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파와 의리파, 그리고 신뢰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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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뢰 융합 댓글 0건 조회 1,045회 작성일 08-01-24 16:10본문
두 지도자의 신뢰 확보는 아름다운 정치의 신호탄
법칙과 원칙, 실용과 가치 모두 국가발전의 양대 축
역사의 원대한 수레바퀴는 항상 오늘에 머물지 않고 내일을 향해 굴러간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멀어져서도 안 되고, 또한 질질 끌려가는 상황을 발생시켜서도 안 된다.
2008년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우리는 암울한 어둠의 동굴을 지나 절차적․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어 냈다. 그래서 이명박 당선인 새 정부가 보다 선진화된 가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역사 발전의 주인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창조적 가치실용의 시대에 한반도의 번영을 약속한 우리는 이러한 시대정신에 더욱 충실하여 스스로의 꿈과 희망으로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새롭게 장식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창조성과 실용성으로 서로를 밀고 당기는 협력과 포용의 정신을 자켜나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안고 있는 창조와 가치, 그리고 변화와 실용으로 주체적·창조적·진취적·도덕적인 좋은 발전의 터전을 넓히는 것이 가장 시급한 실정이다.
법칙과 원칙은 우선순위의 규정이 될 수 없어
이런 관점에서 인간발전의 영원한 화두 중 하나는 인간본성을 어떻게 보는가의 관점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을 착하게 보느냐, 아니면 악하게 보느냐는 성악(性惡))의 문제가 학문과 도덕, 철학과 사상의 중요한 근원이 되어 왔다.
그래서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고 순자는 성악설(性惡說)로 이에 맞섰다. 그러면 누가 더 설득력을 가진 정답일까? 아마 “모두가 정답이다”라고 하는 것이 더 일반적 결론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고자(告子)는 성무선악(性無善惡)의 백지설(白紙設)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자는 식욕이나 색욕과 같은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모두 가진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것은 선할 것도 선하지 않을 것도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인간의 본성은 선악 규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따라서 고자는 인간의 도덕 행위도 선천적인 본성과는 무관하게 후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를 보고 맹자의 제자 공도자(公都子)는 “성(性)은 선(善)해 질 수 있고 악(惡)해 질 수도 있다”고 하여 인간의 본성은 선도 악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이러한 인간문제에 기초하여 경제학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상식의 바탕이 되도록 맛있게 버무린 위대한 경제학자 E.F.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릅답다》라는 명저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엄급했다.
즉, 인간 생활에서 가족과 같이 작은 규모일 때는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성선설’이 작동하지만, 조직과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 서로를 경쟁과 갈등의 대상으로 보는 ‘성악설’이 작동한다고 하였다.
양측 갈등을 ‘기쁨의 눈물’로 보는 창조적 견해 필요
따라서 하나의 목표와 꿈을 향해 나아갈 때, 사람과 조직이 작은 초창기에는 서로를 도와주고 협력하지만, 조직이 커지고 이익이 많아지면 자연히 성악설에 근거하여 갈등과 권한쟁탈을 발생시키고 만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인 인간 군상들의 본래 모습이고, 정치현실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더 빈번하게 된다.
최근 제18대 총선 공천과 관련하여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근들 사이에 서로의 행동을 촉구하는 공방이 발생했다. 상호 불신에서 비롯된 이번 공방은 결국 많은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우려를 자아냈다.
그래서 1월 23일 李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표는 중국특사 결과를 전달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상호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했다. 두 정치 지도자는 앞으로 원칙과 기준에 근거한 공정한 공천심사를 약속했다.
그리고 새 시대를 여는데 끝까지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발전적인 대화와 타협은 그동안 발생했던 상당한 우려와 반목을 일시에 잠재움과 동시에 많은 국민들의 찬사와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이처럼 나라를 이끌고 사회를 선진화시키는 것에는 분석적인 벌레의 눈(worm’s eye)과 조망하는 새의 눈(bird’s eye)이 함께 필요하다. 정치와 국정을 법칙(法則)으로 보려는 이 당선자측 시각은 분석과 실용 관점의 벌레의 눈이고, 반면에 원칙(原則)으로 보려는 박근혜 전 대표측 시각은 가치와 명분 중심의 새의 눈(bird’s eye)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충성과 의리, 조화와 갈등의 연속이었고, 이 둘의 협력과 반목에서 역사는 발전과 실패를 거듭해 왔다. 그래서 굳이 분류한다면 李 당선인 측근들은 정치와 국정상황을 ‘성선설-법칙-실용-현실-벌레의 눈’으로 분석하려는 ‘충성파’들이다. 그러나 이에 상응하는 박근혜 전 대표 사람들은 ‘성악설-원칙-명분-미래-새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의리파’들이다.
이런 양대 관점으로 인하여 李 당선인 측근들은 성선설 입장에서 자기들을 그냥 믿고 따라와 주기를 기대했지만, 박근혜 전 대표 측근들은 성악설 입장에서 상대를 믿지 못하고 기존에 미리 약속한 원칙을 촉구했다.
선조에게는 원균도 이순신도 다 필요
임진왜란 당시 원균은 아둔하고 변덕이 심했던 선조에게 즉각적인 충성파였지만, 이순신은 눈앞의 충성 대신 끝가지 선조를 배반하지 않는 의리를 보였다.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지만, 선조 입장에서는 충성파 원균도 필요했고 또한 의리를 지킨 이순신도 함께 필요했다.
지금부터 2,400여 년 전 중국 오나라와 월나라의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에서도 오자서와 문종은 의리를 끝까지 지켜 나라를 발전시켰지만, 실용적 관점이 약해 죽음을 맞아야 했다. 대신 범려는 월나라 구천의 충성스런 신하였지만 끝내 의리를 저버리고 토사구팽을 피해 살아남았다.
이와 같이 성악설과 성선설, 충성파와 의리파의 ‘좋고 나쁨’(好惡)과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의 융합과 조화적 상생에서 역사는 꿈과 희망을 제시해 준다.
충성파의 장점은 과감한 결단력과 실행력이다. 반면에 의리파는 기회와 가치를 탐색하는 전략적인 면이 강하다. 또한 충성파는 조급성이 강해 시행착오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의리파는 머뭇거리다가 좋은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발전과 국가 성장의 입장에서 보면 충성과 의리의 가치는 반드시 필요한 양대 축으로 절대 뗄 수 없는 융합적 요소이다.
두 지도자 융합은 국가발전과 정치 선진화의 초석
지금 대한민국이 지구촌의 그림에서 자꾸 흐려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효용과 중국의 비용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북한과 미연마를 양대 팔로 삼은 중국의 대아시아 양팔전략과 일본의 이중적 3각 정책(일-중-인도, 일-호주-미국)으로 한국은 아시아 외교전선에서 고립되고 있다.
또한 정치와 경제의 무력감, 불신과 사회부패 등으로 발전과 성장의 동력이 꺼지고 있다. 이런 정치경제적 국제상황과 현실에서 그동안 여러 곳에서 빚어진 충성파와 의리파의 갈등은 빛 좋은 삼성을 보는 많은 국민들의 안타까운 시선과 같이 많은 실망을 초래했다.
따라서 이번 두 정치지도자의 창조적 협력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 에너지와 정치발전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더욱 힘을 합쳐 대한민국 선진화의 봄을 앞당겨 국민들을 희망으로 이끌어야 한다.
해방 후 우리는 식민지와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60년 만에 세계 11대 경제대국을 이룩했다. 세계는 이를 두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기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높은 산업화를 이룩한 위대한 민족이다.
우리는 수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가치적 민주화로 나아가려는 출발선에 서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가난과 무지와 절망을 지속적 발전과 희망으로 대치하고 독재와 불의를 정의와 자유로 극복한 불굴의 지난 역사를 자랑스럽게 보듬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의 신호체계가 여러 곳에서 고장 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 무력감과 사회 불신의 늪은 우리의 미래 성장 동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는 시급히 정부와 시장의 신호체계를 재정비하고, 이념과 가치 논쟁에서 국가의 성장 동력을 구출해 내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와 신뢰의 무력감을 종식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충성과 의리 관점의 두 정치 지도자의 창조적 융합과 신뢰 화합은 앞으로 국가발전과 정치 선진화를 이끄는 뚜렷한 좋은 신호탄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더 희망적이고 아릅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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