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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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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숭례문 댓글 0건 조회 680회 작성일 08-02-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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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참담한 비극이 빚어지고 말았다. 서울의 관문이요 한국의 상징인 숭례문이 불에 타버리고 만 것이다.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가 조금 넘어서 불이 났다고 한다. 얼마 뒤에 소방차가 출동해서 불을 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불씨는 기와 아래 깊숙한 곳에서 600년 역사의 숭례문을 태우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서 다시금 불길이 치솟았고 자욱한 연기와 함께 숭례문은 무너지고 말았다.
 
수십 대의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기와 아래로 물길을 보내지 못하고 무력하기만 했다. 한국의 상징은 그렇게 무참하게 불타고 무너져 버렸다.

숭례문은 흔히 남대문이라고 불리지만 실은 남대문은 숭례문의 '비칭'에 가깝다. 남대문이 아니라 숭례문이라고 불러야 옳다고 한다.
 
'예를 받든다'는 뜻의 '숭례'라는 말은 조선이 유교 국가라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준다.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가르쳤는데, 유교에서 '예'는 사회의 근본이다.
 
온갖 전란과 풍상을 견딘 숭례문이건만 '예'가 무너진 사회를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이렇듯 타버리고 만 것인가?
 
'예'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 사이만이 아니라 현재 세대와 과거 세대, 그리고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에도 해당된다. 현재만을 탐욕스럽게 추구하는 '돈 사회'에서는 역사도 미래도 존재하기 어렵다.

숭례문은 서울 도성의 사대문을 대표하는 문이다. 임금이 사는 도성으로서 서울은 본래 18km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세계적인 '성곽 도시'였다.
 
사람들은 네 개의 대문과 네 개의 소문을 통해 서울을 드나들 수 있었다. 임금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서 자리를 잡았다.
 
이것은 사실 생명의 원천인 햇볕을 가장 오래 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남쪽에 위치한 숭례문은 서울을 대표하는 대문이 되었다.
 
하나의 건축물로서 숭례문은 서울 성곽에 무지개 모양의 문을 내고 그 위에 나무로 누각을 지은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숭례문은 서울의 상징이 되었다.

숭례문은 세종 때인 1307년에 완공되었으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었다. 숭례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며 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긴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숭례문은 징기스칸의 침략 이래 최악의 문화적 대재앙이었던 임진왜란에도 소실되지 않았으며, 병자호란, 일제 침략, 한국전쟁, '조국 근대화' 등도 이기고 원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숭례문은 더욱 감동적인 문화재였다. 숭례문은 온갖 전쟁과 환란과 개발의 강풍을 이기고 600년 동안이나 제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600년의 역사가 삽시간에 자욱한 연기가 되어 시커먼 밤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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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로 소실되기 전 숭례문(2005년 5월). 이 숭례문은 이제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 ⓒ홍성태

숭례문의 소실은 안전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위험사회 한국의 처참한 실상을 다시금 확인해준 역사적 사건이다.
 
안전 문제를 그저 '비용'으로 여기는 천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위험사회' 한국에서는 어이없는 화재 사고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삽시간에 목숨을 잃고, 나라의 상징인 소중한 문화재가 한 줌 재로 불에 타 없어지고 만다.
 
우리는 위험사회 한국의 처참한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로 대처하기 위한 발본적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성장과 부자만을 외치는 '돈 사회'에서는 자연과 문화는 물론이고 생명마저 존중되기 어렵다. 위험사회 한국은 과연 개혁될 수 있을까?

위험사회 한국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안상수 의원의 발언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2월 11일 오전에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의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당연히 숭례문 소실과 관련해서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그런데 안상수 의원은 지난 번 이천 화재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노무현 정권 탓'을 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이 그야말로 안전 업무에 대해 얼마나 허술했는지, 신경 쓸 데는 쓰지 않고 엉뚱한 곳에 신경 쓴 데에 따른 비극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정권 말기에 터져 나오는 여러 안전 사고에 할 말을 잃게 된다"고 비난했다.

2주 뒤면 물러날 노무현 대통령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안상수 의원을 보자니, '난 한 놈만 팬다'는 <주유소 습격사건>의 '무데뽀'가 떠오른다. '안데뽀'의 등장인가? 그러나 '무데뽀' 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이해조차 불가능하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이 밉고 '노무현 탓'이 유행이라고 해도 이천 화재 사고나 숭례문 화재 사고처럼 처참한 사고에 대해 '노무현 탓'의 정치공세를 펼치는 것은 정말이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의 안전과 나라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위험사회 한국의 문제에 대처해야 옳을 것이다.

잠시 과거를 거슬러 자료를 살펴보자. 안상수 의원의 말대로라면,
1983년 9월 대한항공기 격추,
1991년 3월과 4월 낙동강 페놀오염,
1993년 10월 서해훼리 호 침몰,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1994년 12월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1995년 7월 씨프린스 호 침몰,
1996년 4월 고성 산불,
1996년 5월 시화호 오염,
1997년 11월 영광 핵발전소 2호기 파손 등의 대형 사고는
 
모두 한나라당의 '전신'들이 저지른 사고가 아닌가?
 안상수 의원의 말로 미루어 보건대,
한나라당은 이런 역사를 이미 깡그리 잊은 것 같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집권과 함께 또 다시 비슷한 대형 사고들이 줄줄이 일어나지 않을까?

다행히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다른 의견도 나왔던 모양이다. 예컨대 정몽준 의원은 중앙정부의 잘못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잘못도 지적했다. 이것은 분명 적절한 지적이지만, 여기서 나아가서 한나라당을 돌아봐야 한다.
 
차도 한복판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던 숭례문에 시민이 다시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은 바로 이명박 당선인이다.
 
2006년 3월 1일에 숭례문은 99년 만에 시민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서울시는 숭례문을 이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소중한 문화재인 숭례문을 지키는 데 소홀했다.
 
 이런 점에서 숭례문 화재 사고는 청계천의 역사를 사실상 완전히 파괴한 '청계천 개발 사업'을 떠올리게 한다.

문화재의 소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일어나는 사고였다. 이에 대해 역시 오래 전부터 여러 대책이 제시되었지만, 여전히 제대로 법규가 제정되지 않았고, 제정된 것도 올바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개발주의가 횡행하는 가운데 문화재청은 법으로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며 개발주의에 굴복하거나 심지어 야합하곤 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효종대왕릉에서 LPG를 이용해 취사를 하도록 하는 황당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문화재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귀하게 여긴다는 사람들조차 문화재를 돌이킬 수 없는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위험사회 한국의 척박한 현실이다.

숭례문의 소실은 더욱 무서운 문화 대파괴의 불길한 징조일 수 있다. 정략적 논란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구조와 제도와 주체의 모든 차원에서 미비한 것을 완비하고, 실수와 잘못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야 한다.
 
문화재를 우습게 여기는 천박한 개발주의, 우리 문화재를 하찮게 여기는 식민주의를 척결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 관련 행정의 개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대통령 취임선언에서 국토와 문화재의 보호를 천명하는 것이 좋겠다. 이명박 당선인부터 시행할 것을 절박한 심정으로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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