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인가, ‘공공의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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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공의 적 댓글 0건 조회 862회 작성일 09-04-07 15:56본문
봄이 농익은 산천은 아름다운 꽃향기로 가득한데 나라 안에선 부패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있다. 땀 흘려 아름답게 도전하는 스포츠맨들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받다가도 서로 싸움질만하는 정치권의 작태를 보면 절망의 벽을 확인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국민들이 공직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할 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투명성 공평성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이다. 늘 선거에 나서거나 새로운 고위직책을 맡게 될 때 제일 많이 듣게 되는 단어는 봉사라는 말이다. “본인의 모든 열과 성을 다하여 국민을 위해 봉사 하겠다.” “내 인생에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알고 혼신의 힘을 다해 봉사하겠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봉사라는 단어를 애초부터 써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적잖은 봉급을 받고 직책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으며 때로는 향응과 성상납까지 받기도 하니 도저히 봉사라 말할 수 없다. 금배지를 단 의원님들과 고위관료들이 ‘억’ ‘억’하는 돈을 받는 일이 일상으로 펼쳐지고 있으니 이 좋은 봄날에 악취는 그 도를 더해 가고 있다. 어찌 언론에 보도된 것만이 전부이겠는가? 국민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코를 찌르는 부패의 악취
돈과 술과 성상납이라는 부패의 종합세트는 권력의 오용과 남용이라는 악성바이러스에 의해서 우리 사회 깊숙히 침투해 있다. 어쩌면 북쪽의 미사일이나 금융위기보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때로는 붕괴시킬 수도 있는 ‘공공의 적’이다.
사실 미국발 경제위기의 원인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모두들 지적하고 있다. 아무리 전문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투명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면 그 폐해는 전문성에 비례해서 더욱 커지게 된다.
더더구나 권력의 핵심인 상층부에서 부패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높은 산의 정점에서 펼쳐지는 방위각만큼 멀리, 넓게, 깊게 우리 사회를 파괴하게 된다. 이러한 부패의 현상은 중앙정치권이나 고위직에 국한되지 않고 일부 재벌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불법로비는 물론 고속철도의 부실공사에까지 펼쳐져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공사와 인사를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예산까지 중간에서 가로채는 참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일부 대기업 노조의 간부들은 거액의 도박판까지 벌일 정도로 우리 사회 전 분야에 부패가 만연해 있는 심각한 사회적 중병을 앓고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민이 관을 신뢰하지 않으면 민심은 떠나고 그 사회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잘못 작동되거나 멈출 수밖에 없다. 진정한 권력의 힘은 신뢰 속에서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을 때 공의롭게 발휘된다.
겉과 속이 다른 일부 정치인, 낮과 밤이 다른 일부 언론인들이 활보하는 현상은 군부독재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하지 않지만 우리 몸이 질병에 노출되어 내과적 혹은 외과적 치료를 하듯이 권력형 비리나 부패가 발생했을 때 먼저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검찰과 경찰이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권력이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편파성을 띠게 되면 사건에 대한 분노를 넘어 민심이 떠나는 새로운 상황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도 오늘날까지 산전수전 유격전까지 겪어본 민주공화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명박정부의 출현은 민주화는 이만하면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는 국민들의 판단 때문이었다. 이제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기대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주었던 것이다. 현 경제위기가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의 연장선에 있음을 부정하진 않지만 단지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면피될 수 없는 여러가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도덕성·전문성 갖춘 사람으로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있는 인적 시스템의 구축과 국민을 위해서 한없이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 정치와 행정의 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아울러 권력 내부에서부터 인맥과 파벌로 채워진 인적시스템을 도덕성과 헌신성을 기본으로 전문성을 담보한 시스템으로 재구축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위기 극복이 최대의 화두이다. 그러나 도덕적 윤리를 세우지 않고서는 결코 위기극복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부패의 실상은 언론의 밥상에 차려진 가십성 메뉴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종속 변수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공직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할 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투명성 공평성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이다. 늘 선거에 나서거나 새로운 고위직책을 맡게 될 때 제일 많이 듣게 되는 단어는 봉사라는 말이다. “본인의 모든 열과 성을 다하여 국민을 위해 봉사 하겠다.” “내 인생에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알고 혼신의 힘을 다해 봉사하겠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봉사라는 단어를 애초부터 써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적잖은 봉급을 받고 직책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으며 때로는 향응과 성상납까지 받기도 하니 도저히 봉사라 말할 수 없다. 금배지를 단 의원님들과 고위관료들이 ‘억’ ‘억’하는 돈을 받는 일이 일상으로 펼쳐지고 있으니 이 좋은 봄날에 악취는 그 도를 더해 가고 있다. 어찌 언론에 보도된 것만이 전부이겠는가? 국민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코를 찌르는 부패의 악취
돈과 술과 성상납이라는 부패의 종합세트는 권력의 오용과 남용이라는 악성바이러스에 의해서 우리 사회 깊숙히 침투해 있다. 어쩌면 북쪽의 미사일이나 금융위기보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때로는 붕괴시킬 수도 있는 ‘공공의 적’이다.
사실 미국발 경제위기의 원인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모두들 지적하고 있다. 아무리 전문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투명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면 그 폐해는 전문성에 비례해서 더욱 커지게 된다.
더더구나 권력의 핵심인 상층부에서 부패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높은 산의 정점에서 펼쳐지는 방위각만큼 멀리, 넓게, 깊게 우리 사회를 파괴하게 된다. 이러한 부패의 현상은 중앙정치권이나 고위직에 국한되지 않고 일부 재벌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불법로비는 물론 고속철도의 부실공사에까지 펼쳐져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공사와 인사를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예산까지 중간에서 가로채는 참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일부 대기업 노조의 간부들은 거액의 도박판까지 벌일 정도로 우리 사회 전 분야에 부패가 만연해 있는 심각한 사회적 중병을 앓고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민이 관을 신뢰하지 않으면 민심은 떠나고 그 사회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잘못 작동되거나 멈출 수밖에 없다. 진정한 권력의 힘은 신뢰 속에서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을 때 공의롭게 발휘된다.
겉과 속이 다른 일부 정치인, 낮과 밤이 다른 일부 언론인들이 활보하는 현상은 군부독재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하지 않지만 우리 몸이 질병에 노출되어 내과적 혹은 외과적 치료를 하듯이 권력형 비리나 부패가 발생했을 때 먼저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검찰과 경찰이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권력이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편파성을 띠게 되면 사건에 대한 분노를 넘어 민심이 떠나는 새로운 상황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도 오늘날까지 산전수전 유격전까지 겪어본 민주공화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명박정부의 출현은 민주화는 이만하면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는 국민들의 판단 때문이었다. 이제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기대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주었던 것이다. 현 경제위기가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의 연장선에 있음을 부정하진 않지만 단지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면피될 수 없는 여러가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도덕성·전문성 갖춘 사람으로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있는 인적 시스템의 구축과 국민을 위해서 한없이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 정치와 행정의 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아울러 권력 내부에서부터 인맥과 파벌로 채워진 인적시스템을 도덕성과 헌신성을 기본으로 전문성을 담보한 시스템으로 재구축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위기 극복이 최대의 화두이다. 그러나 도덕적 윤리를 세우지 않고서는 결코 위기극복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부패의 실상은 언론의 밥상에 차려진 가십성 메뉴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종속 변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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