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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제가치국평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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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댓글 0건 조회 940회 작성일 09-03-3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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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제가치국평천하, 거창한 제목에 움찔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내 어릴 적 우리 동네 어른들은 죄다 이걸 강조하셨다. 아버지 역시 그런 분들 가운데 하나였다.
 
하루종일, 아니 한 해 내내 지루할 게 뻔한 아버지는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만큼 기쁘셨을 게다. 이 말을 읊조리면 들어 줄 사람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되니 말이다.
 
 그 둘이 바로 삼촌과 나다. 우리 시대 가부장의 마지막 전형인 아버지가 한 해 내내 권위를 내세울 대상이란 우리집 발발이 하나뿐이었다. 어머니야 귓등으로 흘려들으실 테니 말이다.
 
어느 해 명절, 삼촌과 나는 일찌감치 귀향해 명절맞이를 했고 아버지는 흐뭇해했다.
 
아버지는 나를 당신의 호미나 괭이쯤으로 여겼다. 턱 끝으로 저기, 이러면 나는 당신 턱 끝이 가리키는 곳의 잡풀을 뽑았다.
 
당신이야 손가락 하나 까딱 않으면서도 조상님이 찾아오실 테니 집 안팎을 정갈히 해야 하느니라, 라고 하면 끝이었다. 연휴 첫날 새벽부터 아버지는 삼촌과 나를 앞세우고 사냥을 나갔다.
 
우리는 논두렁에 포복해서 참새떼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먼저 삼촌이 한 발을 날렸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삼촌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렇게 골골하니까 참새가 알아듣고 달아나는 거다. 내 차례가 되었다. 역시나 참새가 도망갔다.
 
 아버지는 되우 내 뒤통수를 치며 껄껄댔다. 담배나 피워대니까 가래 끓는 소리를 내서 참새가 도망가는 거 아니냐. 아버지는 싱글벙글이었다. 다음날, 아버지는 파출소에 불려갔다.
 
불법무기소지죄로 벌금 백만원을 선고받은 아버지는 풀이 죽기는커녕,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휘황찬란하게 써놓고는 껄껄댔다.
 
아버지란 참 힘든 족속이다. 위세 한 번 부리느라 한 해 내내 허리띠를 싸매고 모아도 모자랄 거금을 날릴 수도 있는 족속들이니 말이다. 가부장, 좋은 말은 아니지만, 어쩐지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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