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내 파룬궁 고문 실상 알리는 기자회견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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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권보고 댓글 0건 조회 805회 작성일 07-07-06 22:46본문
중국내 파룬궁 고문 실상 알리는 기자회견 열려 | |
찰스 리, 가네꼬 요꼬 "한국인 5만명 서명이 구원의 힘" | |
등록일: 2007년 07월 06일 | |
한국 법정에서 중국 내 파룬궁 탄압을 증언하기 위해 일본 국적의 가네꼬 요꼬(중국명: 뤄룽, 43세)여사와 미국 국적의 찰스 리(중국명: 이상춘, 남, 42세)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4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증인 심문을 마친 이들은 다음날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 참석, 중국 감옥과 노동교양소(강제노동수용소)에서 그들이 겪은 고문과 학대 실상을 알렸다. | ||||
전단지만 배포했지만 '노동교양 1년6개월' 이들은 지난 1999년 7월 장쩌민 당시 중공주석의 명령으로 금지된 중국전통 기공인 파룬궁의 수련자들이다. 가네꼬 요꼬 여사는 2002년 5월 중국에 입국한 날 베이징에서, 찰스 리 박사는 2003년 1월 광저우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체포됐다. 헤이룽장성 출신인 요꼬 여사가 체포 전에 한 활동은 천안문 광장으로 가는 길에 행인들에게 전단지 몇 장을 나눠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요꼬 여사는 체포됐고, 그녀는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당시 중국 국적이었던 요꼬 여사는 체포 한 달 후 노동교양을 받았다. 공안(경찰)이 결정하는 노동교양 제도는 행정처벌이긴 하나, 처우는 일반 형사범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파룬궁 수련자들의 경우,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간수들의 고문과 일반 재소자에 의한 학대에 시달리게 된다. 요꼬 여사는 수감 중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맞았다고 전했다. 체포 직후 베이징 해전구 간수소의 지정병원에서 길이 2m 넓이 50cm인 고문전용침대인 '사인상(死人床, 십자모양의 침대)'에 결박당한 채 사흘간을 방치되어 있었다. 요꼬 여사는 “보통 사인상에 7시간 이상 결박되면 죽는다고 합니다. 많은 수련자들이 이 고문으로 죽었습니다.”고 말했다. 공안은 요꼬 여사가 실신한 후에야 풀어줬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베이징 공안병원에서 다시 20일간 침대에 묶인 채 다시 죽음의 고비를 맞아야 했다. | ||||
베이징시 여자노교소에 갇힌 요꼬 여사는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에 시달리며, 강제노역을 해야 했다. “세뇌반에 갇힌 한 파룬궁수련자는 2개월 간 수면 박탈을 당해 결국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당시 함께 수감됐던 수련자 10명 중 4명이 같은 고문으로 결국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요꼬 여사는 “가장 두려웠던 것은 깊은 밤에 간수들이 수련자들을 데려간 후, 그들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라 전했다. 그녀는 일본 언론을 통해,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이 장기적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돌아오지 않은 수련자들이 바로 그 대상이 됐을 것이라 추측한다고 전했다. 또 2002년 10월, 노교소 내에서 파룬궁수련자들만 전원 신체검사를 받은 일도 있었는데, 이 신체검사도 장기적출의 사전검사라고 추측한다고 밝혔다. 체포 당시 미국 시민권자였던 찰스 리 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광둥성 광저우시의 중산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1991년 도미, 일리노이대, 하버드대 등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미국 의사자격증까지 받은 엘리트다. 백혈병으로 장쑤성 고향에서 투병 중인 노모를 뵙고, 중국 내에서 파룬궁 실상을 알리려는 ‘의도’를 가졌던 그는 ‘방송시설불법사용 예비죄’란 혐의로 기소돼, 단지 서너 시간 재판으로 3년형을 언도받았다. 리 박사는 감옥에서 시달렸던 ‘피더후이(批鬪會, 비판투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방에 사람을 가둬두고 죄수들을 시켜 온갖 인격적 모독과 육체적 폭력을 가합니다. 피더후이는 중국공산당이 반우파투쟁(57-58년), 문화대혁명(66-76년) 등에서 사용한 방식으로 당시 많은 이들이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가 속출했습니다. 저는 이에 항의해 단식을 했으나, 단식은 또 다른 박해 구실이 됐습니다. 침대에 결박당한 채 고문의 일종인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습니다.” | ||||
실제 감옥이나 노교소 내에서 파룬궁 수련자로 하여금 수련을 포기하도록 만든 재소자는 2개월 감형을 받고, 이들에게 동정을 보인 재소자는 형기가 연장된다고 리 박사는 설명했다. 리 박사는 중공이 사용한 가장 잔인한 방법은 병든 노모를 이용한 것이었다고 했다. 간수들은 수련을 공개적으로 포기하고, 3년 판결에 승복하면 석방 날짜를 앞당겨 주겠다는 회유책을 썼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남은 생을 모욕 속에서 살고, 정신적으로 공산당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파룬궁 수련을 하다 강요를 못 이겨 수련을 포기했던 노모가 누구보다 그를 지지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노모는 그가 체포된 후 충격을 벗어나지 못해 끝내 사망했고, 그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기자회견 도중 찰스 리 박사는 갑자기 미국 만화영화 ‘심슨네 가족’에 나오는 호모심슨 캐릭터로 만든 실내화를 꺼내들었다. 2006년 3년 수감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중고로 구입한 물건이었다. 바로 그가 섭씨 41도를 오르내리는 난징 감옥 15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재소자 60명과 함께 만든 물건이었다. 이것은 그가 전날 서울행정법원 파룬궁난민재판에서 판사들에게도 보여줬었다. | ||||
“한국인 5만명 지지서명에 감사하다” 찰스 리와 가네꼬 요꼬는 미국과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각 국 정부, 전 세계 NGO 단체의 서명과 구명 활동으로 자신들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노동교양 결정의 경우 어떤 특별한 사유 없이도 공안이 임의대로 기간을 연장 할 수 있다. 찰스 리는 당시 한국에서 사용됐던 구명활동 전단지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면서 “한국에서만 5만 명이 저의 구명활동에 서명해 주셨습니다.”라고 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가네꼬 요꼬는 일본인과 결혼만 하고 일본 국적 취득 전이었음에도 “일본 국회의원이 직접 중국을 방문해 항의를 해주셨다.”고 밝혔다. 리 박사의 경우도 베이징 주재 미국 영사관 직원이 한 달에 한 번 면회를 해 육체적 학대가 가해졌는지를 확인하고, 면회 후에도 항상 전화로 상황을 점검했다. 하지만 리 박사와 요꼬 여사는 외국 정부와 언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자신들도 고문과 학대를 피할 수 없었다며,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의 박해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임을 강조했다. 그들은 한국 법정에서 파룬궁 난민 문제로 재판이 진행 중인 것을 염두에 두어, 한국 국민과 정부가 현명한 선택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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