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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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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농부의 삶 댓글 0건 조회 700회 작성일 09-03-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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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가 관객 200만명을 돌파한 뒤에야 영화를 보았다. <워낭소리>에 대한 격찬과 아쉬움 등 다양한 평가는 물론, 독립영화가 처한 어려움에 대한 호소, 지나친 상업화가 아니냐는 논란, 영화의 배경이 된 경북 봉화를 관광지로 만들려는 움직임과 그에 대한 반발, 그런 끝에 이충렬 감독의 불편함이 담긴 인터뷰까지 나온 다음이었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이미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태평양을 건너 로스앤젤레스 교민들에게까지 개봉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이유는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흥행 열기가 부쩍 달아오른 뒤에는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서 애써 외면했다. 그럼에도 뒷북을 친 이유는 기자라는 직업으로 살면서 남들이 다 아는 것조차 모르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자의식 때문이었다.

<워낭소리>를 보았을 때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소설 한 편이 떠올랐다. 존 버거(1926~ )의 3부작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원제 Triology:Into Their Labours)이다. 이 책은 1994년 민음사에서 나왔다가 지금은 절판됐다. 영국 출신의 미술평론가이자 소설가, 사회비평가인 작가는 프랑스 국경 알프스산맥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세계적인 저작을 내놓고 있다. 건초를 말리는 계절이면 들에서 일을 하느라 전화조차 받을 수 없을 만큼 진지한(전원풍이 아닌!) 농부 작가다.

땅이 있기에 일 놓지않는 농부

버거의 책은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쓰나미가 몰려온 유럽 농촌사회의 피폐해진 풍경을 그리고 있다. 알프스 산록까지 덮친 자본으로 인해 노동에서, 자신의 삶에서 소외된 농민들이 겪는 혼란과 절망, 그리고 저항과 희망 찾기는 소설을 관통하는 큰 주제다. 그 중에서도 ‘우주 비행사의 시대’라는 단편에 나오는 마리우스라는 노인은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와 비슷하다.

“마리우스는 남들이 뭐라고 하는가에 대해 별로 마음을 안 쓰는 성격이었다. 그가 일생동안 해온 일들은 하나같이 그가 그 일들 자체를 중시하여 해낸 일들이었다. 그의 성취는 그가 가진 삼십 마리의 소만이 아니었다. 그의 의지 역시 그의 업적이고 성취였던 것이다. 늙고 홀로 된 그는 매일같이 같은 물음을 자신에게 묻고 있으리라: 무엇 때문에 계속 일을 하는가?”

<워낭소리>의 여든살 된 할아버지는 마흔살 소와 함께 엉금엉금 기면서 밭을 간다. 그의 부인은 소처럼 일만 한다며, 잡초가 멋대로 자라는데도 농약을 치지 않는다며 지청구를 하지만(할머니가 얼마간 의도적으로 할아버지의 대척점에 놓인 것은 영화 내내 불편한 지점이었다) 할아버지는 들은 척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침을 잘못 맞아서 오그라졌다는 그의 다리는 소의 다리, 지게 다리와 비슷하다. 일을 그쳐도 좋으련만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파도, 두 다리로 서지 못해도 일을 놓지 않는다.

버거는 소설의 첫 권 뒤에 ‘역사적 결언’이라는 제목의 해설을 썼다. 여기서 그는 ‘사라져가는 농부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묻는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삶이 끊임없이 미래의 확장을 예견하면서 (소비주의의 예처럼) 죽음마저 무시하는 진보의 문화인데 비해 농촌의 삶은 미래를 생존을 위한 반복된 행위들의 연속으로 바라보는 잔존의 문화라고 본다. 따라서 농부의 보수주의는 자연적, 사회적으로 끝없는 변화에 의해 위협받아온 여러 삶과 세대들에 의해 보존된 의미의 저장고와 같다는 것이다.

반자본주의의 서사 ‘워낭소리’

할아버지가 지닌 품격은 독립자영농의 삶과 정신에서 나온다. 그것은 땅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농약도 치지 않고 기계도 동원하지 않은 채 일군 땅에서는 아홉 남매를 대학까지 보냈고 여전히 자식들이 먹을 알곡이 나온다. 그런 놀라움은 소가 죽던 날 밤, 그 소가 할아버지와 함께 해놓은 어마어마한 나뭇더미를 볼 때도 느껴진다.

<워낭소리>의 울림은 깊고도 넓다. 이 이야기가 특별해서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개봉된 시점이 무한히 확장되던 자본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도시가 제공하는 안온한 삶은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자각의 촉수를 건드린 것이다. 요즘 어머니와 가족의 보수적 서사가 이 시대를 대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워낭소리>는 더욱 근본적인 땅의 서사, 반자본주의의 서사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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