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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빈 자리 누가 메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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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누가 메울까 댓글 0건 조회 817회 작성일 08-04-1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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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한국정치에 빈 공간이 생겼다. 3김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린데 이어 여야(與野) 중진에 계파 실세들까지 줄줄이 고배를 마신 탓이다. 그 공백을 누가 채울 것인가. 권력은 한 순간도 진공 상태를 허용하지 않으므로 누군가가 곧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다.

5년 단임제는 우리 정치문화에 뚜렷한 특징 하나를 추가했다. 대선이 끝나는 순간 곧바로 차기 레이스가 시작되는 점이 그렇다. 한국정치가 역동적이어서 그런지, 타고난 조급증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로또가 꽝이 되자 즉석에서 새 로또를 사는 모습과 닮았다.

벌써 거명되는 주자군(群)만 십 수 명에 이른다. 한나라당만 해도 강재섭 박근혜 정몽준 홍준표 원희룡 의원 등이 꼽히고, 민주당은 손학규 정세균 추미애 박상천 천정배 김효석 김부겸 박주선 송영길 의원,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들이 저마다 정치적 체급을 올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있다. 정치는 야구팀과 달리 엔트리가 무제한이어서 한층 극적이다. 권외(圈外)의 인물도 언제든지 한 방을 날릴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 우리사회의 공적 오락(public entertainment)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이들 중 누가 빈 자리를 메워도 크게 상관은 없다. 모두들 리더로서의 기본소양은 갖춘 듯하고, 검증도 웬만큼 받은 듯해서다. 다만, 가능하다면 소통하고 타협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달라진 정치지형과 시대가 그런 사람을 절실히 원하고 있어서다. 총선 이후 각계에서 쏟아진 정치발전을 위한 제안 중에도 ‘소통과 타협’이 가장 많다.

‘오너 政黨’ 시대 막 내려

이번 총선을 끝으로 한국 정당정치에서 오너(owner)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한 개인에 의한 정치의 사유화(私有化)가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지배적 대주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있다면 ‘대표’라는 이름의 전문경영인이 있을 뿐이다. 이는 어느 한 세력에 의한 독주가 어려워졌음을 뜻한다. 같은 당 안에서도 대화와 타협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됐다.

총선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양당(兩黨)체제가 느슨한 형태의 다당(多黨)체제로 바뀜으로써 대화와 타협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다기한 우리사회의 분출하는 욕구들을 서구식 양당체제가 다 수용할 수 있느냐는 회의가 일던 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한나라당이 153석을 얻어 간신히 과반을 넘긴 것도 집권당 역할은 하되 다른 당들과 함께 늘 대화하고 타협하라는 민의(民意)의 표출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한 일간지는 총선 결과로 인한 급속한 우경화 가능성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친여 무소속 등 보수 세력이 3분의 2가 넘는 200여석의 의석을 갖게 돼 견제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보수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와 시장’이라는 기본가치의 저변이 확충돼 관련 정책의 추진에 힘을 받게 됐지만, 반(反)보수 비(非)보수의 입장에선 거대한 벽(壁) 앞에 마주선 느낌일 것이다.

이런 정치지형이 일각의 우려대로 보수권력의 독주에 시민단체가 직접 맞서는 국면으로까지 발전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듯 외부의 적(敵)이 강할 때는 안으로 뭉치지만 지금처럼 적이 지리멸렬하면 내부 투쟁에 골몰하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차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소통과 타협의 새 시대 열어야

따지고 보면 소통과 타협은 정치의 가장 보편적인 기술이자 만국 공통의 정치문법이다. 디지털 시대의 표현을 빌리면 소프트웨어이고 정치학적으로 말하면 성숙한 민주주의다. 이게 한국에서만 아직도 야합(野合)의 동의어인양 쓰이는 것은 유교적 명분주의의 전통에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정에서의 선명성 경쟁 탓이다. 이제라도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치의 하드웨어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독재 대 반독재의 낡은 두 축이 철거된 지 오래고,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도 뿌리를 내렸다. 그럼에도 하드웨어 곳곳을 누비며 정치에 생명을 불어넣어줘야 할 소통과 타협의 소프트웨어 작동되지 않고 있다.

3김 시대도 가고, 민주화 20년의 깃발도 내려진 지금, 한국정치의 빈 공간을 메울 사람은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치적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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