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소사이어티 댓글 0건 조회 676회 작성일 09-06-02 18:06본문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였다. 루소는 적어도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했지만,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사실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나며,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현실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다. 인간은 법률적으로는 평등하게 태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불평등한 사회의 영향을 받아 불평등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리고 전 생애에 걸쳐 불평등한 사회의 각종 병폐들을 차별적으로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리하여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받는 차별적 경험만큼 건강도 차별적 영향을 받게 되어 건강의 불평등이 양산된다.
우리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느냐'이다. 돈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와 돈 없고,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미래는 극명하게 갈린다. 뿐만 아니라, 태어난 아이의 건강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태아기와 영유아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의 삶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산모와 영유아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개입은 논리적으로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빈곤 아동 문제는 현재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2008년 아동 청소년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아동·청소년 중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빈곤층은 7.8%, 상대빈곤층은 11.5%였다. 이는 2006년 통계청 가계조사로 측정한 아동가구 중 절대빈곤층 5.0%, 상대빈곤층 8.4%에 비해 크게 높아진 수치이다. 더군다나, 경제 위기의 영향 하에 놓여있는 2009년에는 아동 빈곤의 문제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은 설득력을 더욱 잃어 가고 있으며,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부모의 소득과 재산 등 경제적 부에 따라 자녀의 교육 기회와 능력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을 통한 가난의 대물림 차단은 이미 그 효력을 거의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행복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낮았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지니계수'는 2인 이상 도시가구의 시장 소득을 기준으로 2008년 0.325를 기록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0년 이후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가계수지에서도 통계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래로 빈부 간의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고 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20%의 소득은 16만8000원 증가한데 비해, 상위 20%는 164만3000원이 증가하여, 전체 소득에서 하위 20%가 차지하는 소득의 비중은 5.6%에서 5.4%로 떨어졌고, 상위 20%는 40.6%에서 41.7%로 증가했다. 학력계층 간 임금 격차는 고졸자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대졸자의 임금은 2003년 151.7, 2005년 154.9, 2007년은 157.7로 계속 확대되어 가고 있다. 남녀 간 임금 격차 역시 심각하여 여성의 평균 임금 수준은 남성의 60% 정도에 불과하여 OECD 국가들 중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이렇듯, 전반적인 사회 불평등이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한 사회적 안전 장치는 한국의 경제 수준에 비할 때 극히 취약한 실정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노인 빈곤'이다. 한국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06년 기준으로 45%에 이른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13%에 비해 3.5배나 높은 수치이며, 가장 낮은 뉴질랜드의 2%에 비하면 23배나 높다. 선진국 중에서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이 40%대가 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이러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은 사회적 현상 그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정신과 신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은 병원성 세균이 우리 신체로 침입하여 질병을 일으키듯이 우리 몸의 신경면역체계 등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술과 담배, 약물 복용 등 나쁜 건강 행태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각종 질병들과 상해를 일으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은 건강의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건강을 개인의 책임 또는 타고난 유전적 문제로 인식하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폐암에 걸리기도 하고, 비슷한 여건에 처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건강한 생활을 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예로 들기도 한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고, 개인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물론, 개인 간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각을 넓혀서 관찰해보면, 이러한 차이가 사회 계층별로 매우 구조화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건강 불평등 연구가 가장 많이 이루어졌던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금연 정책이 직업 분류에 의한 사회 계층 간에 구조적으로 다르게 영향을 미치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부터 1988년까지의 기간 동안 국가적 차원의 금연 정책을 통해 영국 남성의 흡연율은 52%에서 30%로 감소하였는데, Ⅰ계급(전문가계급)은 33%에서 16%로 절반 이상 감소한 반면, Ⅴ계급(비숙련 육체노동자계급)은 64%에서 43%로 감소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현상은 Ⅰ계급에서 Ⅴ계급만이 아니라, 전 사회계급에 걸쳐 나타났었다. 이는 하위 계급이 상위 계급에 비해 금연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흡연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많이 노출되고, 금연이라는 행동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더 높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회 계층 간의 차별적인 환경과 장벽이 구조적으로 존재함을 고려하지 않고,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건강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선택을 할 수 있는 동일한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현상이 우리 몸에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최근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는 자살률이다. 특히,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OECD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데, 노인 인구 10만 명당 1998년의 38명 자살에서 2007년 73.6명 자살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이러한 한국 노인의 높은 자살률은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이 그만큼 궁핍함을 의미한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거나, 정신의학적으로는 우울증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는 분명 '사회적 타살'이다.
만약, 우울증이 그 원인이라면, 한국보다 우울증 유병률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자살률이 더 낮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우울증과 자살과의 관련성은 부정할 수 없는 의학적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작동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나 신앙심의 부족은 더더욱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우리 사회의 연대와 통합의 정도가 점점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살 예방 상담서비스나 자살 사이트를 감시하고, 폐쇄하는 등의 조치들은 자살 문제의 극히 일부분만을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폴 크루그먼은 불평등한 사회가 공공지출에 미치는 결과에 대해 "상위 5%의 부유층은 중산층보다 세금을 훨씬 더 많이 내지만, 교육과 같은 사회적 혜택은 그들이 낸 세금에 상응하지 못한다. 소득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러한 이익의 불균형도 더욱 커지고, 부유층은 세금을 낮추고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줄일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사회의 불평등이 커지면 커질수록, 계층 간의 불화는 더욱 심화되며, 사회적 연대와 통합력은 점점 더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빈곤, 불평등 사회, 그리고 건강 불평등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영국은 1948년부터 시작한 국영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를 통해 국민들에게 거의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에 발간된 블랙보고서에서는 영국 NHS가 시행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영국민들의 건강 불평등 정도는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블랙보고서에서는 국영의료서비스가 궁극적 목표인 영국민의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국가에서 이를 고려하여 관련 투자를 획기적으로 증대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동시에, 더 근본적으로는 유럽 선진국 중에서 가장 심각한 영국의 사회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며, 특히 포괄적인 '반 빈곤 전략'을 수립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하지만 대처 정부 집권 초기에 발표된 블랙보고서의 내용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대처 정부 시기 동안 영국의 NHS에 대한 투자는 거의 정체 상태에 머물렀고, 오히려 민영화를 통해 NHS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하였다. 그 결과, NHS는 낡은 제도로 인식되어 버렸다. 블랙보고서를 통해 제시된 각종 정책들이 영국 정부에 의해 빛을 발휘하게 되기까지는 17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의미하게 17년이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블랙보고서에 영향을 받아 다 방면에서 영국의 건강 불평등의 실태와 그 해결방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유럽 각국에서 정부 차원 또는 연구소 차원에서 자국의 건강 불평등에 관한 종합적 보고서가 출간되기도 하였다.
영국의사협회에서는 블랙보고서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영국의사협회지를 통해 NHS 시작 이후 가장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들과 더불어, 18여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은 노동당 정부는 건강 불평등 아젠더를 정부의 정책에서 높은 우선 순위로 배치하였으며, NHS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하였다. 현재 영국 정부는 공공 정책을 국민들의 건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수립할 것과 빈곤에 대한 특단의 대책 수립, 특히 산모와 아동을 둔 가족의 빈곤상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2020년까지 빈곤 아동률을 0%로 할 것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또한, NHS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하여, 대처정부 기간 내내 NHS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어 GDP 대비 6.5%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국민의료비가 현재는 8.5%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과 사회 불평등, 그리고 건강 불평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의 경제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처방식은 이를 완화 또는 해결하기 보다는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최근의 통계 수치들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되어가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하지만, 심화되어 가는 빈곤과 사회 불평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 마련은 거의 없다. 말로만 사회통합을 외친다고 사회 통합이 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빈곤을 양산하고,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들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이를 통해 가장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일부의 소외계층에게 선심성 정책을 쓰는 방식으로는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논평과 성명 등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부모의 소득 수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교육을 강화시키는 정책으로는 교육을 통한 빈곤 탈출을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신분의 대물림만 제도화할 뿐이다. 결국, 빈곤 아동과 청소년들은 삶의 희망을 일찍 포기해 버림으로써 탈선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또한, 경제 활성화라는 명목 하에 추진되고 있는 일련의 의료 민영화 정책들은 공공의료와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투자를 줄이고, 중산 서민층과 빈곤층 국민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명백하게 저해한다. 교육과 의료를 비롯한 공공정책의 약화는 빈곤과 불평등한 사회로부터 받는 외부적 충격에 대한 완충지대를 제거 또는 약화시킴으로써 결국, 국민들의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되고, 건강 불평등은 확대·심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말로만의 국민 통합이 아니라 실천으로서의 국민 통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국회를 중심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계속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빈곤과 사회 불평등이 국민들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요, 국민 통합을 실천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다. 인간은 법률적으로는 평등하게 태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불평등한 사회의 영향을 받아 불평등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리고 전 생애에 걸쳐 불평등한 사회의 각종 병폐들을 차별적으로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리하여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받는 차별적 경험만큼 건강도 차별적 영향을 받게 되어 건강의 불평등이 양산된다.
우리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느냐'이다. 돈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와 돈 없고,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미래는 극명하게 갈린다. 뿐만 아니라, 태어난 아이의 건강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태아기와 영유아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의 삶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산모와 영유아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개입은 논리적으로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빈곤 아동 문제는 현재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2008년 아동 청소년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아동·청소년 중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빈곤층은 7.8%, 상대빈곤층은 11.5%였다. 이는 2006년 통계청 가계조사로 측정한 아동가구 중 절대빈곤층 5.0%, 상대빈곤층 8.4%에 비해 크게 높아진 수치이다. 더군다나, 경제 위기의 영향 하에 놓여있는 2009년에는 아동 빈곤의 문제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은 설득력을 더욱 잃어 가고 있으며,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부모의 소득과 재산 등 경제적 부에 따라 자녀의 교육 기회와 능력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을 통한 가난의 대물림 차단은 이미 그 효력을 거의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행복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낮았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지니계수'는 2인 이상 도시가구의 시장 소득을 기준으로 2008년 0.325를 기록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0년 이후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가계수지에서도 통계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래로 빈부 간의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고 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20%의 소득은 16만8000원 증가한데 비해, 상위 20%는 164만3000원이 증가하여, 전체 소득에서 하위 20%가 차지하는 소득의 비중은 5.6%에서 5.4%로 떨어졌고, 상위 20%는 40.6%에서 41.7%로 증가했다. 학력계층 간 임금 격차는 고졸자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대졸자의 임금은 2003년 151.7, 2005년 154.9, 2007년은 157.7로 계속 확대되어 가고 있다. 남녀 간 임금 격차 역시 심각하여 여성의 평균 임금 수준은 남성의 60% 정도에 불과하여 OECD 국가들 중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이렇듯, 전반적인 사회 불평등이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한 사회적 안전 장치는 한국의 경제 수준에 비할 때 극히 취약한 실정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노인 빈곤'이다. 한국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06년 기준으로 45%에 이른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13%에 비해 3.5배나 높은 수치이며, 가장 낮은 뉴질랜드의 2%에 비하면 23배나 높다. 선진국 중에서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이 40%대가 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이러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은 사회적 현상 그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정신과 신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은 병원성 세균이 우리 신체로 침입하여 질병을 일으키듯이 우리 몸의 신경면역체계 등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술과 담배, 약물 복용 등 나쁜 건강 행태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각종 질병들과 상해를 일으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은 건강의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건강을 개인의 책임 또는 타고난 유전적 문제로 인식하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폐암에 걸리기도 하고, 비슷한 여건에 처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건강한 생활을 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예로 들기도 한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고, 개인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물론, 개인 간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각을 넓혀서 관찰해보면, 이러한 차이가 사회 계층별로 매우 구조화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건강 불평등 연구가 가장 많이 이루어졌던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금연 정책이 직업 분류에 의한 사회 계층 간에 구조적으로 다르게 영향을 미치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부터 1988년까지의 기간 동안 국가적 차원의 금연 정책을 통해 영국 남성의 흡연율은 52%에서 30%로 감소하였는데, Ⅰ계급(전문가계급)은 33%에서 16%로 절반 이상 감소한 반면, Ⅴ계급(비숙련 육체노동자계급)은 64%에서 43%로 감소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현상은 Ⅰ계급에서 Ⅴ계급만이 아니라, 전 사회계급에 걸쳐 나타났었다. 이는 하위 계급이 상위 계급에 비해 금연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흡연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많이 노출되고, 금연이라는 행동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더 높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회 계층 간의 차별적인 환경과 장벽이 구조적으로 존재함을 고려하지 않고,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건강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선택을 할 수 있는 동일한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현상이 우리 몸에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최근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는 자살률이다. 특히,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OECD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데, 노인 인구 10만 명당 1998년의 38명 자살에서 2007년 73.6명 자살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이러한 한국 노인의 높은 자살률은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이 그만큼 궁핍함을 의미한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거나, 정신의학적으로는 우울증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는 분명 '사회적 타살'이다.
만약, 우울증이 그 원인이라면, 한국보다 우울증 유병률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자살률이 더 낮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우울증과 자살과의 관련성은 부정할 수 없는 의학적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작동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나 신앙심의 부족은 더더욱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우리 사회의 연대와 통합의 정도가 점점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살 예방 상담서비스나 자살 사이트를 감시하고, 폐쇄하는 등의 조치들은 자살 문제의 극히 일부분만을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폴 크루그먼은 불평등한 사회가 공공지출에 미치는 결과에 대해 "상위 5%의 부유층은 중산층보다 세금을 훨씬 더 많이 내지만, 교육과 같은 사회적 혜택은 그들이 낸 세금에 상응하지 못한다. 소득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러한 이익의 불균형도 더욱 커지고, 부유층은 세금을 낮추고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줄일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사회의 불평등이 커지면 커질수록, 계층 간의 불화는 더욱 심화되며, 사회적 연대와 통합력은 점점 더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빈곤, 불평등 사회, 그리고 건강 불평등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영국은 1948년부터 시작한 국영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를 통해 국민들에게 거의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에 발간된 블랙보고서에서는 영국 NHS가 시행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영국민들의 건강 불평등 정도는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블랙보고서에서는 국영의료서비스가 궁극적 목표인 영국민의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국가에서 이를 고려하여 관련 투자를 획기적으로 증대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동시에, 더 근본적으로는 유럽 선진국 중에서 가장 심각한 영국의 사회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며, 특히 포괄적인 '반 빈곤 전략'을 수립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하지만 대처 정부 집권 초기에 발표된 블랙보고서의 내용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대처 정부 시기 동안 영국의 NHS에 대한 투자는 거의 정체 상태에 머물렀고, 오히려 민영화를 통해 NHS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하였다. 그 결과, NHS는 낡은 제도로 인식되어 버렸다. 블랙보고서를 통해 제시된 각종 정책들이 영국 정부에 의해 빛을 발휘하게 되기까지는 17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의미하게 17년이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블랙보고서에 영향을 받아 다 방면에서 영국의 건강 불평등의 실태와 그 해결방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유럽 각국에서 정부 차원 또는 연구소 차원에서 자국의 건강 불평등에 관한 종합적 보고서가 출간되기도 하였다.
영국의사협회에서는 블랙보고서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영국의사협회지를 통해 NHS 시작 이후 가장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들과 더불어, 18여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은 노동당 정부는 건강 불평등 아젠더를 정부의 정책에서 높은 우선 순위로 배치하였으며, NHS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하였다. 현재 영국 정부는 공공 정책을 국민들의 건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수립할 것과 빈곤에 대한 특단의 대책 수립, 특히 산모와 아동을 둔 가족의 빈곤상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2020년까지 빈곤 아동률을 0%로 할 것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또한, NHS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하여, 대처정부 기간 내내 NHS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어 GDP 대비 6.5%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국민의료비가 현재는 8.5%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과 사회 불평등, 그리고 건강 불평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의 경제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처방식은 이를 완화 또는 해결하기 보다는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최근의 통계 수치들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되어가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하지만, 심화되어 가는 빈곤과 사회 불평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 마련은 거의 없다. 말로만 사회통합을 외친다고 사회 통합이 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빈곤을 양산하고,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들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이를 통해 가장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일부의 소외계층에게 선심성 정책을 쓰는 방식으로는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논평과 성명 등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부모의 소득 수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교육을 강화시키는 정책으로는 교육을 통한 빈곤 탈출을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신분의 대물림만 제도화할 뿐이다. 결국, 빈곤 아동과 청소년들은 삶의 희망을 일찍 포기해 버림으로써 탈선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또한, 경제 활성화라는 명목 하에 추진되고 있는 일련의 의료 민영화 정책들은 공공의료와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투자를 줄이고, 중산 서민층과 빈곤층 국민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명백하게 저해한다. 교육과 의료를 비롯한 공공정책의 약화는 빈곤과 불평등한 사회로부터 받는 외부적 충격에 대한 완충지대를 제거 또는 약화시킴으로써 결국, 국민들의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되고, 건강 불평등은 확대·심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말로만의 국민 통합이 아니라 실천으로서의 국민 통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국회를 중심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계속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빈곤과 사회 불평등이 국민들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요, 국민 통합을 실천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