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우리 시대의 아이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노사모 댓글 0건 조회 729회 작성일 09-06-01 00:23본문
오늘 노무현 대통령이 영원한 길을 떠난다. 그의 말대로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이듯 한줌 재가 되어 그는 영원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새벽에 일어나 서울가는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마지막 가는 그의 길에 손을 흔들어주기 위함이다.
그 먼 봉하마을에 조문객이 100만명이 넘고 전국곳곳에서 조문한 사람이 수백만명이라는 사실은 마치 3.1운동과 419혁명을 방불케한다. 언제 우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일어났던 때가 있었던가? 이것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노무현 신드롬이라고 할만하다.
결국 노무현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하는 노래가사처럼 바보같이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던져 바위에 머리가 깨지고 전신이 으스러지며 자신을 파괴하는 아픔을 이기고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았으니 그는 바보가 아니라 진정한 자신만의 삶을 불꽃처럼
살다간 이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이다.
노무현이 만약 빽없고 돈없는 자의 무모함이 없었다면, 기득권세력에 항거하는 저돌성이 없었다면, 지역감정 타파에 도전하는 오기가 없었다면, 거대 언론권력에 맞서는 무대뽀같은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노무현은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그가 살아있을 때 그의 진정성을 미쳐 알아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대부분이다.
그의 소탈함, 투박함, 솔직함, 인자함은 거의 무방비상태에 가까운 탈권위주의와 함께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제껏 이런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세상이 돈에 미쳐 돌아가도 그는 여전히 노골적으로 서민의 편이었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섰다. 우리에게 누가있어 "굶는 사람이 없이하라" 는 세종대왕이래로 이런 지도자가 있었는가? 권위를 앞세우고 일사천리로 밀어부치고 반대자는 탄압하고 잡아 가두는 지도자들이 판치던 세상에서 그는 신선한 바람이었고 우리에겐 한줄기 빛이었던 것이다.
그가 죽은 다음날 수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분향의 차례를 기다릴 때 하늘도 슬퍼하셨는지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추모객들은 누구하나 흩어지지 않고 온몸으로 그 줄기찬 소나기를 맞았다. 지난번 덕수궁 앞에 분향하러 가보니 몇시간씩 줄서서 기다리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차분하고 조용한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말없이 눈물지으며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시간을 기다리면서도 그 흔한 새치기나 술주정도 없었다. 나는 이런 조용함과 차분함을 이시대의 아이콘을 죽게 만든 이 정권에 대한 분노와 노여움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죽음은 정상에 올랐던 사람의 고독함과 고뇌가 짙게 깔려있다. 살아서 구차하게 연명할 것인가? 아니면 치욕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자결하여 명예를 지킬 것인가의 선택의 순간에 많은 사람들은 저항하다가 항복하고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사면초가 속의 항우는 후자를 택하며 명예를 선택했다. 노무현의 결정도 그랬으리라.
내아내를 버리란 말인가? 고 당당하게 외치던 그가 아내와 자식과 눈에 밟히는 손녀를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한 가슴쓰리고 아픈 그 선택을 누가 감히 비난한단 말인가?
그는 자기원칙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가족이 연루된 작은 티끌하나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부끄러워했고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것이다.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의 가족을 삼족을 멸하듯 잡아들이고 가난한 자신에게 먹고살라고 도와주고도 배신한 친구인 박연차에 절망하며 평생지기들과 부하들을 줄줄이 잡아들이는 상황에서 그는 모든 허물을 스스로 안고갔다.
이 얼마나 장엄한 죽음인가? 누군가 정치적인 존엄사라고했는데 우리나라에 누가있어 노무현 같은 죽음을 선택했는가? 그러나 "원망하지마라. 미안해하지마라.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냐" 는 생사를 초월한 그의 죽음은 정말 거짓말같이 죽음을 뛰어넘어 우리의 곁으로 살아 돌아왔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같지 않은 삶을 거부하고 죽어도 살아있는 영원한 삶을 선택한 그의 결정에 삼가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한다.
그가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살아서 바보라는 별명을 좋아했던 그사람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등록금이 없어 고구마줄기 팔아서 내겠다고 약속한 아버지의 아픔을 알았고 돈없어 상고로 진학해야했던 그가 가난과 배고픔을 이기기위해 토굴을 파고 공부하여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까지 그는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 공부했겠는가?
돈많이 벌며 편안히 사는 변호사의 삶을 거부하고 남이 가지않는 길을 가며 그가 겪었을 간난고초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로 비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천에서 난 용이다. 우리는 노무현같은 사람을 다시는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본받아야하며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이야말로 사람사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노무현같은 개천에서 난 용이 나올 수 없는 길로 향하니 우리는 이 잘못된 길을 반드시 막고 거부해야한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며 뛰놀던 봉하마을로 금의환향하고도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시민" 이라며 투박한 농투산이의 삶을 살기를 원했던 노무현은 오늘 영원히 우리곁을 떠난다.
그가 가는 길에 작은 노란손수건 하나를 흔들어 주기 위해 하루일정을 취소하고 올라온 나도 어쩌면 내친구 누군가의 말처럼 미친놈인지도 모른다. 그의 몰락을 아쉬워하며 친구들과 목청높여 싸우던 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이 되어 다시 살아난 노무현이 있어 슬프지않다. 오늘은 결코 울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몸을 깨트리는 아픔을 이기고 마침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승리자가 된 노무현을 보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노무현의 삶을 본받고 노무현의 가치를 배우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사람사는 세상"은 마땅히 우리가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 몫이다. 부디 안녕히....
그 먼 봉하마을에 조문객이 100만명이 넘고 전국곳곳에서 조문한 사람이 수백만명이라는 사실은 마치 3.1운동과 419혁명을 방불케한다. 언제 우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일어났던 때가 있었던가? 이것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노무현 신드롬이라고 할만하다.
결국 노무현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하는 노래가사처럼 바보같이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던져 바위에 머리가 깨지고 전신이 으스러지며 자신을 파괴하는 아픔을 이기고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았으니 그는 바보가 아니라 진정한 자신만의 삶을 불꽃처럼
살다간 이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이다.
노무현이 만약 빽없고 돈없는 자의 무모함이 없었다면, 기득권세력에 항거하는 저돌성이 없었다면, 지역감정 타파에 도전하는 오기가 없었다면, 거대 언론권력에 맞서는 무대뽀같은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노무현은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그가 살아있을 때 그의 진정성을 미쳐 알아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대부분이다.
그의 소탈함, 투박함, 솔직함, 인자함은 거의 무방비상태에 가까운 탈권위주의와 함께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제껏 이런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세상이 돈에 미쳐 돌아가도 그는 여전히 노골적으로 서민의 편이었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섰다. 우리에게 누가있어 "굶는 사람이 없이하라" 는 세종대왕이래로 이런 지도자가 있었는가? 권위를 앞세우고 일사천리로 밀어부치고 반대자는 탄압하고 잡아 가두는 지도자들이 판치던 세상에서 그는 신선한 바람이었고 우리에겐 한줄기 빛이었던 것이다.
그가 죽은 다음날 수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분향의 차례를 기다릴 때 하늘도 슬퍼하셨는지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추모객들은 누구하나 흩어지지 않고 온몸으로 그 줄기찬 소나기를 맞았다. 지난번 덕수궁 앞에 분향하러 가보니 몇시간씩 줄서서 기다리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차분하고 조용한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말없이 눈물지으며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시간을 기다리면서도 그 흔한 새치기나 술주정도 없었다. 나는 이런 조용함과 차분함을 이시대의 아이콘을 죽게 만든 이 정권에 대한 분노와 노여움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죽음은 정상에 올랐던 사람의 고독함과 고뇌가 짙게 깔려있다. 살아서 구차하게 연명할 것인가? 아니면 치욕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자결하여 명예를 지킬 것인가의 선택의 순간에 많은 사람들은 저항하다가 항복하고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사면초가 속의 항우는 후자를 택하며 명예를 선택했다. 노무현의 결정도 그랬으리라.
내아내를 버리란 말인가? 고 당당하게 외치던 그가 아내와 자식과 눈에 밟히는 손녀를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한 가슴쓰리고 아픈 그 선택을 누가 감히 비난한단 말인가?
그는 자기원칙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가족이 연루된 작은 티끌하나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부끄러워했고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것이다.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의 가족을 삼족을 멸하듯 잡아들이고 가난한 자신에게 먹고살라고 도와주고도 배신한 친구인 박연차에 절망하며 평생지기들과 부하들을 줄줄이 잡아들이는 상황에서 그는 모든 허물을 스스로 안고갔다.
이 얼마나 장엄한 죽음인가? 누군가 정치적인 존엄사라고했는데 우리나라에 누가있어 노무현 같은 죽음을 선택했는가? 그러나 "원망하지마라. 미안해하지마라.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냐" 는 생사를 초월한 그의 죽음은 정말 거짓말같이 죽음을 뛰어넘어 우리의 곁으로 살아 돌아왔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같지 않은 삶을 거부하고 죽어도 살아있는 영원한 삶을 선택한 그의 결정에 삼가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한다.
그가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살아서 바보라는 별명을 좋아했던 그사람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등록금이 없어 고구마줄기 팔아서 내겠다고 약속한 아버지의 아픔을 알았고 돈없어 상고로 진학해야했던 그가 가난과 배고픔을 이기기위해 토굴을 파고 공부하여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까지 그는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 공부했겠는가?
돈많이 벌며 편안히 사는 변호사의 삶을 거부하고 남이 가지않는 길을 가며 그가 겪었을 간난고초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로 비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천에서 난 용이다. 우리는 노무현같은 사람을 다시는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본받아야하며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이야말로 사람사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노무현같은 개천에서 난 용이 나올 수 없는 길로 향하니 우리는 이 잘못된 길을 반드시 막고 거부해야한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며 뛰놀던 봉하마을로 금의환향하고도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시민" 이라며 투박한 농투산이의 삶을 살기를 원했던 노무현은 오늘 영원히 우리곁을 떠난다.
그가 가는 길에 작은 노란손수건 하나를 흔들어 주기 위해 하루일정을 취소하고 올라온 나도 어쩌면 내친구 누군가의 말처럼 미친놈인지도 모른다. 그의 몰락을 아쉬워하며 친구들과 목청높여 싸우던 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이 되어 다시 살아난 노무현이 있어 슬프지않다. 오늘은 결코 울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몸을 깨트리는 아픔을 이기고 마침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승리자가 된 노무현을 보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노무현의 삶을 본받고 노무현의 가치를 배우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사람사는 세상"은 마땅히 우리가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 몫이다. 부디 안녕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