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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담당관님! 대체 왜이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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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산불났다 댓글 0건 조회 1,976회 작성일 09-01-2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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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해직의 고통을 넘어 복직의 기쁨을 맛본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 주 수요일(21일) 저는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평소 자주 봐 오던 직원이 멋쩍게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기에 반갑게 맞았습니다.


   사실 저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3층 외진 곳에 위치한지라 찾기가 어려운 곳이고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조용한 곳입니다.


   감사담당관의 거짓말


   사람도 귀한 곳에 이렇게 찾아오니 저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고 자리에 앉기를 권했습니다.

   그때 그 직원의 옆구리에 결재판이 끼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의아해 하면서 “나에게 결재나 협조를 구 할 것이 없을 텐데 왜 왔지?” 하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래, 좀 앉으세요?”

   그 직원이 옆자리에 앉으면서 “계장님!” 하고는 결재판을 펴는데 순간 온몸의 피가 멈춰버림을 느꼈습니다.


   그 결재판 안에는 “징계의결 요구사실 통보” 라는 공문이 들어 있었고 그때서야 이 직원이 감사부서 조사담당에 근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그게 아니고 전해주고 확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하면서 우물쭈물 힘겹게 말을  뱉었습니다.


   저로서는 너무나 황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불편한 심경을 그 직원에게 쏟아내었습니다.

   듣고 있던 직원은 “계장님, 다 압니다. 그런데 전들 어쩌겠습니까? 심부름만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문서를 보니 정말 조사담당 황송진, 감사담당관 최진국의 이름만 보였고 결재일은 1월 19일이었으며 말미에 “비공개‘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죽음에서 살아온 자에게 인사보복이 웬 말?  


   그리고 뒷장을 넘기니 “공무원 징계의결 요구서”가 붙어있었고 중징계 요구한다는 내용과 1월 13일 이란 날짜와 경상남도 인사위원회 귀하라는 문구가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그 뒤에는 “08.12.31 행정관리국 행정과에 발령받은 자로서...” 시작하여  당초 파면처분을 받았던 징계사유를 그대로 옮겨 놓고 있었습니다.


   저가 왜 구질하게 이런 글을 쓰는지 지금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리 동료들은 임종만이 짤렸던 사유를 어렴풋이나마 모두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김태호 도지사가 당선되자마자 행한 낙하산 인사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낙하산 인사는 도덕적 타락을 넘어 공직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이자 수많은 공무원들의 의욕을 말살하는 폭거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우리 조직의 발전과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해소를 위해 힘써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김태호 지사의 낙하산 인사문제에도 발벗고 나서게 되었으며 이것이 도지사 눈에 가시가 되어 그가 가진 인사권이란 불법 개조된 고성능 무기로 마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포격을 가하듯 보복성 공격을 받고 그만 공직사회에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전장에 승자만 있고, 패자는 없었다     


   그 죽음은 개죽음이었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동지이고 동료로서, 죽음을 무릅쓴 힘겨운 투쟁에 같이 하는 이도, 격려와 용기를 주는 이도 있어, 그것이 전투식량이 되어 즐겁게 적극적으로 여러분이 그토록 바라던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맨 앞자리에서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전장에는 승자만 있고 패자는 없었습니다.


   외로운 죽음의 나날이었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생명 부지를 위해서 적군을 도우고 있는가 하면 정말 순수 양민들(동료)은 본의 아니게 적군의 포로가 되어 입을 다문 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겨우 유지하는 공무원노조는 항복하는 조건으로 사무실을 되돌려 받아 허울은 갖추었지만 그 전의 노조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무너지고 깨어지기 위해서 노조를 하였던 것은 아닌데...

   공무원노동조합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혼돈이 올 지경입니다.


   저가 외롭고 마음 아팠던 것은 노조에서 또 우리 직원들이 저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조가 무력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조는 조직을 정상화하여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패배의 원인을 찾아 동지의 죽음을 부른 도지사의 권력남용과 비행을 막는 것이 최우선사업으로 배치되는 것이 순리일 것입니다.


   그 연속선상에서 우리시를 비롯한 기초자치단체에 낙하산이 착지할 수 없도록 함과 노조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우리 직원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눅들지 않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토대이자 저의 희생에 대한 가치이고 보답이라 생각합니다.


   고질적인 병폐, 낙하산 인사


   지난 날 경상남도의 낙하산인사는 많은 폐해를 낳았습니다. 공무원노조는 이의 저지에 온 힘을 다하였으나 저를 포함 도내 8명이 공직에서 배제된 사건은, 낙하산이 신바람타고 거침없이 자유롭게 앉고 싶은 곳 어디든 착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준 듯합니다.


   우선 공직사회 내부적으로 매년 3~4차례씩 도는 인사잔치로 축제의 연속이지만 시군은 인사적체로 일할 의욕마저 상실하고 있습니다. 최근 도에는 법정 승진소요연수가 안되어 승진을 못한다는 소문까지 들립니다.


   지역사회는 도에서 시군에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낙하산 때문에 정신이 없고 이 낙하산은 시군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자리로 인식되어 업무파악이 제대로 될 즈음 떠나니, 시군에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에 그 사람 비싼 월급에 헛돈만 낭비하는 꼴이 되곤 합니다.


   낙하산인사가 처음 수면 위로 부상된 것은  2004년 6월 5일 보궐선거로 도지사 자리를 획득한 김태호 지사가 경남도 첫 인사에서 당시 공무원노조 탄압의 장본인이자 5.15일 경남도 인사를 주도하며 자기 맘대로 시군에 낙하산을 보내어 갈등을 유발시켰던 오원석 당시 도 총무국장을 기획실장에 승진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오원석은 김태호 도지사가 취임 전 이미 도지사권한대형인 행정부지사와 서면합의로 좌천인사가 결정되어 있던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김태호 도지사는 잘못된 인사임을 시인하고 7. 3 “부단체장을 포함 교류 시에는 당사자, 기관장, 직원대표의 동의를 거친다”는 요지의 『도와 시.군 간 인사교류협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낙사산인사 저지에 김지사는 보복인사로 맞서


   그리고 그해 8월 경남도가 공무원노조와 ‘도와 시군 간 인사교류협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행자부에서 재정적 불이익이니 하면서 김태호지사를 압박 할 시점 ‘단체교섭촉구 기자회견’을 하였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전원을 사법당국고발 및 중징계 요구를 하였던 것입니다.


   도의 중징계요구를 받은 우리시 감사담당관실에서는 즉각 이 사실을 저에게 통보하였고 해안을 모색해 보자 하였습니다.


   저는 부당한 징계요구에 응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밖으로는 김태호지사를 압박하는 모션을 취했습니다. 그때 감사담당관은 현재의 전용석 행정관리국장님이셨고 조사계장은 채홍삼 양덕2동장님이었습니다.


   타 시군과 공조하며 도의 압력에 버티다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조사계장은 저에게 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중징계로 요구되었으나 경징계로 올려보겠다고, 그러니 조서작성된 것 읽어보고 불리하거나 수정사항 있으면 고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입장에 서서 ‘상전’인 도를 상대로 대변하고 저항해 준 것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상호 합의하에 조서 확인 후 날인하여 올리도록 동의하였습니다.


   동료를 보호하고자 애쓰던 당시 감사관의 노력


   당시 저는 승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도로부터 승진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경징계를 약속 받았고 그래서 동의하여 징계요구서를 올렸는데 약속과는 다르게 감봉2월이 떨어졌던 겁니다.


   우리시 감사담당관실도 당황했고 저 또한 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바로 당시 도 인사위원장이었던 김채용 행정부지사를 만나 항의를 했고 행정부지사는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며 위로하면서 바로 소청을 요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소청제도가 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시의 인사는 조금씩 미루어졌고 소청서류를 작성하여 도에 제출한 후 소청일정을 빨리 잡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전용석 감사담당관님도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며 소청위원들의 명단을 확보하여 직접 뛰어다니며 자존심도 버리고는 소청위원들께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고도 도소청위원회에서 감봉 1월 처분을 받으므로 승진 결격사유가 되어 2005년 정기인사에서 6급 승진자리를 후배에게 넘겨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의 고마움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전용석 국장님! 채홍삼 동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가 해직된 후 현 감사실의 작태를 보고 뼈저리게 그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기억이 희미하겠지만 2001년 오너의 잘못된 첫인사로 당시 직협에서 3빅(인사라인 국장,과장,계장)의 문책인사를 요구했고, 전용석 국장님께서는 이에 홀로 책임을 지겠다며 총무과장직을 벗으시고 승진에서 밀리는 등 오랜 세월 동안 변방으로 다니셨지만 만나면 반갑게 대해주시니 정말 감사했고 늘 미안했습니다.


   김지사의 부당한 인사지시에 기계처럼 움직이는 새 감사실


   그런데 2년 전 창원 9.9대회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또다시 김지사는 ‘낙하산 인사에 따른 기자회견’을 수차 했다는 이유로 중징계 요구를 했고 당시 우리시 감사담당관실에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임종만을 범법자로 몰아 중징계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로 감사담당관이 된 정충실과 황송진 조사계장은 동료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전임자 분들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도의 불법지시에 기계처럼 움직였습니다.


   당시 2006년 9.9대회 이후 경남의 공무원노조는 노노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던 시기였고 임종만은 이에 회의를 느껴 경남본부의 부본부장직도 벗어던진 상태에서 노조활동을 중단하고, 푸른도시 조성사업소에서 주무계장으로 열심히 일에 묻혀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조사계에서 도 조사관의 조사를 받으라는 공문을 비밀리에 저에게만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불쾌했지만 정해진 날짜에 조사실로 갔습니다.

   ‘왜, 불렀습니까? 바쁜 사람을...’

   도 조사관은 ‘중징계가 요구되어 조사차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뭔 일인지 모르지만 도에서 무슨 자격으로 저에 대하여 조사를 합니까? 마산시에도 조사계가 있는데... 이 분들은 뭐 하라고요? ’

   도 조사관은‘..........’ 어물어물 대답을 못하였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김태호가 벌줄 대상자를 찍어서 각본 다 만들어 놓고는 그기에 맞춰 달라고요? 조사관님! 오신다고 고생하였습니다만 저는 그기에 응할 수 없습니다. 일하다가 왔기 때문에 바빠서... 그럼...’ 인사를 하고는 조사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제가 이렇게 뻣뻣하게 나갔던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시 감사담당관실의 작태가 너무나 괘씸해서였습니다.

   당사자도 모르게 소리 소문없이 도의 요구에 부응하여 기계적으로 중징계를 요구해 같은 동료이자 식구를 적진에 몰아넣어 쳐 죽이는 고약한 역적의 짓거리를 했던 것입니다.

   정충실과 황송진이 말입니다.


   우리시에 투하된 낙하산들, 그리고 저지투쟁


   기왕 말이 나왔으니 계속하겠습니다.

   저가 노조에 몸담고 있던 시절 우리시에서 낙하산인사로 크게 문제시되고 철회투쟁을 전개했던 눈에 띄는 사건은 2004년 1월10일 김석기 국장건, 2006년 1월 18일 박갑도 부시장건, 2006년 2월 13일 김동태 국장 건으로 압축됩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 공무원노조의 투쟁으로 그 전에 비해 현실적으로 낙하산이 많이 줄었고 또 이와 관련, 4급 간부 중 우리시에서 도로 전입 간 분들도 몇 분 있습니다.


   이것은 마산시가 고질적으로 인사적체가 심한 탓도 있었지만 노조가 이를 이유로 낙하산인사를 집요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던 성과임에 틀림없습니다.


   결국 낙하산저지투쟁은 자치인사권을 확보하는 것으로써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직원들이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지역주민들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당시 김태호 지사를 비롯한 경남도의 핫라인인 행정관리부서 관리자들에게 임종만은 눈에 가시처럼 싫었을 것입니다. 집요하게 낙하산 인사를 문제 삼고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그들에겐 기득권과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후 경남도는  마산시에 낙하산을 보내는 것에 신중을 기하거나 포기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마산에 낙하산을 투하하라!


   자, 이제 임종만에게 내려졌던 사형선고의 의미가 명백해지지 않습니까?


   도청입장에서는 그 방해물을 제거해 도청직원들의 바램인 낙하산을 많이 양산할 수 있는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나쁜 저의가 바닥에 깔려 있었을 겁니다. 그 방해물로 임종만을 지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낙하산인사 저지가 주된 사유로 공직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임종만이 마산시에서 마저 죽일 놈으로 치부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직원들의 인사권을 지켜주기 위하여 전면에 나서 싸웠던 일들이 우리 직원의 손에 죽기 위함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산시 감사실이 2004년도는 마산시 소속이었고 2006년부터는 경남도청 소속이 되었습니까?

제가 이를 악물고 동료들의 인사권을 지켜주기 위하여 싸웠던 적! 김태호의 지시가 있다하여 한마디 상의도 없이 “죽일 놈이야” 하고 덥석 갔다 바치는 작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같은 조직 내에서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지요.


   오랜 법정투쟁 속에 결국 돌아왔지만…


   문득 금번 용산 철거민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많은 애도의 물결 속에 눈에 띄는 문구 하나가 가슴에 절실히 와 닿습니다. ‘살릴 수도 있었다. 진압이 아닌 구조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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