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과 역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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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성학 댓글 0건 조회 676회 작성일 07-10-15 16:55본문
악 처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요? 흔히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악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외에도 ‘전쟁과 평화’로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역시 악처로 혹평을 받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조금 다르다고 해요. 사실 천재와의 결혼생활로 인생을 망친 사람은 오히려 소피아라는 것이죠. 18세가 되던 해 아버지 친구였던 톨스토이와 결혼한 소피아는 열정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재능있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평생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합니다. 하루 다섯 시간도 자지 못한채 남편의 원고를 교정하고 편집을 했던 그녀였지만 끝내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자 정신병에 걸려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불안해진 그녀의 신경질적인 모습만 기억하는 사람들은 톨스토이를 결혼생활의 불쌍한 피해자로 알게 된 것이죠.
‘천재를 키운 여자들’은 이처럼 시대를 이끈 천재와 결혼하여 헌신한 댓가로 자신의 성공을 포기해야만 했던 여자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술, 학문,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던 위인들의 아내를 두루두루 소개하고 있네요. 카를 마르크스를 위해 평생을 '혁명의 심부름꾼'이자 '비서'로 살아온 예니, 로뎅의 그늘 밑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소외되다 미쳐버린 카미유 클로델, 아인슈타인의 연인이자 대등한 학문적 파트너였지만 논문에 이름을 넣지 못했던 밀레바 마리치 등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아내라는 이유로 무시를 받았던 이야기들이라 무척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위대한 천재라는 것과 아내의 희생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라도 있는 걸까요? 저자는 ‘천재적인 작품’을 엄청난 노력의 종합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예술가의 눈에 보이는 작업과 ‘그림자 노동’이 합작해서 이루어낸 결과라는 뜻이지요. ‘그림자 노동’이란 주부나 비서와 같은 일에서부터 뮤즈나 동료의 관계와 사랑에 해당하는 일, 그리고 위대한 업적에 대한 온가족의 참여에까지 이르는 모든 여성들의 노동을 말합니다. 이런 ‘여성의 희생’은 온갖 문화적 산물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래전부터 여성학 연구의 공통 테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이용하고 여자는 희생당했다라는 주장은 너무 일방적이지 않을까요? 저자 역시 그렇게 오해받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희생자로서의 여성을 다루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잠재된 생산력을 발굴하기 위해서라고 집필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용당하는 동안 여성들이 함께 잘못한 점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하고 있구요. 이 책에 소개된 여성들은 아버지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아버지의 결정을 따르는 딸로서의 역할에 지나치게 빠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비슷한 파트너를 찾아 그에게 헌신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던 것이죠. 저자는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시대와 관습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혼자 살 수 없어 배우자가 필요한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다거나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부자 아빠 컴퍼니'의 공동창업자인 킴 기요사키(로버트 기요사키의 아내) 역시 남편과 격렬한 부부싸움 후 이혼까지 생각해 봤었는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서나 자립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현실이 너무나 뼈저리게 다가왔다고 고백합니다. 이후 별도로 투자능력을 키워 혼자의 힘으로도 충분히 경제적인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을 때에야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사랑하기 때문에 로버트와 결혼생활을 유지한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꼭 경제적인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심정적인 자립은 부부 사이에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지만 함께 함으로써 더 큰 행복을 가지는 결혼생활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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