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전산망 곳곳에 '눈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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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눈먼 돈' 댓글 0건 조회 1,480회 작성일 09-03-12 08:29본문
복지 전산망 곳곳에 '눈먼 돈'
잇단 복지예산 횡령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동사무소 직원에 전권 상급기관 확인기능 봉쇄
감사 소홀한 것도 문제
전남 해남군 해남읍사무소에서 저소득층에 복지보조금을 지급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7급 공무원 장모(여·40)씨가 1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되는 등 복지예산 횡령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양천구청에서 3년여 동안 장애인 복지수당 26억여원을 빼돌린 8급 공무원 안모(38)씨, 역시 장애인수당을 1억1700여만원 횡령한 서울 용산구청 8급 공무원 송모(여·42)씨 사건 등에 이어 올 들어 적발된 복지 담당 공무원 횡령사건이 4건이나 된다.
이렇게 자주 사건이 터진다는 말은 복지보조금 관리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짧게는 1년여, 길게는 3년 넘게 횡령하는 동안 주변에선 왜 이를 알지 못했을까.
◆전산망 열람은 못하고…
복지보조금 지급·관리시스템은 담당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횡령할 수 있을 만큼 허점이 많다. 복지 담당 직원 외에는 해당 지역에서 '누가, 어떤 수당을, 얼마만큼 받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국 각 구청 복지 담당 직원은 '새올행정시스템(이하 새올)'을 통해 보조금 수혜자의 명단과 지급액을 파악한다. 새올은 행정·복지 서비스를 총괄 관리하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2002년에 만든 전산망이다.
그러나 구청의 예산 집행을 감독하는 시(市)는 새올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상급 자치단체가 지역 구청을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이 무력화된 것이다. 서울시청의 한 복지 담당 관계자는 "안내 책자에서 그림만 봤지 실제로 새올 전산망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필숙 서울시청 장애인복지과장은 "시청이 새올을 열람하게 해 달라고 여러 차례 행정안전부에 건의했지만 행안부는 '개인 정보가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면 그만큼 정보 유출사고 위험이 따른다'며 거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청의 복지 담당 직원들도 단지 전산망을 '조회'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전산망에 복지 서비스 수혜자 명단을 입력·삭제하는 권한은 동사무소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등 읍·면·동 단위의 사회복지 직원들이 갖고 있다. 이들이 허위 기재를 하더라도 상부 기관에선 사실 여부를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다른 통장으로 가로챌 수도 있는데…
복지보조금의 은행 계좌 이체방식에도 허점이 있다. 구청 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돈을 받는 사람 이름과 계좌번호가 적힌 복지보조금명세서를 은행에 넘기면 은행은 명세서에 기재된 계좌에 일괄적으로 돈을 입금한다.
이때 명세서에 나온 수혜자 이름과 통장 소유주 이름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은행은 문제 삼지 않는다. 이는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 통장을 만들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회복지 담당 직원이 대신 통장을 만들고, 수혜자에게 전달해 주는 관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남 공무원 장씨는 이 방식으로 공금을 횡령했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회 김정길 회장은 "수혜자들의 편의를 위한 관행이 악용될 수 있다"며 "이런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횡령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는 제대로 안 되고…
구조적인 허점이 있는 데다 감사조차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몇몇 공무원들은 주변을 속이며 횡령을 계속할 수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구청 복지 급여 담당 직원들이 복지보조금 지급 대상과 금액을 정리한 '계좌입금의뢰서'를 만들면 상부에서 2~3단계 결재를 받고 재무과로 넘겨 지급이 결정되게 돼 있다. 하지만 결재 단계에서 자체 감사가 철저히 이뤄지는 일은 별로 없다. 양천구청 안씨 사건도 감사를 해야 하는 상급 직원이 안씨를 믿고 감사를 소홀히 해서 생긴 일이었다.
또 구청이나 동사무소의 복지 담당 공무원이 보조금 수령자 명단에서 수급자의 장애 등급을 올리는 등 조작을 한다 해도 대도시의 경우 관할 구청당 약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일일이 면접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사실상 어렵다. 공금을 횡령한 안씨나 송씨도 수혜자들에게 필요한 돈을 과다계상해 복지보조금을 부풀렸지만 집중 감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복지예산을 총괄하는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렇게 각 시·군·구별로 시행되는 예산 집행에 대해 아무런 손을 쓰지 못했다. "지자체를 감사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강도태 사회정책과장)이다.
더 큰 문제는 복지부는 읍·면·동별로 각종 복지보조금을 받는 사람들 수조차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6월 복지부의 복지 대상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기초보장 대상자는 147만8607명, 장애인은 222만9196명 등으로 집계돼 있지만 A라는 사람이 기초보장 대상자이면서 장애인이어서 중복 혜택을 받는 경우는 현황 자료에 반영되지 않는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구인회 교수는 "현재의 복지 전산망은 급여별로 수급자가 분산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누구에게 어떤 급여가 어떻게 지급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전산망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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