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때우는 피곤한 사회/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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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몸으로 댓글 0건 조회 822회 작성일 07-09-10 20:35본문
몸으로 때우는 피곤한 사회/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상무 | ||||
최근에 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이 조사대상 52개 국가 중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연간 근로시간이 2200시간을 넘는 나라는 한국,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의 6개국인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로시간이 가장 길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긴 시간을 일을 하고도 GDP를 취업자 수로 나누어 측정한 근로자의 생산성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68%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경쟁국인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이 각각 미국의 90%,80%,70%인 것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근로자들이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외다.
선진국보다 근로시간이 길다는 것은 수긍이 가지만 태국이나 방글라데시보다도 길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또한 근로자의 생산성이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경쟁국인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생산성이 낮다는 것을 뒤집어 말하면 동일한 급여를 받기 위해 한국의 근로자들이 경쟁국의 근로자보다 긴 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경쟁국의 근로자에 비해 먹고 사는 게 그만큼 더 피곤하다는 뜻이다.
생산성에 차이가 나는 요인은 다양하다. 우선 일하는 도구의 성능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땅을 파는 일을 포클레인으로 하는지 삽으로 하는지에 따라 생산성은 천양지차다.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과 근로자의 숙련도에 따라 생산성에 차이가 발생한다. 굼뜬 초보와 민첩한 숙련자간의 차이는 의외로 크다.
두 사람 이상이 공동으로 일을 하는 경우에는 협업을 얼마나 잘 조율하는지에 따라서도 생산성에 차이가 난다.
재능에 따라 역할을 잘 분담시키고 멋진 오케스트라처럼 서로가 한 마음으로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도록 효율적으로 조율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서로가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구조가 되면 들인 시간에 비해 결과물은 떨어지게 된다.
또 성과 측정과 보상 체계가 잘못되어 냉소적인 사람이 늘어나고 겉으로만 일을 하는 척하고 남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이 많아져도 생산성은 낮아진다.
일하는 방식에 대한 외부의 규제가 많아도 생산성은 낮아진다. 일을 시작하기 위해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면 정작 일을 해야 할 시간에 인가를 받으러 돌아다니느라 일이 지체된다.
또 일을 하는 방법을 세세하게 규제하면 정작 일을 하는 사람이 현장에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려는 의욕이 저하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더라도 그것을 실현하기 힘들어진다.
산업이나 기업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평균적으로 보아 요즘 우리기업의 생산설비가 경쟁대상 국가의 기업에 비해 뒤진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산업에 따라서는 첨단기술을 체화한 세계 최고의 설비를 갖춘 산업과 기업들이 즐비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과 같은 경쟁국에 비해서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주요 원인은 좋은 설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거나 협업을 조율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이고, 규제가 불합리하고 과도한 데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이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긴 근로시간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 근로자의 근면성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관성에 따라 일하고 몸으로 때우는 아둔한 사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소득수준과 삶의 질이 높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우리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비효율과 불합리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
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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