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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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년설’ 댓글 0건 조회 726회 작성일 08-01-28 10:48본문
‘만년설’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난해 12월7일.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이 자리잡은 프랑스 샤모니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11월 초부터 스키어들이 몰려든다는 해발 1035m 고지대에서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맘 때면 눈이 무릎까지 쌓이고, 기차와 버스들이 번갈아가며 스키어들을 무더기로 토해놓고 사라지곤 했지요.” 16년째 이곳에서 산장을 운영해왔다는 프랑수아즈 콜리네르는 투숙객이 없어 텅 빈 숙소로 기자를 안내하며 말했다.
세계적 관광도시 샤모니의 주민들은 극심한 기후 변화 속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겨울철 알프스를 찾아드는 관광객들을 위한 스키장과 각종 편의시설 제공으로 생계를 잇는 이들에게 눈이 줄어드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콜리네르는 2006년 겨울이 최악이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대목을 앞둔 12월 말까지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 TV에서는 ‘알프스 지역에 750여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이 찾아왔다’는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1924년 최초의 동계올림픽 개최지라는 명예가 무색하게 지난해 2월 열릴 예정이던 월드컵 스키 대회는 눈 부족으로 취소됐다.
주민들의 우려는 이번 겨울에도 여전하다. 지난해 11월 큰 눈이 내려 한시름 놓긴 했지만, 12월 초 다시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비가 내리는 등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비 내리는 샤모니 시내는 썰렁했고 상인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겨울철 스포츠의류·용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날씨 변화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무릎까지 오는 ‘눈장화’를 팔았는데 눈이 오지 않으니 신발이 안 팔려 재고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도 했다.
샤모니 시내에서 멀지 않은 저지대 스키장 3곳은 아예 문을 닫았다. 2003년 유엔환경계획(UNEP)이 경고한 “지구 온난화로 눈이 내리는 곳이 줄어 저지대 스키장들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불과 4년 만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해발 1900m 봉우리 몽탕베르로 올라가는 작은 기차를 탔다. 해발 1500m에 올라갈 때까지 빗줄기가 눈으로 바뀔 줄 몰랐다. 멀리 비를 맞고 멈춰서 있는 케이블카가 눈에 들어왔다. “해발 1000m 이하의 스키장들은 아예 장사를 못하고 있다”는 콜리네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몽탕베르 정상에 오르자 멀리 프랑스 최대 빙하인 ‘빙하의 바다(Mer de Glace)’가 보였다. 이곳은 빙하스키를 즐기는 이들을 불러모으는 샤모니의 주요 관광자원이다.
알프스 빙하를 연구하는 스위스 과학아카데미에 따르면, 2050년이면 이 빙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징후는 이미 뚜렷하다. 10년 전에만 해도 인근의 에귀 뒤 미디 빙하계곡에서 샤모니 마을까지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빙하가 녹아 사라진 지금은 마을에서 2~3㎞ 위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스키를 끝낸 뒤 기차를 타고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낮은 지대의 스키장들은 아예 겨울 장사를 포기했다. 대신 봄이나 여름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게로 업종을 전환했다. 샤모니 기차역 근처 해발 1035m에 위치한 스키장 ‘쁠라나르’는 지난해 여름 꾀를 내 겨울철에 못한 장사를 만회했다. 어른 두사람 정도가 탈 수 있는 나무 썰매를 만들어 케이블카에 매달아 미끄럼 썰매를 탈 수 있는 놀이기구로 바꿨다.
여름철 장사를 위해 숙박업소가 아예 낮은 지대로 내려오는 경우도 생겼다. 스키어들이 줄고 산악자전거, 클라이밍, 트레킹을 즐기는 관광객이 늘었기 때문에 이들을 겨냥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샤모니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스키장이 해발 2000m 이상 고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고도가 낮은 피레네 산맥 근처 스키장들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눈을 만드는 제설기 사용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폐업을 신고하는 경우가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 상인들은 스위스 남부 알프스에서 폐장 위기의 소규모 스키리조트들이 헐값으로 매각 광고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당장 17년 뒤인 2025년이면 알프스 빙하의 50%가 녹아버릴 것으로 예상된다. 해발 2000m 이상의 스키장들도 문닫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서울에 돌아오자 샤모니에 비 대신 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콜리네르는 “정말 오랜만에 겨울다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올 크리스마스에도 콜리네르가 눈을 볼 수 있을까.
몇년 전만 해도 만년설로 뒤덮였던 알프스 산맥 자락의 스키장 리조트 마을 샤모니에 한겨울인 지난해 12월 비가 내리고 있다. 최근 눈 부족 현상에 관광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샤모니|김정선기자> |
지난해 12월7일.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이 자리잡은 프랑스 샤모니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11월 초부터 스키어들이 몰려든다는 해발 1035m 고지대에서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맘 때면 눈이 무릎까지 쌓이고, 기차와 버스들이 번갈아가며 스키어들을 무더기로 토해놓고 사라지곤 했지요.” 16년째 이곳에서 산장을 운영해왔다는 프랑수아즈 콜리네르는 투숙객이 없어 텅 빈 숙소로 기자를 안내하며 말했다.
세계적 관광도시 샤모니의 주민들은 극심한 기후 변화 속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겨울철 알프스를 찾아드는 관광객들을 위한 스키장과 각종 편의시설 제공으로 생계를 잇는 이들에게 눈이 줄어드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콜리네르는 2006년 겨울이 최악이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대목을 앞둔 12월 말까지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 TV에서는 ‘알프스 지역에 750여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이 찾아왔다’는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1924년 최초의 동계올림픽 개최지라는 명예가 무색하게 지난해 2월 열릴 예정이던 월드컵 스키 대회는 눈 부족으로 취소됐다.
주민들의 우려는 이번 겨울에도 여전하다. 지난해 11월 큰 눈이 내려 한시름 놓긴 했지만, 12월 초 다시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비가 내리는 등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비 내리는 샤모니 시내는 썰렁했고 상인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겨울철 스포츠의류·용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날씨 변화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무릎까지 오는 ‘눈장화’를 팔았는데 눈이 오지 않으니 신발이 안 팔려 재고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도 했다.
샤모니 시내에서 멀지 않은 저지대 스키장 3곳은 아예 문을 닫았다. 2003년 유엔환경계획(UNEP)이 경고한 “지구 온난화로 눈이 내리는 곳이 줄어 저지대 스키장들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불과 4년 만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해발 1900m 봉우리 몽탕베르로 올라가는 작은 기차를 탔다. 해발 1500m에 올라갈 때까지 빗줄기가 눈으로 바뀔 줄 몰랐다. 멀리 비를 맞고 멈춰서 있는 케이블카가 눈에 들어왔다. “해발 1000m 이하의 스키장들은 아예 장사를 못하고 있다”는 콜리네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몽탕베르 정상에 오르자 멀리 프랑스 최대 빙하인 ‘빙하의 바다(Mer de Glace)’가 보였다. 이곳은 빙하스키를 즐기는 이들을 불러모으는 샤모니의 주요 관광자원이다.
프랑스 피레네 알프스의 도수 빙하 1911년 모습(왼쪽·상상도)과 2007년 모습. 프랑스기상청 제공 |
알프스 빙하를 연구하는 스위스 과학아카데미에 따르면, 2050년이면 이 빙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징후는 이미 뚜렷하다. 10년 전에만 해도 인근의 에귀 뒤 미디 빙하계곡에서 샤모니 마을까지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빙하가 녹아 사라진 지금은 마을에서 2~3㎞ 위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스키를 끝낸 뒤 기차를 타고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낮은 지대의 스키장들은 아예 겨울 장사를 포기했다. 대신 봄이나 여름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게로 업종을 전환했다. 샤모니 기차역 근처 해발 1035m에 위치한 스키장 ‘쁠라나르’는 지난해 여름 꾀를 내 겨울철에 못한 장사를 만회했다. 어른 두사람 정도가 탈 수 있는 나무 썰매를 만들어 케이블카에 매달아 미끄럼 썰매를 탈 수 있는 놀이기구로 바꿨다.
여름철 장사를 위해 숙박업소가 아예 낮은 지대로 내려오는 경우도 생겼다. 스키어들이 줄고 산악자전거, 클라이밍, 트레킹을 즐기는 관광객이 늘었기 때문에 이들을 겨냥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샤모니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스키장이 해발 2000m 이상 고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고도가 낮은 피레네 산맥 근처 스키장들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눈을 만드는 제설기 사용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폐업을 신고하는 경우가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 상인들은 스위스 남부 알프스에서 폐장 위기의 소규모 스키리조트들이 헐값으로 매각 광고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당장 17년 뒤인 2025년이면 알프스 빙하의 50%가 녹아버릴 것으로 예상된다. 해발 2000m 이상의 스키장들도 문닫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서울에 돌아오자 샤모니에 비 대신 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콜리네르는 “정말 오랜만에 겨울다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올 크리스마스에도 콜리네르가 눈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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