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투표'로 찍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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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자투표' 댓글 0건 조회 1,878회 작성일 07-05-23 12:33본문
'전자투표'로 찍어요
제00대 대통령선거일, 투표소에 들린 김병탁(32)씨는 확 달라진 풍경에 잠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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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명부를 확인하는 데까진 종전과 달라진 게 없었지만, 투표소 직원이 내민 것은 투표용지가 아니라 전화카드 비슷한 투표카드였기 때문이다. 카드를 받아들고 들어간 기표소에는 인주와 기표봉 대신, 은행의 현금지급기처럼 생긴 전자투표기가 놓여 있었다. 투표권을 넣자 투표기 화면에 후보들의 기호와 얼굴사진, 이름, 소속정당이 떠올랐다. 김씨는 자신이 선택한 후보의 얼굴사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그러나 정작 김씨가 더욱 놀란 것은 그 뒤였다. 투표를 마친 다음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갔다 오후 7시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자 자신이 투표한 000후보가 당선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자정이 넘어야 겨우 당선윤곽이 드러났던 과거의 대통령선거 경험을 돌이켜보며 김씨는 전자투표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 상황은 올해 있을 제16대 대통령 선거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제17대 대통령선거 때엔 현실화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제18대 대통령 선거 쯤에는 투표소에 직접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도 투표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른바 `디지털투표'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8월30일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선거를 전자투표기를 통해 치렀다. 대통령 후보를 뽑는 16개 시·도 순회경선과 4월20일 전당대회 때도 전자투표를 할 예정이다. 또 젊은 유권자들을 겨냥해 투표의 일부를 인터넷으로 진행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도 전자투표 시스템을 도입해 올해 전국에서 치러질 교육감 선거부터 사용할 예정이다.
중앙선관위 조해주 선거과장은 “올해 있을 지방선거의 보궐선거 등 규모가 작은 선거에서부터 시범적으로 도입해 보고, 효과가 입증되면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등에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자투표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집계가 신속하다는 점이다. 전자투표 시스템을 개발한 대우정보시스템의 임경태 과장은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8700여명의 표를 집계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며 “도입 초기에는 큰 비용이 들겠지만 전국 단위의 선거를 몇번만 치르면 그 비용은 상쇄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투표함이나 투표용지를 만들거나 교사들을 개표요원으로 동원할 필요도 없고, 밤을 새워 개표 방송을 봐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990003 전자투표의 종착점은 온라인으로 치러지는 인터넷투표다. 집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투표 사이트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넣고 선관위가 나눠준 개인인증번호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투표하는 것이다. 별도의 번호 없이 지문 등 신체적 특징만으로 본인 확인을 할 수도 있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 사이버정보문화연구회 수요포럼에서 허운나 의원(민주당)은 인터넷투표의 장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젊은 네티즌의 선거와 정치 과정에 대한 참여를 확대시킬 수 있고, 획기적인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상에만 머물렀던 인터넷을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하다.”
인터넷투표 기술을 개발한 PIB코리아(www.pibkorea.co.kr)의 안상욱 대표는 “인터넷투표를 할 경우 관련 비용이 현재의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든다”며 “공직선거뿐만 아니라 각종 단체의 선거도 인터넷으로 전환하면 사회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터넷투표로 가기에는 넘어야 할 벽이 높다. 기술이 미흡해서가 아니다. 해킹이나 대리투표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현재의 기술로도 얼마든지 방지가 가능하다는 것이 개발업체들의 공통적인 답변이다.
문제는 정치의식과 정치풍토다. 민주당 전당대회의 디지털화를 주도했던 박광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재의 정치 풍토에서는 인터넷투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인터넷투표가 실시될 경우 사전조작, 집계조작, 대리투표, 해킹 등에 대한 무분별한 고발과 주장이 난무해 투·개표과정에 일대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후진적인 정치문화가 결국 정치 과정의 디지털화·첨단화까지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외국의 인터넷투표
투·개표 과정의 디지털·온라인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가장 앞서 가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애리조나주 민주당이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2000년 3월 대선후보를 뽑는 선거를 인터넷으로 치렀다. 그해 8월 소수정당인 개혁당도 대선후보 선출 선거를 인터넷으로 치렀다.
인터넷 투표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애리조나주 민주당 선거의 경우 1996년 예비선거에서는 1만2800여명만이 참가한 반면, 2000년에는 인터넷투표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8만5970명이나 참가해 투표율이 7배나 늘었다.
정당 뿐만이 아니다. 미국 코넬대학교도 2000년 9월 학생대표를 인터넷으로 뽑았고, 미 약사협회는 지난해 8월 상임이사 선출을 인터넷으로 치렀다.
미국에서는 일렉션닷컴(www.election.com)과 보트히어넷(www.votehere.net) 등 인터넷 투표사이트들이 연간 1만여건 이상의 각종 선거와 투표를 대행하고 있다.
영국 집권 노동당도 이번 봄에 열리는 지방선거에 시험적으로 인터넷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다음번 총선은 아예 온라인으로 치른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독일도 2010년 이전에 온라인으로 총선을 치른다는 기본계획을 세웠다.
투·개표에 전산화를 도입한 나라는 더 많다. 영국, 브라질, 벨기에는 물론 필리핀과 베네수엘라 등에서도 전자기표봉이나 마그네틱 투표카드 등을 다양하게 도입하고 있다.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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