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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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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레피아 댓글 0건 조회 931회 작성일 07-09-1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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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래 젊은 시절 조아하든 곡중의 하나가 해변의 길손이라오
내가 아마 해변의 길손일지는 나도 모른다오
나에게 바다는 겨울이 더 조았지라우
부산에 살 무렵(유학:당시 촌놈이 도시에서 공부할 경우)  미군야전복을 검게 물들여 겨울방한용으로
이용하든 갱제가 어려운 70년대  어느 겨울 바람 나들이 삼아 해운대로 갔지라우
그 곳 겨울에는 비치파라솔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지라우
파라솔아래 앉아 하염없이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3,4십대쯤되는 보따리장사 아줌씨가  술과 안주를 사련다
내래  캔맥3개와 오징어를 샀걸랑
1캔을 들이키며 바다가 품어내는 이야기소리를 듣는 그 기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를 것이다. 각설하고...
 
정말이지 그 시대의 경제촉도는 촌놈들은 끼니를 보리죽으로 떼우는 시대였노라고
말을하면 작금의 간방진 세카들은 호랑이 담배피우는소리 하지말라 할거여
 
57세전후로하여 대학을 갔다면 그 당시로는 촌놈으로는 유지라 부를만했지
지금은 어떤가? 대학은 기본이요 유학은 마음먹기에 달렸지 않은가?
이 모두가 역사에 무지한 젊은 세카들은 독재자로만 알고있는 박통의 영원한 업적이란걸
제대로 알지 못한다.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시대성을 제대로 안다면  변죽은 울린다는 정도가 아니것냐?
역사를 바로 알려면 그 시대성을 알아야 제대로 알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투쟁 좋은 말이다. 나는 감히 이렇게 이야기 하련다.
그 시대에는 강력한  방망이가 필요했다.
보리죽으로 연명하든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국가는 멋진 시나리오로 개발도상을 위해
매진할 때 였으니 더 필요한 것을 얻기위해 또 다른 덜 필요했던 것의 희생은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이 몸도 데모란 걸 많이 했다.
바로 민주화를 위해서 알고보면 덜너리 짜가였다란 걸 먼 훗날 알았다.
당시 이를 주동했던 자들는 이름만 그럴싸했지 이 놈들은 나보다 더 짜가 였는지도 모른다.
독재타도를 외치던 년놈들이 지금도 일인독제로 세습되고 있는 당시 북괴수 김일성과 손잡고
만경대에서 대한민국만세를 외쳤다면 어떻게 해석을 해야 이 년놈들을 민주화 란 이름으로
이해 하것냐?(이야기가 옆길로 가비린나)
 
아무튼 세계속의 대한민국이 건재하려면 미래지향적사고와  애국심이 충만했던 박통의 10분의1이래도
갖추어야 하리다. 
위의 글 누가 썼는지 마음에 와 닿는구만 알켜주시면 겨울바다에 가서 회한점과 쇠주한잔을 사겟시다.  
[이 게시물은 전체관리자님에 의해 2007-10-10 06:59:40 나도한마디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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