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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로서 ‘바보’가 소멸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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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욕설 댓글 0건 조회 862회 작성일 09-08-0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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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한때 ‘바보’는 욕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엔 모두 잊은 듯 보인다.
 
소쉬르의 분류법을 따르자면 기표로서의 ‘바보’는 동일하나 기의로서의 ‘바보’는 변모했다. 뜻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대중은 ‘바보’란 단어에서 더는
‘찌질한’,
‘어리석은’,
‘아둔한’,
‘무지한’ 따위의 낱말을 상상하지 않는다.
 
 ‘바보’는 어느새
‘순수한’,
 ‘곧은’,
‘꿋꿋한’,
‘고결한’이란
의미로 대중에게 공명한다.
 
욕에서 호로, ‘바보’의 진화다.

여기 두 바보가 있다. 도준이와 승룡이.
전자는 영화 <마더>의 사슴 같은 눈을 가진 녀석이다.
 
후자는 온라인과 충무로를 종횡무진했던 강풀 만화 <바보>의 주인공이다.
 
두 녀석은 각각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데, 농약을 먹었건 연탄가스를 마셨건 태어날 땐 바보가 아니었다는 점이 공통점이요,
 
도준이는 영화배우를 찜 쪄 먹을 만큼 훤칠하다는 것과 승룡이는 그저 전형적인 바보처럼 생겼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주목할 점은 도준이는 ‘바보’란 호칭에 대해 극단적인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바보새끼야!’란 한마디에 살기 위해 몸을 팔던 소녀 아영이를 돌로 때려죽였다. 도준이에게 있어 ‘바보’란 그저 욕설이었다.
 
 사람들이 승룡이를 일컫던 ‘바보’도 기실 조롱을 위함이었으나,
모두가 자신만을 보듬는 냉정한 세상에서 승룡이의 한없는 희생은 ‘바보’의 의미를 변화시켰다.
 
승룡이가 죽은 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바보’로 불렀지만, 격이 다른 ‘바보’로 부활했다.

생각해 보면 듣도 보도 못한 잡스러운 욕설이 쉴 틈 없이 창조되는 현시대에 ‘바보’는 더는 당대를 대표하는 욕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아내가 결혼하고 또는 유혹하는 대중문화에 발붙이기엔 유약하며, 사람이 불타 죽고, 공성전을 벌이듯 대치하는 비극적 사회문제에 대입하기엔 악에 받쳐 있지 않다.
 
욕설로서의 ‘바보’의 소멸인 것이다.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기적이다.
 
돈, 명예, 권력을 좇는 복마전과 암투가 횡행하니 ‘바보’란 멸종동물처럼 희귀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바보>의 작가 강풀은 말한다. ‘승룡이가 사랑받는 것은 도저히 바보로 살 수 없는 경쟁지향적 세상에서 끝끝내 바보의 순정함을 지켰기 때문이다’라고.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대통령이 ‘바보’라 불리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만든 두세 명의 ‘바보’는 분명 존중받아야 할 일이지만,
 
차라리 나는 ‘바보’가 욕설로 쓰이는 세상을 꿈꾼다.
‘바보’로 사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고,
 
 ‘바보’ 정도의 짧은 욕설로 대부분의 사람과 사건을 담아낼 수 있는 사회. 순수함과 순박함이 남아 있고,
 
많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자신의 순정을 지킬 수 있는 사회에선 ‘바보’란 고결한 그 무엇이 아닌 그저 단순한 욕설로 남을 뿐이다.
 
더러운 세상에서 ‘바보’만이 홀로 성스럽게 변했다.
 
씁쓸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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