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1000원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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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제학 댓글 0건 조회 1,279회 작성일 08-03-13 10:46본문
붕어빵 1000원의 경제학
[중앙일보 2008-03-13 07: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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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선욱.김성룡] 12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쌍문역 인근에 있는 한일병원 후문의 주택가 이면도로. 10대 남학생 한 명이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고 길 한쪽에 있는 붕어빵 노점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1000원에 3개”라는 주인의 말에 남학생은 “얼마 전까지 4개였는데…”라며 혼잣말을 하며 그냥 돌아섰다. 손님을 놓친 붕어빵 가게 주인 전창남(50·서울 수유동)씨는 속이 타는지 물컵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풀빵 장사 5년 만에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5년째 같은 자리에서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병원 직원들을 상대로 노점상을 해오고 있다. 붕어빵과 함께 떡볶이·튀김·순대를 파는 전씨는 얼마 전까지 하루 10만원 넘게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요즘은 잘 팔아 봐야 절반으로 뚝 떨어진 5만원이 고작이다. 한 달에 150만원 정도로 4명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 10만~15만원어치를 팔면 재료비로 7만~8만원이 들어간다. 밀가루와 가스 등 원재료비가 크게 오른 탓이다. 붕어빵 100개를 만들 수 있는 재료(밀가루 반죽 5㎏과 단팥 3㎏)는 9000원에서 1만원으로 11% 올랐다. 지난해 11월까지 1만9000원 하던 20L들이 LPG 한 통을 들여 놓으려면 지금은 79% 뛴 3만4000원을 줘야 한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오징어·김말이 등 튀김은 전씨가 손수 준비해 비용을 아끼고 있다. 고육지책으로 1000원에 4개 팔던 붕어빵을 3개로 줄였다. 붕어빵 한 개에 250원에서 330원으로 80원 올린 셈이다. 그러자 하루 200개 가까이 팔리던 붕어빵은 150개 정도로 감소했다. 500원짜리 손님이 아예 사라진 탓이 컸다. 붕어빵 100개를 팔 경우 재료비·가스비를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순수익은 6000원에 불과하다. 손님에게 미안한 마음에 2000원어치를 사면 7개를 주기로 했지만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노점에 함께 나온 부인 왕순이(48)씨는 “백화점 물건은 가격이 올라도 사람들이 큰 불만을 갖지 않는데 붕어빵 한 개에 80원 올렸더니 손님이 뚝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전씨는 자신에게 붕어빵 재료를 공급해 주는 청수식품 김인수(59) 사장의 얼굴을 보기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밀가루·팥 같은 곡물 가격이 다 뛴 마당이니 조만간 재료 값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잘될 때는 붕어빵 가게 100곳에 재료를 대줬는데 이제는 대부분 문을 닫아 20곳만 남았다”며 “우리도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전씨는 “대입을 준비하는 고교 3학년과 1학년 두 아들을 제대로 뒷바라지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그의 전 재산은 가족이 전세로 살고 있는 단독주택 12평짜리 반지하방과 노점이 전부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일하지만 맏이의 대입 학자금 준비를 떠올리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전씨는 전했다. 한때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전씨는 붕어빵 장사로 돈을 벌면 개인 식당을 차릴 꿈도 가졌다. 최근엔 주민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도 적어 주기 시작했다. 배달도 하기로 한 것이다. 하루에 들어오는 주문은 몇 건 안 되지만, 조금이라도 더 벌어 자식들의 학비 걱정을 덜고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다. 오후 6시쯤 되자 둘째 아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노점으로 나와 어머니를 대신했다. 매일 나오는 둘째 아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오후 11시를 넘겨 노점 문을 닫았다. 길가에 세워 놓았던 출퇴근용 오토바이 위에 지친 몸을 실었다. 등 뒤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허리를 꼭 부여잡았다. 전씨는 그래도 행복한 표정이었다. “아들 두 놈에게 요새는 용돈도 한번 제대로 못 줬어요. 뼈 빠져라 한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살기 힘들죠? 그래도 살다보면 더 좋아지겠지요.” 글=최선욱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붕어빵=쇠로 된 형틀 안에 묽은 밀가루 반죽을 붓고 여기에 단팥 소를 넣어 구워 낸다. 형틀의 모양에 따라 붕어빵·국화빵으로 부른다. 모양에 관계없이 이런 빵을 넓게 풀빵이라 일컫는다. 형틀에 붓는 밀가루 반죽이 이전에 가정에서 만들어 쓰던 밀가루풀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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