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세상에 나온 지 130년이 다 되도록 끊임없이 주목받으며 대학 논술시험의 지문으로도 등장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시종일관 천착하는 인간의 본질과 심리묘사에 있다.
지금이야 학생들에게 요약본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무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부피로 처음엔 꼭 읽어야겠다는 오기와 의무감()으로 책장을 넘기다가도 어느덧 날밤을 새우게 했던 동인은 다름아닌 아버지와 형제들이 빚어내는 인간관계에 대한 긴장된 몰입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방탕하고도 호색한인 아버지를 증오하며 결국 살해까지 하게 되는 네 형제들 사이의 갈등과 고뇌, 굳이 총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정신적 충돌과 진화'라고 볼 수 있다. 네 형제들이 어느 땐 공감하고 연민하다가도 돌연 시기, 반목하는가 하면 상황마다 각각이 만들어 내는 캐릭터가 그야말로 세상사의 축소판이라 아니할 수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기에서도 동생들에 비해 형님의 존재는 늘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야성적이고 다혈질이면서도 삶의 고결함에 집착하는 첫째와 지성과 예지를 갖췄으면서도 허무주의에 빠진 둘째, 결국 이 형님들의 꼬드김에 동생은 끝내 아버지를 살해하지만 그후 인간적 번민까지도 동생들은 형님의 그늘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형님은 남다르다. 그 자체가 동생들에겐 기대고 싶은 등받이가 되고 위안이 된다. 지난 설날 같은 명절에도 동생들은 그저 형님만 믿고 따르면 그만이다. 산소에 가서도 조상님의 내력을 줄줄이 꿰차는 것은 오로지 형님 몫이지 동생들은 건성으로 듣다가도 절하라면 절하고 나가라면 나가면 큰 하자가 없다.
억지가 될지 모르지만, 살면서 주변에 형님이라 부르는 상대를 많이 거느린 사람일수록 유능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만큼 언제든지 자신의 후원자가 될 수 있는 인적 인프라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형님은 받듦의 대상이자 힘의 원천인 것이다. 조폭들이 무슨 오야붕이니 두목보다도 '형님'의 호칭을 각별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바로 이런 언저리에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여야간 첨예한 대립을 빚던 노동법을 직권상정한 김형오 국회의장이 바로 직전 이명박 대통령과 전화통화하면서 세 차례나 고성으로 "형님 내 말좀 들어 보라"며 격론을 벌인 후 결단을 내렸다는 언론보도가 정치권에 파문을 던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 연초부터 입을 앙다물고 공직자 청렴이니 토착비리 근절이니 하며 국민들에게 잔뜩 긴장을 안겼던 MB에게 이런 살가운 사생활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다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른 것도 아닌 국정에서 이처럼 형님 동생간의 의기투합이 빈발한다거나 의회에까지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당연히 경계할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러잖아도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주가 대통령의 역량으로 이뤄졌다고 왕창 홍보된 상황에서 그 실체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 많은 터라 더더욱 그렇다.
어렵고 중차대한 일일수록 사적관계나 특정인이 아닌, 국가적 시스템에 의해 추구돼야 경쟁력이 됐건 생명력이 됐건 오래 갈 수 있다. 우리는 오직 한 사람만이 주연이 되다가 마지막엔 처연하게 무대에서 내려오는 상황극을 벌써 여러번 목격하지 않았는가.
정권창출의 일등공신 이재오가 권력의 핵심은커녕 변방만 빙빙돌다가 간신히 국민권익위원장이라는 자리로 다시 제도권에 진입했으면서도 여전히 견제를 받는 데는 다름아닌 '형님 문화'가 볼모가 됐다.
MB와 가장 확실하게 형님! 동생!을 외칠 수 있는 관계이지만 오히려 주변의 시각은 이 때문에 더 날이 서 있다. 형님과 동생간의 밀착이 자칫 시스템에서 멀리 벗어난 특단의 정치특구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여전히 팽배하다.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통령의 공직자 청렴 및 토착비리 척결 강조와 이재오의 '올해가 이명박정부 5년중 가장 격변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신년사가 국민들에게 겹쳐서 인식되는 이유가 나로서도 궁금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조용하고도 냉정하게 국민들의 억울함을 보살피는 데도 바쁠 텐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