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물림의 소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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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책상물림 댓글 0건 조회 1,851회 작성일 07-09-03 13:18본문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라는 말은 익히 알았지만, ‘아카데믹칼라(academic collar)’란 말은 미국 유학 가서 처음 들었다. 와이셔츠 깃이나 소매 끝이 낡아빠져도 내색하는 법 없이 교수들이 태연하게 학교를 오가는 옷차림새라 한다.
교수직을 선망해서 공부하러 온 처지라 그것도 멋있어 보였다.
“글 읽어 가난함이야 그 뉘라 흉을 보랴”면서 읊조리던 조선시대 한미한 선비처럼, 미국 대학교수들도 글읽기 삼매경에 빠져 기꺼이 박봉을 감수하는구나 싶었다.
아니, 온전한 와이셔츠를 입을 형편인데도 교수들은 오나가나 좀 별난 사람들이니, 남과 다른 차이를 보여주려 함일 수도 있다.
‘차이(distinction)’라는 영어 낱말은 ‘품위’라는 뜻도 아울러 갖고 있음이 말해주듯, ‘잘나가는’ 사람들이 예상 밖으로 소박한 생활 모습을 보여주어, 결과적으로 보통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다지 않던가.
내가 대학교수가 되고서 알았는데, 앞의 경우가 맞는 말이었다.
경제학 입문서가 세계적으로 통용된 까닭에 인세(印稅)로 백만장자가 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같은 아주 드문 경우 말고는, 미국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가난하다.
국민소득과 대비하면 한국의 대학교수가 봉급을 더 받고, 사회적 대접은 미국 교수가 우리 근처에도 못 온다.
사람은 양면성을 타고나는 법인지, 후대(厚待)를 받고도 나는 교직 반생 내내 비교의 고민에 빠져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렸다.
돈 많은 부자도 항상 남들보다 적게 가졌다는 생각에 몰린다던데, 책상물림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책읽기를 좋아해서 교수가 된 사람이 웬 돈타령이냐, 남들은 꼬집을 것이다.
임란(壬亂)의 질곡에서 국란(國亂)을 수습해준 공덕으로 ‘하늘이 내린 재상’이라 공경 받는 유성룡같은 선현들이 “사람 삶이란 자신의 뜻에 맞는 것이 귀할 뿐 부귀가 어찌 귀하겠는가”고 타이르지 않았느냐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돈이 대학교수 되기의 필수조건임은 근세 독일의 대학자 막스 베버가 일찍이 설파한다.
대학교수가 되자면 독일어 알파벳으로 ‘G’ 넷이 필수라 했다. 학문이 직업이기 때문에 ‘공부머리(Genie)’와 함께 그 장기 수행에 필수적인 ‘건강(Gesundheit)’을 갖추고, 오래 기다린 끝에 마침내 교수 자리를 얻는 요행인지 ‘기회(Gelegenheit)’인지를 만나야 한다. 그러자면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돈(Geld)’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 간다고 팔아먹었지만 성가할 때 이미 부모가 사준 집이 있었다. 차차 나이를 먹자 날로 가중되는 자녀 교육비가 문제였다.
지병 때문에 손을 놓기까지 약국을 꾸렸던 아내에게 기댈 도리밖에 없었으니, 속절없이 ‘등처가’ 곧 “아내를 등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신문이나 잡지에 글깨나 적어서 간헐적으로 원고료 부수입을 얻긴 했지만, 푼돈이라 성에 차지 않았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자기방어 본능이 작동하는 법. 형편대로 살아야 한다며 안분자족(安分自足)의 구실만 잔뜩 쌓기 시작한다.
아파트에 살던 시절의 일화. 이제는 노총각이 된 아들이 중학 1학년으로, 하루는 “아버지 자가용이 동네에서 제일 똥차”라며 불평하는 말을 건넨다.
남 눈치 보기가 일상화된 그 동네 삶은 “그 집 평수에 그 자동차”같은 통념이 통했다. 그리고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중산층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은 자동차 회사가 차차 크게 개발해 나가는 차종 순서에 따라 자가용을 바꾸어 굴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우리 자동차 산업의 산 역사가 만든 포니가 서울거리의 주종이었던 데 이어, 엘란트라가 등장하자 내남없이 그 차로 옮긴다. 쏘나타가 나오자 역시 같은 광경이었다.
보이지 않는 상관관계를 감안할 때, 무엇보다 살고 있는 집 평수에 견주어 내 차가 턱없이 작고 낡았다는 말이었다.
남들이 중형을 탈 때도 겨우 중소형에 눌러앉은 것은 삶은 내실(內實)에 있지 외화(外華)에 있지 않다고 단단히 자기방어를 하던 참이라, 아들에게 점잖게 한마디 해주었다. “큰 차 탄다고 사람이 더 행복해지는가?”
교육자답게 나는 좋은 말을 해주었다고 믿었다. 얼마 뒤 아내가 아들의 반응을 전해준다. 부자간 대화 바로 뒤에 제 어머니에게 와서 한 말이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것.
돌이켜 생각하니 아이의 말은 세상의 변화를 예감한 말이었다. 살기는 전셋집 신세를 면치 못해도 자가용은 큼직한 것부터가 요즘 세태라 하지 않는가.
아들에게도 먹혀들지 않을지언정 안분을 정당화하는 내 구실 쌓기는 도리 없이 계속된다.
이를테면 경제적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골프채를 잡아 볼 엄두를 내지 못했으면서도 그 사회적 금기만을 마치 내 경우인 양 마음속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식이다.
삼성전자에서조차 ‘출세하려면 주식, 골프도 조심해야 한다’는 기사도 내 퇴행성 생활관 구축에 도움이 되었다.
“삼성 임직원은 능력과 실적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면도 지속적으로 관찰해서 평가한다”는 내용이다.
한번 맛들이면 협력업체의 골프 접대에 빠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 했다. 이 점은 미국 정계의 몸조심과도 같은 맥락이다.
초호화 골프 접대를 받아 정계에서 불명예 퇴진한 토머스 딜레이(Thomas Delay) 전 미국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의 로비 스캔들을 계기로 미국 정치인들도 골프를 멀리하게 됐다는 것이 2006년 봄의 외신 보도다.
일생일업(一生一業)의 교직을 어제 8월 말로 마감한 이제야 그 말뜻을 알아차리겠다.
생전에 내가 따랐던 서양화가 장욱진은 교직에 종사하는 후배들이 찾아와 생활 형편을 불평하면 항상 내뱉는 말이 있었다.
“비교하지 말라.” 이것 말고는 마음 씀씀이가 자못 퇴행적인 내 사람됨을 구제해줄 말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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