을 최고로 중시하는 교육에 치중되고 있다. 이런 지경이니 인간관계의 당위성(當爲性)에 대한 교육은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서구가 주도한 현대문명이 동양의 정신문화를 압도한 결과다.
서양인들은 삶을 생존경쟁의 장으로만 보고, 남보다 먼저 물질적 풍요를 확보하는 것을 행복의 관건으로 여긴 나머지 제국주의 정책을 펴왔다. 이들의 물신주의(物神主義)는 마침내 인류를 물질 선점(先占)을 위한 무한경쟁의 장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하고도 급속한 환경파괴로 이어져 오늘날 인류가 종말의 절벽에 처하게 만들었다.
물질적 생존의 확보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건전한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물질 획득의 경쟁은 인간을 무자비한 정글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관계의 건전성이 우선되지 않은 경쟁 제1주의는 인류의 공멸을 촉진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당위성이 전제된 행위는 관계를 그르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인류가 존망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물질 확보의 효율성 추구로부터 인간 행위의 당위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교육의 목표를 크게 전환시켜야 한다. 선비정신은 행위의 선택에 있어서 무엇이 이익인가보다는 무엇이 천리에 맞는가를 추구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선비정신이야말로 이 위기의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 제자리 찾기 사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2. 덕행 德行
논어에는 어떤 세상이 이상적인가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화가 나온다.
“도道가 행하여지지 않는 세상은 무엇으로 살아갑니까?” “그런 세상에는 인仁으로 살아라.” “인仁이 행하여지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런 세상에는 예禮를 행하고 살아라.” “예禮가 행하여지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런 세상은 덕德으로 살아라.” “덕德이 행해지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런 세상은 “의義로써 살아라.” “의義가 행하여지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의義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은 법法으로 살아라, 그러나 법法으로 사는 세상은 사는 것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으니라.”
오늘은 분명히 법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다. 인의(仁義)가 죽고 예덕(禮德)이 행해지지 않으니 법이 최고의 판단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죽느니 보다 못한 세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선비는 덕(德)을 행동의 기본 지침으로 하고 살았다. 덕은 천지(天地)가 만물을 화육(和育)하는 근본이며, 학행의 근본 바탕이다. 학행의 목적이 덕의 실현이다. 덕행은 학행의 부족을 충분히 덮어준다. 이 덕의 근원이 바로 인(仁)이다. 덕은 인으로부터 나온 봉사요, 사랑이요, 자비다.
양극화에서 문제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불신은 평소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에 덕(德)의 거래가 없을 때 심화된다. 일반적으로 지배자는 효율성(效率性)을 강조 하고, 피지배자는 배려(配慮)를 목말라 한다. 완전한 평등사회는 이상(理想)이다. 이 불평등한 사회에 있어서 그래도 갈등의 원인을 해소하는 데에는 지배계급의 덕행(德行)만한 것이 없다. 이처럼 상하위의 계층이 다 같이 덕(德)을 숭상하는 나라야말로 진실로 강건한 나라다. 덕행은 분열의 불꽃을 끄는 소화전(消火栓)이다. 어찌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교육의 바탕이 아니겠는가?
미래는 고도로 정보화된 첨단과학의 시대다. 개인의 사심(邪心) 하나에 인류의 존망이 좌우되는 국면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시대일수록 타 존재를 배려하는 마음이 교육을 통해 깊이 함양이 되어야 한다. 한국은 급속히 첨단 과학문명의 시대로 진입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므로 「경쟁=발전」이라는 원리를 맹신하는 현행 입시 위주의 교육을 신속하게 「배려심을 함양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만 할 터인데 교육정책 입안가들은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듯하여 답답할 뿐이다.
진정한 덕행은 의(義)에서 나온다. 양심 없는 덕행은 가식적인 행위일 뿐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무엇이 올바른가를 기준으로 하여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은 미래사회에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교육만을 받아온 자가 어찌 눈앞의 이익보다 공익을 택하겠는가? 지도층 인사들이 사리사욕을 채운 뉴스로 뒤덮인 나라에서 어떻게 바르게 살기를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이(利)보다 의(義)를 선택할 수 있는 교육을 학교에서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
또 우리는 의(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자손을 홀대해온 것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런 분들의 후손을 그 공(功)에 맞게 대접해야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는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천성이 후(厚)하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며, 약자를 돕는 정신이 강하다고 했다. 바로 이 정신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의 명맥을 이어온 원동력이다. 의를 존중하는 덕행이 최고의 가치로서 대접받을 때 비로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게 될 것이다.
3. 절행(節行)-시사여귀(視死如歸)
절행(節行)이란 명분(名分)과 의리(義理)에 입각하여 진(進)과 퇴(退)를 구분할 줄 아는 선비의 자세를 말한다. 우리 옛 선비들은 의로운 일에는 목숨도 초개(草芥)처럼 여겨 죽을 자리에서는 마땅히 죽을 줄을 알았다. 왜냐하면 죽어야 할 때 살아 있다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고, 마땅히 죽어야 할 때 죽는다면 죽어도 산 것이기 때문이다.(當死而生 生而死也, 當死而死 死而生也) 생사 앞에서도 본 모습을 흐리지 않고 죽음을 단지 돌아감으로 보았던[=視死如歸] 우리 선인(先人)들은 천리에 순응하는 것을 가장 고결한 삶으로 여겼던 것이다.
잠시 선비의 절행(節行)을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사례에서 살펴보자. 연산군에게 모진 국문(鞠問)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는 아래와 같이 당당히 의(義)를 밝히고 죽음을 청한다.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수록하고, 충분(忠憤)이라는 말을 덧붙인 저의는 무엇인가?” “임금의 선악(善惡)과 신하의 충간(忠奸)을 후세에 권장(勸獎), 징계(懲戒)코자 함입니다.…(중략)…신(臣)이 이를 사초(史草)에 편집한 것은 천년후세에까지 이를 보여 공론(公論)케 하고자 함입니다.” “사초(史草)를 같이 의논한 사람이 누구냐?” “같이 의논한 사람은 없습니다. 홀로 죽기를 바랍니다.”
자신은 사관(史官)의 정당한 직무와 사법(史法)에 의거하여 그리 하였으니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니 모든 책임을 혼자 지고 가겠다고 하는 탁영의 절행을 보라. 이는 그가 평소 의(義)를 숭상하는 교육을 통해 시사여귀(視死如歸)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절행(節行)은 또한 그 들어가고 나아감이 시의(時宜)에 적절해야 한다. 절행이 지나치면 융통성이 없어지고, 모자라면 판단이 어두워져서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천지의 운행이든 인간의 일상사든 일에는 다 시기와 절차가 있다. 인간의 행위가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시의에 맞게 행동하면 그것이 천리에 순응하는 것이자 만복의 근원이 된다. 이에서 어긋나면 화(禍)와 죄(罪)를 불러오는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이를 갖추지 못하면 국정이 어지럽게 되고, 교육자가 이를 갖추지 못하면, 그 제자들을 절도(節度) 있는 아이로 기를 수가 없다. 학생이 절도가 없으면 자학자습(自學自習)이 불가능해진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이런 절행 정신이 부족하다. 절행을 실천했더라면, 갈등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일들이 법정 시비가 되고 있다. 법의 적용조차도 어거지법, 떼거리 법에 의해 소란스러워질 때가 많다. 이 모두가 절행정신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교육이란 준비된 교사뿐만 아니라 준비된 학생, 준비된 학부형에 의해 이루어지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교사는 교사답게, 배우는 자는 배우는 자답게, 학부형은 학부형 다와야 백년지대계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교육 현장은 지금 매우 염려스럽다. 제 자식과 학생의 인권만 소중히 여기는 학부형들, 교사의 말을 개짓는 소리쯤으로 여기는 학생들의 태도에서 교권을 잃은 교사들은 한없는 좌절감을 느낀다. 오죽하면 교직(敎職)이 곧 3D업종이 되고 말 것이라는 자조(自嘲)의 말이 교사의 입에서 나오겠는가?
이해관계(利害關係)에 영악하고, 정신과 치료를 요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심리를 가진 아이들이 학습현장을 온통 휘저어 놓아도 교사는 마땅한 제재 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인권 존중이 이상하게 적용되어 전통적으로 중시되어온 교사의 권리는 그야말로 쓰레기통에 처박힌 꼴이다. 어쩌다가 체벌이라도 가하면 교사는 학부형이 주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고, 이런 경험을 한 교사는 점차 체념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슨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사회의 기강은 가정교육과 공교육에서 절행을 바로 세우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절행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책임과 임무를 스스로 깨닫게 해 준다.
4. 자존(自尊)
자존(自尊)이란 사람의 존엄성(尊嚴性)을 말한다. ‘나’는 한사람의 개체로서만 끝나는 ‘나’가 아니라 먼 조상으로부터 면면히 연결되어 온 존재다. 즉, 개인(個人)으로서 ‘나’가 아니고, 공인(公人)으로서 ‘나’이다. 가정이라는 조직의 일원인 동시에 시민사회의 일원이요, 국민의 한 사람인 공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막중한 책무성(責務性)을 가진다. 유교에서의 ‘나’는 자존(自尊)의 뿌리에 연결되어 있다. 내 몸은 부모님에게서 받은 존귀한 것이라 함부로 할 수 없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자존의 정신은 빈부(貧富)와 신분(身分)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필요하다. 자존은 인간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소금과 같은 덕목이다. 이것은 나만 존귀하게 여긴다는 좁은 의미가 아니다. 유교는 나를 미루어 남을 아는 학문이다. 내가 존귀하면 남도 존귀하다. 나의 부모가 소중하면 남의 부모도 소중하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것이다.
자존(自尊)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며, 이것이 없는 사람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이런 자가 비록 하늘을 덮는 지식을 알고, 귀신을 탄복케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면은 황폐하다. 마치 제로(0)에다가 무엇을 곱하든 그 결과는 제로(0)일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오늘날 한국은 분명 물질적으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옛날에 비하면 거의 왕후장상(王侯將相) 같은 수준의 풍요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과 자살율이 세계1위로 올라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인의 내면이 극도로 황폐(荒廢) ․ 공허(空虛)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인의 내면에 전혀 자존감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자존감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묻지마 살인’의 범죄 심리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자존심 교육은 현대 한국인들의 황폐한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시급히 실시되어야 한다.
자존을 체달한 선인들의 삶을 보면 가난조차도 그를 어쩌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선비 율곡(栗谷)은 가난을 잘 지켰다. 보다 못한 처가(妻家)에서 집 한 채를 사주자 그는 곧 집을 팔아 가난한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가 숨을 거두었을 때 그의 집에는 한 말의 곡식, 한 자의 베도 없는지라 수의(壽衣)조차 마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물질보다는 정신에 더 귀한 가치를 두고, 가난조차도 침범할 수 없는 자존의 삶을 살았던 선비의 전범(典範)을 이에서 엿볼 수 있다.
국가 최고 수준의 식견(識見)을 가진 자가 오늘날 이렇게 살아간다면 아마 무능의 극치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자신의 자존을 위해 가족을 고생으로 몰아넣으니 그건 지나친 자존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율곡 같은 분이 이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이라는 혁명 정부는 14대째 왕위가 계승되도록 탐관오리와 공신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가 백성을 괴롭혀 국가의 기틀이 흔들리고, 왜(倭)가 호시탐탐 침략을 노리고 있는 국난(國難) 상황이었다. 이것을 훤히 알고 있던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스스로 이런 극단적 자존의 모습을 보여서라도 주위를 깨우치려 했을 것이다.
임란7년 동안 재상(宰相)으로 계시면서 미증유(未曾有)의 국난을 극복하신 후, 낙향하던 서애(西涯)도 노자(路資)가 없어서 절간에서 며칠을 묵었다고 한다. 평생을 청백리(淸白吏)로 살면서 오로지 직분(職分)과 도리(道理)만을 중시해온 것이 그의 삶이었으니 능히 그리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흐트러짐이 없이 살아가는 선비의 자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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