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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공무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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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선시대 댓글 2건 조회 1,862회 작성일 09-01-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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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에 출근하는 서리의 하루는 상투를 매만지고 의복을 손질한 뒤 망건과 갓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출근은 묘시(오전 5시-7시), 퇴근은 유시(오후 5시-7시)가 보통이나 해가 짧은 겨울에는 근무 시간이 8시간으로 단축되었다.
무단결근하면 곤장 10대 였고 성종때에 이르러 자주 결근하는 자는 파직시켰다.
관리들은 각종 회식이 잦았다. 사간원은 별일 없을 때는 온종일 술먹는 곳으로 소문나 있었고, 신입관리를 맞는 신참례는 혹독한 술자리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업무의 공정성을 위해 사간원과 사헌부 관원들이 함께 술 마시는 일은 금지했다.
녹봉은 일년에 네 번 광흥창에서 "녹패(지금의 공무원증)"를 보이고 직접 받아 갔다.
최고 관직인 정1품이 봄철에 받은 녹은 백미 1석, 콩12석으로 식솔과 노비들을 건사하기에 넉넉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양반집 자제들이 기를 쓰고 과거에 매달린것은 한 집안이 4대에 걸쳐 관리에 나서지 못하면 양반신분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품계는 종9품에서 시작하여 정1품까지 올라가는 데 6개월 마다 인사고과인 "도목정(지금의 소양고사)"을 실시하여
성적 불량자에게 감봉, 해직 등 불이익을 주었다.
또 인사청탁을 엄중히 금지했으며 이를 어기면 곤장 100대,
또는 3천리 유배에 처하는 엄벌이 내려졌다.
탄핵활동도 활발하여 황희정승도 사헌부에 투옥 된 자의 감형을 부탁한 일이 드러나 탄핵을 받기도 했다.
일흔이 넘으면 국법에 따라 관직에서 물러났고, 정2품 이상 고위관리를 지낸 신하가 퇴직할 뜻을 밝히면 왕은 궤(의자)와 장(지팡이) 또는 가마를 내렸다.
이 궤장에는 "의자와 기대 있어도 좋으니 왕의 곁에 좀 더 머물러 달라"는 공경의 뜻을 담고 있어 관리에게는 최고의 영예였다.
관리가 퇴임, 전근하게 되면 "해유"라는 인수인계절차에 따라 선임자가 인수할 물품을 일일이 다 기록한 뒤 실물과 대조하여 후임자의 확인을 받으면 감사를 거쳐 호조와 병조에 넘겼다.
이처럼 까다로운 행정절차가 있었기에 조선왕조가 500년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료여러분 인사가 다가옵니다
씰데없이 동료를 배반하고 양심을 팔아먹는 인사청탁은 절대로 하지말고 수신제가 하여
진인사대천명 합시다  

댓글목록

청백리님의 댓글

청백리 작성일

나 살라하고 남 싫은 일하지마라는 조선시대이야기다.
작금에는 동료모가지에  칼을 휘두르면서 살아남기를
해야하고 눈먼 오야봉 뇌물주어 진급 빨랑해야 집구석에서나 밖에서나 대우받지

미네르바님의 댓글

미네르바 작성일

바보들 아냐?
조선시대 관리들이 깨끗했다고?
탐관오리들...당파싸움...형제친척 좌천...등
각종 호란과 왜란으로 망할 뻔 했던게 조선시대 아냐?
500년 같은소리하네...
그건 몇 안되는 진정한 영웅과 민초들땜에 이어온거잖아..
모든 뜻과 길은 백성에 있는거야..
조선시대 관리들이 잘한건 별로 없다아이가..역사공부 좀 해봐..
도 공무원은 월급만 받아 쳐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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