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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비가 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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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갑자기 댓글 1건 조회 794회 작성일 08-06-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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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잦은 계절이다. 지인들과 점심 식사 후 식당을 나서니 맑던 하늘이 비를 뿌리고 있었다.
 
식당 현관에서 우리 일행은 비 내리는 상황에 대해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인물1은 핸드백에서 우산을 꺼내 펼치며 만면에 득의의 미소를 띠었고 인물2는 재빨리 우산 속으로 뛰어들며 인물1의 팔짱을 단단히 꼈다.
 
인물3은 “요 앞에서 우산 사야겠다”고 말하며 빗속으로 뛰어들 채비를 했고 인물4는 인물3을 돌아보며 “우산이 어디 있는데?”라고 물었다.
 
 인물5는 “왜 갑자기 비가 내리고 야단이야?”라고 중얼거리며 하늘을 흘겨보았고 인물6은 이마에 세로 주름을 그은 채 생각이 많은 낯빛으로 묵묵히 서 있었다.

문제적 상황 앞에서 10초나 20초 사이, 그토록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비슷한 연배,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로서 공통의 관심사로 함께 여행을 한 후 그 뒤풀이 자리를 가진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각기 다르게 표출되었던 반응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뉘는 것 같았다.
 
자기보존 본능에 충실한 반응과 자기파괴 본능에 따르는 반응. 인물1, 2, 3의 태도는 전자에 속하고 인물4, 5, 6의 반응은 후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보존 본능에 따르는 이들은 위기 상황 앞에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먼저 찾는 반면, 자기파괴 본능에 이끌리는 이들은 즉각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성향을 띤다.

이를테면 인물4는 평소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걱정이 앞서고 악성 시나리오부터 쓰는 사람일 것이다.
 
인물5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일 것이다.
 
문제 앞에서 원망할 대상을 찾고, 심할 경우 하늘이 자기를 골려주기 위해 비를 뿌린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물6은 말도 행동도 없이 서서 누군가 자신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거나,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자신을 책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보존 본능에 따른 인물1, 2, 3이 매사에 옳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 내면에도 경계해야 하는 심리적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인물1은 철저한 준비성으로 미래를 대비하며 안전한 삶을 살아가겠지만 내면의 불안감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안전이라는 틀에 갇혀 역량을 최대한 사용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물2는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생을 편안하게 살 수도 있겠지만 의존성이라는 유아적 심리 상태에 정체되어 진짜 자기 삶을 살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물3은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과 자율성으로 짐짓 유능해 보이겠지만 그 뒷면에 있는 의존성이나 강박성향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경직된 태도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갑자기 비를 만나듯, 살다보면 위기 상황이나 갈등 관계에 처하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마음의 경계나 정신의 계단 앞에 서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속으로 주문을 왼다.
‘하던 일 안 하기, 안 하던 일 해보기’. 하던 일이란 어려서부터 사용해온 유아적 생존법,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반응, 낡은 자기의 표현이다.
 
안 하던 일이란 불안감이나 분노를 자극당할까봐 방어하고 있던 영역, 실패할까봐 두려워 외면해온 삶의 영역일 것이다.
 
그런 사실을 염두에 둔 채 예전의 방법을 버리고 새로운 대응법을 찾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새로운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마음의 가장자리를 넓히고 정신의 계단을 올려 디딘다고 믿는다. 낡은 태도에 갇힌 경직성은 위험하다.
 
 경직성은 시체의 특성이라 한다. 비가 잦은 계절이다. 새로운 시도, 재미있는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댓글목록

그냥 맞고?님의 댓글

그냥 맞고? 작성일

그러면 비가와도 그냥 맞고 천천히 무게잡고 걸어가는 사람과 조금 덜 맞을려고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뛰어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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