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면 자치단체장들은 그동안 자제하던 기질이 나온다. 이른바 레임덕 현상에 따른 히스테리인 것이다. 조직의 누수를 차단하면서 차기 선거에 대비하는 나름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때 자치단체장으로부터 내 편이 아니라고 찍힌 공무원은 헤어날 길이 없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전전긍긍하는 공무원들이 많은 이유다. 신임 단체장의 첫 인사에서 어김없이 그 결과는 나온다.
지방선거가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금, 현직 단체장이 내년 선거에 출마하는 대부분의 자치단체는 비중있는 인사를 마무리했다. 선거체제로 진용을 갖춘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개가 엇비슷하다. 현직의 프리미엄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무엇 때문인가. 자치단체장들의 착각 때문이다. 게다가 단체장의 착각을 공무원들은 늘 그랬듯이 그런 줄로 알고 따른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단체장의 착각은 자치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치라고 믿는 것이다. 자치시대의 단체장은 주민들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자리다. 그럼에도 당선만 되면 주인으로 바뀐다. 주민이 주인이 아니고 취임식이 끝나는 순간부터 단체장이 돌연 주인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지역민들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았을 뿐인 단체장 중 상당수가 위임받은 직을 수행하기보다는 관치시대보다도 더 고약한 주인이 돼 지독한 관치를 한다.
주인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옳은 일이다. 옳은 정책이라며 이의를 제기하면 주민들이 무얼 아느냐는 식이다. 그것도 상당 부분 차기 자신의 입지를 위한 일에 초점을 맞춘다. 내놓는 정책이 그렇고 단행하는 인사가 그렇다.
정치학자 칼 레벤슈타인(Karl Lowenstein)은 그의 저서 '정치행태의 분석'(Analysis Political Behavior)을 통해 "같은 제도와 법을 갖더라도 사람에 따라서 그 결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지역의 특수성이나 잠재력을 끌어내기보다는 인기에 영합한 실적위주의 포장된 전시 행정과 모방 행정이 대표적인 예다. 연계성보다는 자신의 임기내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자세도 이에 포함된다.
이렇게 되면 그 지역은 지역 특수성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지역이 된다. 다른 지역에서 성공한 향토축제를 지역성과 관계없이 모방하는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단체장들에게는 직원은 종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도시계획이나 농업정책 등등의 업무에 해박한 직원이 있어도 내 편 네 편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그 지역이 발전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거를 앞두고 줄세우기를 강요하는 공직문화, 줄을 서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공직자들을 만드는 단체장들에게 충고한다.
지역주민의 '삶의 질'은 단체장의 자질에서 비롯된다.
자치시대에 많은 세금을 내고도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을 수 있는 반면 적은 세금을 내고도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도 있는 것은 오로지 단체장의 자질에 달려 있다.
단언컨대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면서 행정을 자신의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단체장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
전직 자치단체장들이 많다. 그중에는 야인으로 돌아가서도 존경을 받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더 많은 분들이 누구하나 찾아오는 사람없는 외로운 그야말로 야인생활을 하고 있다. 단체장이 주인이라고 착각했던 그분들이 그렇다.
내년 6월이면 또다시 희비가 엇갈린다. 축하받는 자, 격려받는 자, 축하도 격려도 받지 못하고 직계 가족만이 바라봐주는 외로운 야인으로 돌아갈 자의 기쁨과 슬픔이 갈린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 떠오른다. "권한이 있는 공직자는 겸손해야 한다"고. 겸손한 단체장은 주인행세를 안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 나서려는 분들에게 "주인행세만 안 해도 중간은 갈 것"이라는 비법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