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환경정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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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21세기 환경 댓글 0건 조회 801회 작성일 08-05-04 08:40본문
21세기에 대한 요란한 말 잔치가 현실의 변화와 아무런 관계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2000년이 21세기의 첫해라는 다분히 조급증에 걸린 사람들의 주
장을 받아들인다해도 우리는 그 대망의 21세기의 벽두에 어떤 변화의 조짐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도 별로 분노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21세기'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전략적 무기로 삼
아 미래의 변화 가능성과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과 그것이 갖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에 대한 의식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환경파괴에 대한 사회적 우려, 그것을 막기 위한 운동의 확산, 무차
별적인 자연환경의 훼손 및 공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개발 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서 환경을 중심적 의제로 설정하고 그것에 발맞추어 자
원을 생산/분배하려는 세력의 힘은 여전히 작고 분산되어 있다. 정치만능주의의 위험
에 빠지지는 않아야겠지만 환경운동이 환경정치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단순화시켜 얘기한다면 정치는 한 사회가 생산하는 부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
는 과정을 의미한다. 기존의 정치는 부의 무한한 증대를 전제하고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거기서 일어나는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
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정치적 싸움은 보수와 개혁, 반민주와 민주주의를 축으로 하는
세력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이러한 분배와 갈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될 수 있는 한
자유롭게 표출되고 최종적인 타협의 결과가 합리적이고 공평한 것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현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의 정치는 오랜
분단과 권위주의의 역사로 인해 다양한 세력간의 이익을 둘러싼 갈등을 평화적으로 합
리적으로 조정하는데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환경파괴가 부의 무제한적 생산 및 소비를 유발하는 정치경제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합리성과 공평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
으로 해나가면서도 기존정치의 성격과 전제에 대해 도전하는 새로운 파라다임에 기초
한 세력의 성장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세계관의 세력화와 그것을 토대로
한 정치공간의 확보를 녹색정치 혹은 환경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
체적으로 현단계에서 무엇을 요구하는가?
우선 새로운 친환경적 세계관의 대중적 확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부국강병적 세계관이
한국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별적 환경문제에 대한 캠페인적 홍보만 가지고
는 새로운 세계관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보편화하기 어렵다. GNP나 부가가치 중심의 생
산주의와 단일국가 중심적 민족주의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환경을 훼손 파괴하며 우리
의 일상적 환경을 망가뜨리는 가에 대해 지속적인 교육과 계몽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것은 급진적인 반생산주의나 원시반본적 생태주의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신중할 필
요가 있다. 이윤창출을 최대의 목표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의 강제적 중단이 비현실적인
꿈이라면 우리에게는 당분간 두 가지 의식이 필요하다. 1) 그러한 이윤창출이 친환경
적 연계를 갖도록 함으로써 무제한적 생산 및 소비에 일정한 규제를 부과하는 방향으
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상품선택시 환경 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도
록 소비자의 의식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고 그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친환경적 상품 개
발에 대한 요구를 확장시켜야 한다. 2) 환경과 관련된 공공재 (산림, 강, 녹지공원 등
)의 훼손 방지 그리고 환경보존을 위해 필수적인 공공재 (폐기물 처리 시설, 각종 환
경규제를 위한 비용 등)의 확장이 요구된다. 이것 역시 일반 대중들의 의식 변화를 통
해서, 즉 공적 자금을 그러한 영역에 투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개개인의 일상 생활
의 안전과 충족감을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민적 압
력이 커질 때 가능하다.
둘째, 진부한 얘기지만, 앞에서 얘기한 의식과 계몽을 주도하고 시민적 소비자적 압력
을 조직화하는 다양한 운동단체 및 모임의 지역사회 뿌리 내리기와 확산이 필요하다.
언론 및 교육의 영역에서 환경보존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그것
은 그냥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여러 단체의 결집된 힘과 적극적 개
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환경운동단체의 리더쉽에 의해서 환경문제가 중요 이슈로 등
장하고 시민적 소비자적 압력을 통해 중앙 및 지역 정부나 기업의 정책에 변화가 일어
난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에 대한 압력만이 운동의 기능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
반 시민들의 소극적 적극적 참여, 재정적 정신적 후원 등을 일상적 삶의 일부로 만드
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일상생활양식에서 일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다. 이러한 기
반을 다지는 일 없이는 운동단체의 모든 외부적 활동은 단순한 에너지 소모와 선동적
언론플레이에 기반한 운동 선전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마을 단위나 아
파트 단위에서의 일상생활의 이해관계에 관련된 친환경적인 모임이나 친환경적인 여가
및 취미생활 모임의 확산은 환경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상적 차원에
서 부담 없는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일반시민들의 변화와 의식 발전을 장기적으로 꾀
하는 것은 대정부 대기업에 대한 압력 못지 않게 환경운동의 중요한 역할이 되어야 한
다.
셋째,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녹색 정당의 결성이다. 정치는 좋건 싫건 한 사회의 문제
에 대한 최종적 결정력을 갖는다. 정치에 대한 개인이나 운동의 간접적 압력을 통해서
친환경적 제도와 정책을 유도하는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직접적인 싸움은 민주주
의 국가에서는 정당간에 벌어지고 그 대부분은 의회라는 최대로 제도화된 정치적 공간
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비녹색 정당이나 거기에 속한 개별적 정치인들이 아
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환경보존에 관련된 원칙에 입각하여 의회 및 정당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거 승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현실 정치
는 그들을 언제라도 반환경주의자로 만들 수 있으며 환경에 대한 관심은 매우 이해관
계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운동 단체가 직접 나서서 정치적 싸움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에 관련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운동단체의 성격상 좁은 의미의 정치적 싸움에 지나치게 몰입
할 때 구성원들의 대중적 호응을 얻기 어렵다. 또한 원칙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는 운
동의 속성상, 다양한 세력과 타협하면서 연합을 상시적으로 바꿔가야 하는 정치적 전
략의 행로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고 그렇게 하다 보면 고유의 정체성을 잃을 가능성 또
한 높다. 녹색정당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친환경적 의식이 높지도
넓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한 환경관련 운동의 힘이 미약한 단계에서 정당 건설은 시민
사회에 싹트고 있는 자생적인 힘의 싹을 오히려 눌러 버릴 수도 있고 정치적 의식이
미약한 일반 대중과의 연계를 오히려 약화시킬 가능성도 높다. 녹색정당은 오랜 준비
과정과 제반 조건의 성숙 속에서만 기존정치 공간에 의미 있는 파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상 세 가지 차원에서의 과제는 녹색정치를 위해 필수적이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친환경적 세계관이 아직까지도 어색하며 운동의 양적 질적 수
준도 떨어지며 더구나 녹색 정당은 엄두도 내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과제의 균형 있는 발전 없이는 지구화와 시장주의의 광풍에 파괴되는 환경과
인간적인 삶을 지켜내기 위한 21세기의 환경정치는 백일몽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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