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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사설(2월23일)]
노 대통령을 역사 속으로 보내며
5년 전 대통령을 시작하면서 노무현은 구시대의 막내가 아니라
새 시대의 장남이 되고 싶다고 했다.
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노무현은 그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그는 많은 면에서 부족했다. 노무현의 실상은 달랐다.
역사의식은 뒤틀렸고, 오만은 헌법을 넘었고,
지식은 짧았으며, 혀는 너무 빨랐다.
386에 휘둘렸고, 권위를 담을 그릇이 없었고,
세계와 북한을 너무 몰랐으며,
우물 안의 경험으로 현대사와 언론을 대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진짜 노무현이 하나둘씩 드러났고 나라는 혼란스러웠다.
국민은 그렇게 5년을 노무현과 함께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역사 속으로 보낸다.
노무현은 이중성의 인간이다.
빛을 향해 뛰면서 꼭 그늘을 남겼고,
좋은 일을 하면서 꼭 나쁜 얘기를 불렀다.
그는 그리도 대통령 직을 갈구했으면서도 몇 달 안 돼
“대통령 직 못해 먹겠다”고 했다.
세상을 뜨겁게 바라보면서도 보는 눈은 한쪽이었다.
평등·질시·편향이었다.
민주당이 구태라며 열린우리당을 만들고서는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하자고 했다.
그는 용산기지 이전이라는 한·미동맹의 오랜 과제를 해결했다.
그러면서도 얻어맞는 맥아더 동상을 방치하고 군인을
반미 시위대의 몽둥이 밑에 내버려 두었다.
그는 이라크에 한국군을 보내 부시 미국 대통령을 감동시켰다.
그러면서도 “반미주의면 어떠냐”고도 했다.
그는 한·미 FTA를 주도적으로 성사시켰다.
그런데 다른 쪽에선 농민 시위대를 막았던 경찰청장이 물러나야 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잘 몰랐다.
위헌 공약(행정수도)으로 표를 얻었고,
헌법에도 없는 신임투표를 한다고 했으며
,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헌법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막판에는 선거운동을 하겠다며 헌법재판소 재판정을 찾기도 했다.
국정원은 유력 대선주자의 뒤를 캤고,
국정원장은 아프가니스탄과 평양에서 나라의 권위를 구겼다.
정권 내내 경찰의 최루탄보다는 시위대의 함성과 죽창이 더 무서웠다.
노 대통령은 경제에 대해서도 이중적이었다.
그는 5년간 수출이 매년 두 자릿수로 늘었다고 자랑한다.
자기 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투자와 일자리가 줄고
서민경제가 어려운 것은 10년 전 외환위기 탓이란다.
이제 봉하마을의 노무현은 현실의 역사에서 비켜서야 한다.
미국의 카터는 섣부른 이상주의로 재임 중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퇴임 후 목수가 되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런 카터를 미국인은 더 사랑한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한 후 386들은
청와대 만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노 대통령은 답가로 조용필의 ‘허공’을 불렀다.
이제 노무현은 자신의 잘못된 열정을 허공 속으로 날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와 재수(再修)하는 기분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하기 바란다.
조용히, 말보다는 침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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