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무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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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돈이란 댓글 0건 조회 966회 작성일 09-05-11 09:11본문
돈이란 무엇이기에?
개도 안먹는 돈이라 하지만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했다. 어쩌고 저쩌고 해도 살아가자면 꼭 있어야 할것이 돈이다. 아마 그래서 그 돈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가싶다.
돈 없는 동년의 추억
옛날 우리 집은 말그대로 툭털면 먼지밖에 없을 정도로 째지게 가난했다. 오롱조롱 자식이 여섯이나 되는 우리 집 여덟식솔은 아버지의 65원50전되는 로임과 어머니가 림시공으로 벌어들이는 몇십원 로임까지 합쳐 백원도 안되는 로임에 매달려 살다보니 생활난에 쪼들리기가 일쑤였다. 다행히 어머니의 야무진 살림솜씨에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해나기는 했지만 잘사는 집 애들이 늘쌍 입에 달고 다니는 “궈즈” 같은것은 먹을 엄두조차 못내고 쩝쩝 입만 다시면서 먼곳에서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은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수 있는 식품이고 그때 당시에도 7전씩밖에 하지 않던 “궈즈”였지만 우리 집에서는 손님이 올때나 간혹 “궈즈”로 생활개선을 할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집에는 귀한 손님이 왔다. 훈춘경신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외삼촌이 연길로 오게 되였다. 그때 훈춘은 변경지구이다보니 오고가자면 무조건 통행증이 있어야만 했다. 그런만큼 어머니에게 있어서 외삼촌은 누구보다도 귀한 손님이였다.
그 덕에 우리는 오래간만에 생활개선을 할수가 있었다. 얼마나 좋던지. 아침 일찍 어머니는 세째누나와 막내누나 그리고 나를 툭툭 쳐서 깨워 앉혔다. 우리더러 얼른 식당에 가서 “궈즈”를 사오라면서 돈 1원50전을 주는것이였다. 우리는 보온병과 신문지 몇장을 들고 푸름푸름 먼동을 맞으며 집문을 나섰다. 연길시복무호텔에 이르고보니 새벽 4시가 좀 넘었지만 벌써부터 숱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얼마후 식당문이 열리고 우리 차례가 되여 “궈즈” 를 샀다. 순간 나는 기름속을 한껏 자맥질하여 동동 부풀어오른 “궈즈”의 유혹을 뿌리칠수가 없었다. 나는 막내누나의 손에서 “궈즈” 3개를 빼앗다싶이 갖고는 그중 한개는 뚝 떼여 입에 물고는 무작정 내뛰였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와 부딪치며 “궈즈”를 떨어뜨렸다. 그 사람의 큼직한 발이 “궈즈”를 사정없이 밟았고 잇달아 욱 밀려드는 사람들로 하여 “궈즈”는 바닥에서 “만신창”이 되여버렸다. 어떻게 산 “궈즈”인데 , 이제 집에 가면 어떻게 변명한담? 나는 두려움에 부들부들 몸을 떨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애야, 울지 말아라. 이 아저씨가 잘못했구나.”
분명 나의 잘못이였지만 그 아저씨는 나를 달래며 자기가 산 “궈즈”에서 3개를 덜어내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개눈깔사탕이라도 사먹으라면서 50전을 손에 쥐여주고는 내 손을 꼭 잡고 식당밖까지 데려다주었다. 하루에 2원도 못버는 그 세월에 50전이면 얼마나 큰 돈인가? 그만큼 그 시절의 사람들은 마음이 수정처럼 깨끗하고 화로처럼 뜨거웠다. 못살긴 해도 정이 넘치는 그 시절, 그래서 나는 여지껏 그분이 그리웁고 그 동년이 그립다.
돈앞에 스러진 사랑
80년대,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급기야 눈을 뜨고 어미젖찾는 강아지처럼 돈에 너무도 착착 감겨들었다. 그만큼 돈이 사람들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
나는 무산자중의 한사람이였다. 사업에 참가한지 몇년밖에 안되다보니 로임이 30원도 되나마나하였다. 거기에 남보다 뾰족하게 살겟노라고 책도 사보고 문학강습반에도 다니면서 어벌차게 작가꿈을 꾸다보니 말그대로 툭 털면 먼지밖에 없는 알짜 가난뱅이였다. 그런데 신문이나 간행물에 나의 글들이 실리면서 일약 수재로 떠받들렸다. 허, 그 자식, 작은 고추 맵다더니 덩치는 작아도 맹물은 아닌데. 사람들은 수근덕거리기 시작했고 잇달아 혼사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제딴에는 괜찮다고 생각되는 처녀와 련애을 하기 시작했는데 맙소사, 사귄지 두달도 안되여 작은 잔치를 하잔다. 겨우 손이나 쥐여본 사이에 뭐가 그리 급해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하는거지? 하여간 급해맞은건 나였다.
툭 털면 먼지밖에 없는 내가 그 아름찬 혼수감을 어찌 준비한단말인가? 하지만 언제 한번 부딪칠 일이니 속시원히 모든걸 털어놓으면 그녀도 나를 알아봐줄것이다. 아무리 돈이 좋은 세월이라지만 그래도 사람됨됨이가 우선이 아닐가?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내 신세를 이실직고했다. 헌데 아뿔싸! 그녀는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고 빠이빠이를 웨치며 뒤도 안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가는것이 아닌가. 허참, 세상에 어쩜 저런 녀자가 있어? 그래, 가라! 돈 많은 남자 만나 잘 살아라! 아무렴, 무산자와 자산자가 결합될리 없지. 오르지 못할 나무는 바라보지 말라고 우린 연분이 아니야! 그래, 잊자. 잊어버리자! 나는 돌을 툭 차며 돌아섰다. 후-길게 숨을 내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드넓은 하늘이 시야에 안겨들었다.
그 하늘이 좋았다. 또다시 우쭐우쭐 희망이 꿈질거렸다. 그래, 세상은 넓다. 그만큼 사람도 많고많다. 아무렴, 헌신짝도 짝이 있다고 네가 아니면 장가 못들겠어?
그녀와 갈라진지 두달이 좀 넘어 나는 또 한 처녀와 면목을 익히게 되였다. 아버지와 함께 일용잡화점을 경영하고있는 그녀는 키도 맞춤했고 인물 또한 보기 좋았다. 흠이라면 다 큰 처녀가 제 주견이 없이 부모장단에 춤을 추는것이였다. 하지만 녀자가 주견이 세면 남자를 찜져먹지 않겠는가? 나는 어쩐지 나긋나긋한 그 성격이 더 맘에 끌렸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전번의 경험을 살려서 로임도 두루두루 하면 백원가량 된다고 슬쩍 허풍을 치면서 아직 젊었으니 두손 맞잡고 벌면 앞으로 생활이 금시 황홀할것이라고, 그녀가 원한다면 저 하늘의 별마저 따주겠노라고 큰소릴 빵빵 쳐댔다. 그 호언장담에 그녀는 행복에 겨워 나의 어깨에 살풋이 머리를 기댔다. 횐소릴 좀만 치면 제꺽 넘어오는 녀자들인데 그땐 왜 몰랐을가? 웃음집이 흔들흔들 하던 어느날, 그녀의 부모들이 나를 보겠다는것이였다.
상고머리를 하고 코수염을 기른 그녀의 아버지 몸에서는 년장자다운 기풍이 물씬물씬 풍겨오있었다. 나는 선생님앞에 앉은 소학생마냥 얌전히 앉아서 그녀 아버지의 판결을 기다리고있었다. 승낙일가 아니면 퇴짜일가? 이것저것 두루 묻고난 그녀 아버지는 내 어깨를 툭 치였다. 합격이란다. 덩치는 작아도 속은 땡땡 여물었다는것이였다.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넓쩍 엎드려 절을 하고 미래 장인과 더불어 술잔을 들기시작했다. 한잔, 두잔 술이 들어가니 두볼이 붉어지면서 말도 많아졌다. 누군가 로임이 얼마인가고 묻자 나는 엉결에 그대로 이실직고하였다. 순간 미래 장인의 얼굴이 푸들푸들 무섭게 떨리였다. 분명 그 얼굴은 내게 죄를 묻고있었다. 너, 이놈. 감히 나를 얼리다니? 제 입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주제에 내 딸을 데려가겠다고? 흥, 어림도 없어!
나는 뒤늦게 실언한 자신을 발견하고 입술을 잡아뜯었다. 못난 놈은 시키는 서방질도 못한다더니 이럴변이라구야. 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였다. 에잇, 될대로 되라지…
그날 나는 어떻게 그 집을 나섰는지 모른다. 며칠후 나와 만난 그녀는 아버지의 뜻을 전했다. 우리가 사귀는것을 동의하되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딸과 함께 장사를 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나는 그만 진퇴량난에 빠졌다. 그녀도 놓치고싶지 않았고 직장도 잃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동안 머리를 잡아뜯던끝에 나는 결국 그녀를 포기하고 직장을 선택하였다. 사실 그때 나에게는 직장을 포기할만한 용기가 부족했다. 국영직장은 든든한 철밥통이 아닌가?
그때 고분고분 그 결정을 받아들였으면 아마 지금쯤은 처가덕에 부자가 되였으련만 역시 역지못한 놈은 별수 없는가본다.
나는 그녀가 야속스러웠다. 아니, 돈 없고 무능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돈이란 무엇이기에 순결한 사랑에서마저 상처를 입어야 하는지? 가슴이 아팠다. 저도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돈앞에 스러진 량심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슴이 침침한감이 나더니 때때로 왼쪽가슴도 띠끔띠끔 아파났다. 꼭 무슨 병에 걸린듯하였다. 그래서 부대병원을 찾아가서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간도 위도 담도 모두 정상이였다. 그러면 심장밖에 더 있겠는가? 부랴부랴 심전도검사를 해봣더니 그것 역시 정상이였다.
그것 참, 야단이였다. 꼭 의난병에 걸린것임에 틀림없었다. 의난병에는 명의를 찾아야 병도 진단해낼수 있고 치료도 가능할텐데? 며칠동안 수심에 잠겨있던 내게 그 어떤 희망이 반짝 생겼다. 어느 한 매체에서 모 의사가 의난병에 명의라고 홍보한 글을 보았던것이다. 글에서 그 의사는 여느 의사와 달리 독특한 의술로 의난병을 치료한다고 그럴듯이 소개되여있었다.
나는 물에 빠진 놈 지프래기라도 잡듯 그 어떤 희망을 느끼며 핸드폰을 꾹꾹 눌러 의사와 련계를 달고 찾아갓다. 이 말 저 말 물어도 보고 맥도 집어보던 그는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서 한개 치료단계는 일주일인데 1,200원이라고 하였다.
심장이면 인체의 발동기이다. 그 발동기에 고장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직 너무도 할 일이 많은데 벌써부터 염라대왕의 부름을 받다니, 이거야 어디 될 말인가?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치료비가 얼마든지 따지지 않고 치료받겠노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헌데 점적주사를 맞으며 볼라니 여느 환자를 물론하고 그 점적주사액 색갈이 천편일률로 똑같았고 먹는 약 역시 똑같았다. 미심쩍은 생각이 휙 머리를 스치고 지나서 나는 의사와 따졌다. 그랬더니 의사는 약물의 색갈은 같아도 내용물은 다르니 안심하고 치료하라면서 내 어깨를 툭툭 치는것이였다. 그 인자한 손놀림에 감격을 금치못하며 일주일간 치료를 받았으나 그 상이 장상, 오히려 아픔은 점점 더해갔다. 헌데 이건 뭐 호전반응이여서 두개 단계의 치료를 더 받아야 된다나. 아니, 그럴수 없어. 그래도 큰 병원을 찾아가보자! 나는 부랴부랴 큰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 위내시경검사를 하라기에 검사를 했더니 위벽에 염증이 생긴거지 그 무슨 심장병이 아니란다. 후-살았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던 나는 급기야 감전된듯 부르르 전신을 떨었다.
또 그 돈이였다. 죽는 사람을 구하고 상한 사람을 부축하는게 의사의 도덕이 아닐가? 아무리 재간껏 벌라는 세월이지만 천사라는 그 이름까지 먹칠하며 꼭 그렇게 돈을 벌어야 할가? 이거, 해도 해도 너무 한게 아닌가?
돈앞에 스러진 인정
따르릉, 따르릉…전화벨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경만이였다. 친구 k군의 아버지 3년제사이니 함께 가자는것이였다. 아차, 이 정신 좀 봐. 나는 잊음이 헤픈 자신을 탓하며 친구와 함께 k군의 집을 찾아갔다.
k군의 집은 사람들로 벅적거렸으나 아직 제사식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있었다. 나는 친구와 트럼프장을 번지며 시간을 기다렸다. 갑자기 남쪽 침실로부터 우당탕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k군의삼촌과 사촌형이 뿔난 황소처럼 두눈을 뚝 부릅뜨고 치고박고 하잖겠는가. 온 방안에 가득 널려진 마작쪽들, 거멓게 퉁퉁 부어오른 삼촌의 눈언저리, 벌건 피가 흐르는 사촌형의 코…한분은 50을 넘겼고 다른 한분은 50에 가까운 사이, 누가 옳고 그름을 말할수 없는 그들, 때와장소마저 가리지 않고 마구 날뛰는 몰상식한 그들에게 시비가 어디 있으랴?
얼마후에야 알았지만 k군의 사촌형이 한국에서 몇년간 돈벌이 하고 돌아왔는데 글세 그는 돈자랑을 하면서도 못사는 삼촌이라고 찾아뵙지도 않고있었다. 돈이 좀 있노라고 코대가 잔뜩 높아졌던것이다. 아마 그것이 불씨가 되여 마작판이 깨지고 전투가 벌어졌던것이다.
“어이구, 없이 사니 어린 놈에게서까지 괄시를 받는구나. 그래 그 개도 안먹는 돈을 끌어안고 콱 잘살아라, 잘살아!”
제 가슴 툭툭 치며 눈물코물 줴짜는 삼촌이다.
“쳇, 그 소리 그만하오. 누가 뭐 벌지 말랍데? 그래도 돈이 아버지고 엄마요!”
잘못했노라고 머리를 조아리면 그 전투도 진작 끝났으련만 발정기에 들어선 수탉처럼 조금도 지지 않고 덤벼드는 조카다.
“뭐, 어쩌구 어째?”
“어째? 어째…”
또다시 맞붙는 그들, 피장파장, 그 삼촌에 그 조카였으니 뭐라고 말할가. 한심두 하지.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르다니, 후-이놈의 돈싸움이 언제쯤 끝날는지?
돈이란 이런것이다. 하지만 없으면 안되는것 역시 돈이니 그것 참, 모순이다. 문제는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는가에 달렸다. 목적 있게 벌고 유용하게 쓴다면 역시 값진것이 아닐가?
개도 안먹는 돈이라 하지만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했다. 어쩌고 저쩌고 해도 살아가자면 꼭 있어야 할것이 돈이다. 아마 그래서 그 돈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가싶다.
돈 없는 동년의 추억
옛날 우리 집은 말그대로 툭털면 먼지밖에 없을 정도로 째지게 가난했다. 오롱조롱 자식이 여섯이나 되는 우리 집 여덟식솔은 아버지의 65원50전되는 로임과 어머니가 림시공으로 벌어들이는 몇십원 로임까지 합쳐 백원도 안되는 로임에 매달려 살다보니 생활난에 쪼들리기가 일쑤였다. 다행히 어머니의 야무진 살림솜씨에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해나기는 했지만 잘사는 집 애들이 늘쌍 입에 달고 다니는 “궈즈” 같은것은 먹을 엄두조차 못내고 쩝쩝 입만 다시면서 먼곳에서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은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수 있는 식품이고 그때 당시에도 7전씩밖에 하지 않던 “궈즈”였지만 우리 집에서는 손님이 올때나 간혹 “궈즈”로 생활개선을 할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집에는 귀한 손님이 왔다. 훈춘경신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외삼촌이 연길로 오게 되였다. 그때 훈춘은 변경지구이다보니 오고가자면 무조건 통행증이 있어야만 했다. 그런만큼 어머니에게 있어서 외삼촌은 누구보다도 귀한 손님이였다.
그 덕에 우리는 오래간만에 생활개선을 할수가 있었다. 얼마나 좋던지. 아침 일찍 어머니는 세째누나와 막내누나 그리고 나를 툭툭 쳐서 깨워 앉혔다. 우리더러 얼른 식당에 가서 “궈즈”를 사오라면서 돈 1원50전을 주는것이였다. 우리는 보온병과 신문지 몇장을 들고 푸름푸름 먼동을 맞으며 집문을 나섰다. 연길시복무호텔에 이르고보니 새벽 4시가 좀 넘었지만 벌써부터 숱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얼마후 식당문이 열리고 우리 차례가 되여 “궈즈” 를 샀다. 순간 나는 기름속을 한껏 자맥질하여 동동 부풀어오른 “궈즈”의 유혹을 뿌리칠수가 없었다. 나는 막내누나의 손에서 “궈즈” 3개를 빼앗다싶이 갖고는 그중 한개는 뚝 떼여 입에 물고는 무작정 내뛰였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와 부딪치며 “궈즈”를 떨어뜨렸다. 그 사람의 큼직한 발이 “궈즈”를 사정없이 밟았고 잇달아 욱 밀려드는 사람들로 하여 “궈즈”는 바닥에서 “만신창”이 되여버렸다. 어떻게 산 “궈즈”인데 , 이제 집에 가면 어떻게 변명한담? 나는 두려움에 부들부들 몸을 떨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애야, 울지 말아라. 이 아저씨가 잘못했구나.”
분명 나의 잘못이였지만 그 아저씨는 나를 달래며 자기가 산 “궈즈”에서 3개를 덜어내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개눈깔사탕이라도 사먹으라면서 50전을 손에 쥐여주고는 내 손을 꼭 잡고 식당밖까지 데려다주었다. 하루에 2원도 못버는 그 세월에 50전이면 얼마나 큰 돈인가? 그만큼 그 시절의 사람들은 마음이 수정처럼 깨끗하고 화로처럼 뜨거웠다. 못살긴 해도 정이 넘치는 그 시절, 그래서 나는 여지껏 그분이 그리웁고 그 동년이 그립다.
돈앞에 스러진 사랑
80년대,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급기야 눈을 뜨고 어미젖찾는 강아지처럼 돈에 너무도 착착 감겨들었다. 그만큼 돈이 사람들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
나는 무산자중의 한사람이였다. 사업에 참가한지 몇년밖에 안되다보니 로임이 30원도 되나마나하였다. 거기에 남보다 뾰족하게 살겟노라고 책도 사보고 문학강습반에도 다니면서 어벌차게 작가꿈을 꾸다보니 말그대로 툭 털면 먼지밖에 없는 알짜 가난뱅이였다. 그런데 신문이나 간행물에 나의 글들이 실리면서 일약 수재로 떠받들렸다. 허, 그 자식, 작은 고추 맵다더니 덩치는 작아도 맹물은 아닌데. 사람들은 수근덕거리기 시작했고 잇달아 혼사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제딴에는 괜찮다고 생각되는 처녀와 련애을 하기 시작했는데 맙소사, 사귄지 두달도 안되여 작은 잔치를 하잔다. 겨우 손이나 쥐여본 사이에 뭐가 그리 급해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하는거지? 하여간 급해맞은건 나였다.
툭 털면 먼지밖에 없는 내가 그 아름찬 혼수감을 어찌 준비한단말인가? 하지만 언제 한번 부딪칠 일이니 속시원히 모든걸 털어놓으면 그녀도 나를 알아봐줄것이다. 아무리 돈이 좋은 세월이라지만 그래도 사람됨됨이가 우선이 아닐가?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내 신세를 이실직고했다. 헌데 아뿔싸! 그녀는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고 빠이빠이를 웨치며 뒤도 안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가는것이 아닌가. 허참, 세상에 어쩜 저런 녀자가 있어? 그래, 가라! 돈 많은 남자 만나 잘 살아라! 아무렴, 무산자와 자산자가 결합될리 없지. 오르지 못할 나무는 바라보지 말라고 우린 연분이 아니야! 그래, 잊자. 잊어버리자! 나는 돌을 툭 차며 돌아섰다. 후-길게 숨을 내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드넓은 하늘이 시야에 안겨들었다.
그 하늘이 좋았다. 또다시 우쭐우쭐 희망이 꿈질거렸다. 그래, 세상은 넓다. 그만큼 사람도 많고많다. 아무렴, 헌신짝도 짝이 있다고 네가 아니면 장가 못들겠어?
그녀와 갈라진지 두달이 좀 넘어 나는 또 한 처녀와 면목을 익히게 되였다. 아버지와 함께 일용잡화점을 경영하고있는 그녀는 키도 맞춤했고 인물 또한 보기 좋았다. 흠이라면 다 큰 처녀가 제 주견이 없이 부모장단에 춤을 추는것이였다. 하지만 녀자가 주견이 세면 남자를 찜져먹지 않겠는가? 나는 어쩐지 나긋나긋한 그 성격이 더 맘에 끌렸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전번의 경험을 살려서 로임도 두루두루 하면 백원가량 된다고 슬쩍 허풍을 치면서 아직 젊었으니 두손 맞잡고 벌면 앞으로 생활이 금시 황홀할것이라고, 그녀가 원한다면 저 하늘의 별마저 따주겠노라고 큰소릴 빵빵 쳐댔다. 그 호언장담에 그녀는 행복에 겨워 나의 어깨에 살풋이 머리를 기댔다. 횐소릴 좀만 치면 제꺽 넘어오는 녀자들인데 그땐 왜 몰랐을가? 웃음집이 흔들흔들 하던 어느날, 그녀의 부모들이 나를 보겠다는것이였다.
상고머리를 하고 코수염을 기른 그녀의 아버지 몸에서는 년장자다운 기풍이 물씬물씬 풍겨오있었다. 나는 선생님앞에 앉은 소학생마냥 얌전히 앉아서 그녀 아버지의 판결을 기다리고있었다. 승낙일가 아니면 퇴짜일가? 이것저것 두루 묻고난 그녀 아버지는 내 어깨를 툭 치였다. 합격이란다. 덩치는 작아도 속은 땡땡 여물었다는것이였다.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넓쩍 엎드려 절을 하고 미래 장인과 더불어 술잔을 들기시작했다. 한잔, 두잔 술이 들어가니 두볼이 붉어지면서 말도 많아졌다. 누군가 로임이 얼마인가고 묻자 나는 엉결에 그대로 이실직고하였다. 순간 미래 장인의 얼굴이 푸들푸들 무섭게 떨리였다. 분명 그 얼굴은 내게 죄를 묻고있었다. 너, 이놈. 감히 나를 얼리다니? 제 입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주제에 내 딸을 데려가겠다고? 흥, 어림도 없어!
나는 뒤늦게 실언한 자신을 발견하고 입술을 잡아뜯었다. 못난 놈은 시키는 서방질도 못한다더니 이럴변이라구야. 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였다. 에잇, 될대로 되라지…
그날 나는 어떻게 그 집을 나섰는지 모른다. 며칠후 나와 만난 그녀는 아버지의 뜻을 전했다. 우리가 사귀는것을 동의하되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딸과 함께 장사를 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나는 그만 진퇴량난에 빠졌다. 그녀도 놓치고싶지 않았고 직장도 잃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동안 머리를 잡아뜯던끝에 나는 결국 그녀를 포기하고 직장을 선택하였다. 사실 그때 나에게는 직장을 포기할만한 용기가 부족했다. 국영직장은 든든한 철밥통이 아닌가?
그때 고분고분 그 결정을 받아들였으면 아마 지금쯤은 처가덕에 부자가 되였으련만 역시 역지못한 놈은 별수 없는가본다.
나는 그녀가 야속스러웠다. 아니, 돈 없고 무능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돈이란 무엇이기에 순결한 사랑에서마저 상처를 입어야 하는지? 가슴이 아팠다. 저도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돈앞에 스러진 량심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슴이 침침한감이 나더니 때때로 왼쪽가슴도 띠끔띠끔 아파났다. 꼭 무슨 병에 걸린듯하였다. 그래서 부대병원을 찾아가서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간도 위도 담도 모두 정상이였다. 그러면 심장밖에 더 있겠는가? 부랴부랴 심전도검사를 해봣더니 그것 역시 정상이였다.
그것 참, 야단이였다. 꼭 의난병에 걸린것임에 틀림없었다. 의난병에는 명의를 찾아야 병도 진단해낼수 있고 치료도 가능할텐데? 며칠동안 수심에 잠겨있던 내게 그 어떤 희망이 반짝 생겼다. 어느 한 매체에서 모 의사가 의난병에 명의라고 홍보한 글을 보았던것이다. 글에서 그 의사는 여느 의사와 달리 독특한 의술로 의난병을 치료한다고 그럴듯이 소개되여있었다.
나는 물에 빠진 놈 지프래기라도 잡듯 그 어떤 희망을 느끼며 핸드폰을 꾹꾹 눌러 의사와 련계를 달고 찾아갓다. 이 말 저 말 물어도 보고 맥도 집어보던 그는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서 한개 치료단계는 일주일인데 1,200원이라고 하였다.
심장이면 인체의 발동기이다. 그 발동기에 고장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직 너무도 할 일이 많은데 벌써부터 염라대왕의 부름을 받다니, 이거야 어디 될 말인가?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치료비가 얼마든지 따지지 않고 치료받겠노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헌데 점적주사를 맞으며 볼라니 여느 환자를 물론하고 그 점적주사액 색갈이 천편일률로 똑같았고 먹는 약 역시 똑같았다. 미심쩍은 생각이 휙 머리를 스치고 지나서 나는 의사와 따졌다. 그랬더니 의사는 약물의 색갈은 같아도 내용물은 다르니 안심하고 치료하라면서 내 어깨를 툭툭 치는것이였다. 그 인자한 손놀림에 감격을 금치못하며 일주일간 치료를 받았으나 그 상이 장상, 오히려 아픔은 점점 더해갔다. 헌데 이건 뭐 호전반응이여서 두개 단계의 치료를 더 받아야 된다나. 아니, 그럴수 없어. 그래도 큰 병원을 찾아가보자! 나는 부랴부랴 큰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 위내시경검사를 하라기에 검사를 했더니 위벽에 염증이 생긴거지 그 무슨 심장병이 아니란다. 후-살았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던 나는 급기야 감전된듯 부르르 전신을 떨었다.
또 그 돈이였다. 죽는 사람을 구하고 상한 사람을 부축하는게 의사의 도덕이 아닐가? 아무리 재간껏 벌라는 세월이지만 천사라는 그 이름까지 먹칠하며 꼭 그렇게 돈을 벌어야 할가? 이거, 해도 해도 너무 한게 아닌가?
돈앞에 스러진 인정
따르릉, 따르릉…전화벨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경만이였다. 친구 k군의 아버지 3년제사이니 함께 가자는것이였다. 아차, 이 정신 좀 봐. 나는 잊음이 헤픈 자신을 탓하며 친구와 함께 k군의 집을 찾아갔다.
k군의 집은 사람들로 벅적거렸으나 아직 제사식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있었다. 나는 친구와 트럼프장을 번지며 시간을 기다렸다. 갑자기 남쪽 침실로부터 우당탕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k군의삼촌과 사촌형이 뿔난 황소처럼 두눈을 뚝 부릅뜨고 치고박고 하잖겠는가. 온 방안에 가득 널려진 마작쪽들, 거멓게 퉁퉁 부어오른 삼촌의 눈언저리, 벌건 피가 흐르는 사촌형의 코…한분은 50을 넘겼고 다른 한분은 50에 가까운 사이, 누가 옳고 그름을 말할수 없는 그들, 때와장소마저 가리지 않고 마구 날뛰는 몰상식한 그들에게 시비가 어디 있으랴?
얼마후에야 알았지만 k군의 사촌형이 한국에서 몇년간 돈벌이 하고 돌아왔는데 글세 그는 돈자랑을 하면서도 못사는 삼촌이라고 찾아뵙지도 않고있었다. 돈이 좀 있노라고 코대가 잔뜩 높아졌던것이다. 아마 그것이 불씨가 되여 마작판이 깨지고 전투가 벌어졌던것이다.
“어이구, 없이 사니 어린 놈에게서까지 괄시를 받는구나. 그래 그 개도 안먹는 돈을 끌어안고 콱 잘살아라, 잘살아!”
제 가슴 툭툭 치며 눈물코물 줴짜는 삼촌이다.
“쳇, 그 소리 그만하오. 누가 뭐 벌지 말랍데? 그래도 돈이 아버지고 엄마요!”
잘못했노라고 머리를 조아리면 그 전투도 진작 끝났으련만 발정기에 들어선 수탉처럼 조금도 지지 않고 덤벼드는 조카다.
“뭐, 어쩌구 어째?”
“어째? 어째…”
또다시 맞붙는 그들, 피장파장, 그 삼촌에 그 조카였으니 뭐라고 말할가. 한심두 하지.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르다니, 후-이놈의 돈싸움이 언제쯤 끝날는지?
돈이란 이런것이다. 하지만 없으면 안되는것 역시 돈이니 그것 참, 모순이다. 문제는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는가에 달렸다. 목적 있게 벌고 유용하게 쓴다면 역시 값진것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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