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야말로 중화세기가 탄생하는 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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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국의 야욕 댓글 0건 조회 751회 작성일 08-03-26 20:16본문
【부록2】전쟁은 멀지 않고 그것은 중화 세기의 산파이다
동지들 :
나는 오늘 매우 격동된다. 우리가 신낭망(新浪網)에 위탁하여 실시한 대형 인터넷 설문조사는 다음 세대는 매우 희망이 있고, 우리당의 사업은 후계자가 있음을 설명한다. “당신은 여성과 아동, 전쟁 포로에게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설문에서 80%를 넘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하여 우리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
내가 오늘 거듭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왜 신낭망에 위임하여 인민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했는가 하는 점이다. 오늘 내가 하는 이야기는 지난번 연설의 속편이다. 당시 연설 중에서 나는 3섬 문제를 이야기했고, 지난 20년 동안의 목가적인‘평화와 발전’은 이미 끝났으며 군사력[軍刀] 중심의 현대화가 다음 차례 중국의 유일한 선택이며, 또한 우리에게 거대한 해외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오늘 나는 이 두 가지 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이번에 우리가 실시한 설문조사의 표면적인 핵심은 여성과 아동 및 전쟁포로에게 총을 발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체현된 의미는 결코 이 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의도는 주로 중국 인민들의 전쟁에 대한 태도를 탐색해 본 것이다. 만약 미래의 전사들이 비 전투병조차도 모두 감히 살생을 할 수 있다면, 전투병은 당연히 그 백배로 살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설문조사에 대한 대답은 전쟁에 대한 인민들의 전체 태도를 충분히 체현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의 진정한 의도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당중앙에서 이번 조사를 하기로 결정한 목적은 사상을 낱낱이 파악하려는 것으로 만약 우리 중국이 전 세계를 향해 발전하려면 반드시 적대국 인구의 대량살상을 수반해야 하므로 우리 인민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우리 인민들이 이를 옹호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분 모두 알다시피 덩샤오핑 동지의 핵심 사상은 “발전은 단단한 도리이다.”이며 후진타오 동지도 늘 “발전은 제일 중요한 일이다.”라고 강조하면서 그것을 꽉 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지들은 종종 이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다만 우리 국내의 발전에 국한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가 말하는 ‘발전’이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며 이 부흥은 당연히 우리의 지금 국토에 국한될 수 없고 당연히 전 세계로 확대되어야 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우리 당의 전 세대 류화칭(劉華淸) 동지 및 우리 당의 젊은 전략가 허신(何新) 동지는, 모두 반복해서 세계문명중심전이(轉移)론을 강조했다. 중화를 부흥시키자는 우리의 구호는, 이 사상에 근거하여 제출된 것이다. 여러분은 우리의 과거 몇 년간의 신문잡지 자료 및 인터넷사이트 조사를 해보라. 우리 당에서 누가 가장 먼저 민족부흥의 이 구호를 제출한 것인지. 바로 허신 동지가 제일 먼저 제출한 것이다. 당신들은 허신이란 이 사람을 아는가? 비록 그가 보고할 때는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며 다른 사람과 싸우려는 모양이라 사람들이 싫어하긴 하지만, 그러나 그의 역사적 안목은 오히려 우리 당의 귀중한 재산이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이야기해야만 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서양학자들이 선전하는 관점은 전 세계의 인류가 모두 아프리카의 한 모체(母體)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민족이건 우월성을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 중국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중국인은 지구상의 다른 인종과는 달리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지 않았으며 현재의 중국대지에서 독자적으로 발원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저우커우뎬(周口店)의 중국원인이 바로 우리 선조의 한 발전단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침 ‘중화문명의 근원탐색공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바로 중국 고대문명의 기원과 노정, 발전을 완전하게 탐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줄곧 “중화문명은 상하오천년”이라고 불려왔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고학 및 민족문화, 지역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많은 전문가들은 동북의 홍산(紅山)문화, 절강의 양저(良渚)문화, 사천의 금사(金沙)유적지, 호남영주의 순임금문화유적지의 신발견을 인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 초기문명의 생존상태를 분명히 밝혀내어 중국벼농사의 역사가 8000년에서 1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증명하여 ‘상하 오천년 중화문명’설을 뒤엎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히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00만년이 넘는 문화뿌리, 만년이 넘는 문명 진보, 5천년의 고대국가, 2천년의 중화동일 실체.” 이것은 바로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것으로 ‘염황자손(炎?子孫 역주: 염제 신농씨와 황제의 후예라는 의미로 중국인들은 보통 중국 한족의 조상을 신농씨와 황제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염황자손이라는 말은 중국인을 의미한다)’의 중화민족이라고 자칭하는 것이다. 만약 히틀러의 독일은 게르만 민족이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떠들어댔는데,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그들보다 우월한 것이 훨씬 더 많다.
마침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로 인해, 우리 민족은 일찍이 아메리카대륙과 환태평양 지역에 퍼져 살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아메리카 인디안과 남태평양 각 지역의 동아시아 인종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대당(大唐)의 성세(盛世)에 우리 문명발전은 세계 정상에 있었으며 세계에 그 어떤 문명도 우리와 견줄만한 것이 없었으며 우리가 바로 세계문명의 중심이었다. 나중에 쇄국정책으로 말미암아 서양문명이 우리를 추월했으며 세계문명의 중심도 이때야 비로소 서양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역사를 회고해본다면 여러분들의 관심사는 자연히 세계문명의 중심이 또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 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허신 동지는 1988년 중앙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만약 세계주도권의 중심이 18세기 이래 서양의 유럽에 있었다면 20세기 중엽부터는 미국으로 이전했으며 21세기에 이르면 세계주도권의 중심은 장차 지구의 동방으로 이전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동방’은 주로 중국을 가리킨다.
유사한 사상을, 사실은 류화칭 동지가 80년대 중반에 제출한 적이 있다. 그는 역사분석을 통해 세계의 문명중심이 마침 이동학 있다고 지적했는데, 과거에 동양에서 서유럽으로 이전되었으며 다시 미국으로 이전했고 현재는 동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19세기를 영국의 세기라고 하고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라고 한다면 21세기는 바로 중국의 세기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역사 법칙을 자각하고 중국 세기의 도래를 맞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당의 역사적 사명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20세기 말에 우리는 북경에 중화세기탑을 세워, 새로운 세기가 다가오는 그 시각에, 당 중앙 지도자들이 단체로 그곳에 가서 저우커우뎬(周口店)의 횃불을 높이 들고, 중화세기를 맞이하는 궐기 대회를 거행하였다. 바로 역사의 법칙에 따라 중화 세기를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당이 분투할 목표 이다. 나중에 우리는 16대의 정치보고 중에서, 민족 부흥의 위대한 목표를 써넣었고또한 신 당장 중에도 ‘우리 당은 중화민족의 선봉대’라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이런 것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중대한 발전으로 우리 당의 담략(膽略)를 체현한 것이다. 이 모두는 과거 마르크스가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산당이 어느 민족의 선봉대라는 것은 아무로 말한 적이 없고 또 민족부흥을 공산당의 구호로 할 수 있다는 것도 말한 적이 없다. 심지어 마오쩌둥 동지와 같은 박력있는 민족영웅조차도 단지 ‘세계무산계급혁명’의 깃발만 들었지 감히 민족부흥이란 구호를 외치진 못했다.
우리는 민족부흥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중화세기의 도래를 맞이해야한다. 어떻게 분투해야만 비로소 중화세기를 실현할 수 있는가? 우리는 반드시 인류역사의 귀중한 경험들을 거울삼아 인류문명의 일체 우수한 성과들을 장악하고 다른 민족들의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훈은 바로 바로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당이 망한 교훈과 그 해에 2차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이 참패한 교훈을 의미한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당이 망한 교훈은, 최근 매우 많은 토론이 있었기에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오늘 단지 독일과 일본의 교훈만을 말하고자 한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히틀러의 독일도 인민, 특히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나치당과 정부는 ‘전국선전지도처’ ‘국민교육과 홍보부’, ‘세계관 학습 교육과 감찰처’, ‘신문판공실’ 등 여러 선전교육기구를 조직했으며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전국 인민들에게 게르만인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을 믿게끔 했다. 그들 아리안인의 역사적인 사명은 바로‘세계 주재’, ‘지구의 왕’이 되는 것이었다. 독일은 당시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었으며 지금 우리보다 더욱 강렬했다.
그러나 결국 독일과 일본은 참패했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대국의 흥망성쇠법칙을 탐구한 정치국 학습회의에서, 독일과 일본이 고속으로 발전한 경험을 총괄하였다. 우리는 독일식의 도로로 중화부흥이 갈 길을 확정한 동시에 절대로 그들이 지난 착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원인을 말하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그들은 단번에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으며 각개격파 하는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둘째, 그들은 성과에 급급하여 큰일을 치르는 인내력과 인내심이 없었다.
셋째는, 모질게 손을 써야 할 때에 그들은 모질지 못했고 결국 후환을 남겼다. 만약 당시에 독일과 일본이 시종일관 미국이 중립을 지키게 하고 소련과의 전선 곳곳에서 진을 쳐서 지구전을 벌이고, 이런 방침을 채택한 다음 시간을 벌어 핵무기 및 미사일을 만들어낸 후 핵무기 및 미사일로 미국을 봉쇄하고 소련을 급습했다면 미소는 반드시 당해내지 못하고 항복했을 것이다.
특히 일본은 소국임에도 진주만 기습이라는 절대적인 착오를 저질렀다. 결국 미국의 급소를 명중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그것을 전쟁에 끌어 들여 독일과 일본 파쇼를 무덤으로 내모는 행렬에 가입시켰다. 물론 그들이 만약 이 3가지 착오를 범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변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가 중국을 지배하지 못했을 것이며 일본이 중국으로 천도하여 중국을 지배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또 아마도 일본은 중국과 전체 아시아를 지배하고 동방의 지혜를 발휘하여, 독일인의 서양지혜와 싸워 이겨 세계를 통일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부질없는 말이라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근본적인 원인을 말하자면, 독일과 일본이 참패한 것은 역사가 그들이 ‘지구의 왕’이 되도록 안배하지 않았으며 사실상 그들은 가장 우수한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표면에서 보자면, 지금의 중국을 그 때의 독일과 비교하면, 놀랄만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양국은 모두 자신의 종족이 가장 우월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열강에게 모욕을 당한 역사와 복수의 심리가 있다. 또한 자신의 권위적인 전통을 숭배하고 있으며 생존공간이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면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있다. 그래서 ‘민족사회주의’라고 자칭하며 둘 다 ‘한 국가, 하나의 당, 한 명의 지도자, 하나의 주의’를 숭배한다.
그러나 진짜로 만약 독일을 중국과 비교하자면, 장쩌민 동지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그야말로 소아과에 불과하다! 독일은 기껏해야 인구가 얼마나 되며, 영토가 얼마나 되고 또 역사는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3년 동안 국민당 800만 군대를 소멸시켰지만, 독일은 겨우 몇 명의 적을 죽였는가? 그들은 불과 십 몇 년 만에 망했지만, 우리는 80여 년을 지배하고도 활력이 충분하다. 우리가 제출한 문명중심전이론은 당연히 히틀러의 ‘지구의 왕’이라는 이론보다 고명하다. 우리 문명의 박대정심함은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고명하도록 결정지었다.
그러므로 우리 중국인이 독일인보다 고명한 것은, 결국 우리 민족이 그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며, 역사가 길고 인구가 많으며 지역이 넓기 때문이다. 이 기초 위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가보(家寶)를 남겼다. 바로 무신론과 대통일이다.
우리 중화문화의 터전을 마련한 창시인은 바로 공자이다.
이 두 가지 가보(家寶)는 우리가 서양보다 더욱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도록 결정지었다. 그러므로 중화민족은 오랜 동안 쇠퇴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천재인화와 민족의 재난이 심하다 해도 우리는 ‘하늘이 죽이지 못하며 땅이 묻을 수 없도록’정해졌다. 이것은 우리의 장점이다. 돌발적인 사건에 대응한 전쟁에 대해 말하자면 미국이 지금까지 망하지 않은 이유는 전쟁을 치러도 본토까지 공격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적이 본토를 조준하여 공격하게 되면 미 의회에서 쟁론을 벌여 대통령이 대외에 선전포고할 권한을 줄 때까지 적은 일찍이 워싱턴을 타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이렇게 옥신각신할 일이 없다. 덩샤오핑이 말했듯이 “당의 영도가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신속하다. 결정만 되면 바로 실행하는데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그런 옥신각신할 일이 없다.이것이 바로 우리의 장점이다.” 우리 당의 민주집중제는 바로 대통일전통의 기초위에 있다. 그러나 독일의 파시즘은 비록 고도의 집중을 강조하긴 하지만 중점이 원수 일 개인의 권력에 있어서 도리어 중앙의 집단지도를 소홀히 하였다. 그 때문에 히틀러는 나중에 측근들에게 배반을 당했으며 근본적으로 나치당의 전쟁능력에 동요를 가져왔다.
우리가 독일과는 다른 것은 우리는 바로 철저한 무신론이지만 독일은 원래 천주교와 기독교 국가였으며 히틀러도 단지 반쪽 무신론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비록 일반 백성들의 지능이 떨어진다고 인식하고 있었기에 마땅히 지도자의 말이면 다 된다고 여겼다. 독일 백성들은 당시에 비록 그를 아주 숭배했지만 중국에서 광범하게 숭배되는 ‘성인’만큼 오랜 전통을 갖고 있진 못하다. 우리 중화사회는 역대로 ‘성인’을 숭배하는데 이는 바로 우리가 그 어떤 신도 숭배하지 않게된 원인이다. 당신이 신을 숭배한다면 곧 사람을 숭배할 수 없다. 마치 중동 일부 국가에서처럼 누구를 신의 대표라고 인정하는 외에는 말이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누가 성인이라고 인정하기만 하면 당연히 당신은 그가 당신을 지도하도록 할 것이며 당신이 그를 감독하거나 선택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독일이 아니라 다만 우리 중국만이 서양의 의회민주제도에 대항할 만한 역량이 있다. 독일은 히틀러의 독재를 만들어냈지만 그것은 단지 한순간의 역사적인 오해에 불과했을 뿐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여러분은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최근 우리가 무신론 선전을 한층 더 확대하기로 결정했지. 만약 서방의 유신론이 중국에 들어와 우리를 끌어내고, 중국 백성들이 모두 신의 말을 듣고 따라간다면 또 누가 있어 성실하게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백성들이 만약 후진타오 동지가 합격한 지도자라는 것을 믿지 않고 그에 대해 의문을 갖고 그를 감독하려 한다면, 교회 신도들처럼 교회에 가서 하느님을 믿고 우리를 의심한다면, 우리 당이 여전히 중국을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독일이 ‘지구의 왕’노릇하려는 노력은 실패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 역사적 사명이 독일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에 독일의 3가지 경험은,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하고, 민족부흥을 실현할 때 흡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바로 단단히 민족을 사로잡는 생존공간의 문제, 단단히 집권당의 지도를 틀어잡는 문제, 단단히 ‘지구의 왕’이란 이 큰 방향을 틀어잡는 문제 등이다. 이 3가지 문제를 꽉 틀어쥐고 놓지 말아야 한다.
아래에 이 3가지 문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선 생존공간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민족부흥의 가장 큰 착안점이다. 지난번 연설에서 내가 언급했듯이, 쟁탈의 기초적인 생존 자원(토지, 해양을 포함)은 역사상 절대 다수 전쟁의 근원이다. 이런 정보화 시대에도 변화는 있어도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
우리 원래의 1인당 평균 자원은 그 해의 독일보다 적고, 게다가 이 몇 년간 경제를 발전시킨 작용과 기후의 급속한 악화로 인해 우리의 자원은 심각하게 고갈되었으며 환경도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특히 토지, 수원(水源)과 대기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우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물론 심지어 민족의 생존마저도 모두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엄중성은 그 해의 독일을 훨씬 뛰어넘는다. 무릇 서방 국가를 가본 사람은 모두 느낄 수 있는데 그들의 생존공간은 우리를 훨씬 초과한다. 그들의 고속도로 주변은 큰 면적의 삼림이지만 우리 도로 옆에는 몇 그루의 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하늘은 늘 푸르고 깨끗하지만 우리의 하늘은 검은 구름이 마치 솥뚜껑을 덮어놓은 것 같다. 그들의 수도관은, 틀기만 하면 마실 수 있지만 우리의 지하수는 여과하지 않으면 마시지도 못할 정도로 오염되었다. 그들의 큰길에는 사람이 얼마 없으며 두세 명이 단층집에 살지만, 우리의 거리는 많은 사람이 붐비며 몇 사람이 단칸집에서 산다.
여러 해 전 어떤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쓰고, 제목을 『황화(黃禍)』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나라 인구가 13억이 되면 미국식의 고소비 생활방식으로는 유한한 국토자원이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되면 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초래한다. 지금 우리의 인구는 이미 이 극한을 초과하였고, 자원을 수입하여 유지하고 있다.
이 문제를 우리가 중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우리에게는 국토자원부가 있고 매일 모두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생존공간’이란 단어는 나치의 독일과 너무 많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서방에서 나치 독일을 연상하고 ‘중국위협론’을 조장하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허신의 이론에 따라 ‘인권은 곧 생존권’임을 강조할 때, 단지 ‘생존’만 말하고 그러나 ‘공간’을 언급하지 않는 의도가 있으며, ‘생존공간'이란 단어의 사용을 피한다.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중국이 생존공간 문제에 직면한 것은 서방국가들이 서둘러 동방국가 들을 추월 발전하여 전 세계에서 식민지를 건설하였기 때문인데, 그러므로 생존공간 문제에 있어서 그들이 유리한 지위를 차지한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반드시 인민을 인솔해 나아가 해외로 발전해야 한다.
두번째 문제는 바로 우리가 집권당의 지도능력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나치당보다 잘 했다. 그들은 나치당의 권력을 비록 독일 국가 각 방면까지 뻗쳤을지라도, 우리가 당의 절대적인 지도권을 강조하고‘당이 당을 관할해야 함’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고 틀어잡은 것만 못하다. 마오쩌둥 동지가 우리 당이 정권을 잡은 ‘삼대법보(三大法寶)’를 총괄할 때, 공산당을 잘 건설하고 공산당의 지도권을 잘 건설한 것을 가장 중요한 보물로 여겼다.
우리는 지금 우리당의 영도 지위를 공고히 하고 영도능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관건은 두 가지를 붙잡는 것이다.
하나는 3개대표이론을 잘 선전하여 우리 당이 중화민족의 선봉대이지 단지 무산계급의 선봉대만은 아님을 강조해야 한다. 많은 군중들이 다음과 같이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당신들에게 투표하여 당신들 공산당이 우리를 대표한다고 하지 않았는데, 당신들이 어떻게 우리의 '대표'라고 자칭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 마오쩌둥 동지는 동맹자를 인솔하여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익을 얻도록 하면 당신을 지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중국 인민을 인솔하여 나아가야만 한다. 중국의 생존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면, 중국 인민들은 우리를 지지할 것이며, 그때에는 무슨 ‘전제’ ‘독재’의 명칭도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원히 중국 인민의 대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성공적으로 인민을 인솔해 나아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중국 인민을 인솔해 나아갈 수 있느냐는 바로 공산당의 영도 지위에 관계된 가장 관건적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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