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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대장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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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따이한 댓글 0건 조회 1,858회 작성일 07-03-2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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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대장의 최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6월 오후, 갑자기 헬기들이 줄을 지어 날아오더니
내가 속한 중대를 낯선 마을로 데려갔다. 김제 평야 같이 광활하게 펼쳐진 논에는 짙푸르게
자란 벼가 정강이 높이까지 솟아있었고, 희뿌연 논물이 넉넉하게 채워져 있었다.

띄엄띄엄 마을이 보였다. 숲 속에 묻혀있는 마을들이 송곳 같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기분 나쁜 마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건너편 마을을 사정없이 폭격하는 전투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네 대의 미군 전투기가 마치 독수리처럼 내려꽂히며 사정없이 폭격을 가하고 있
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나무 조각이 야자수 숲 위로 날아오르고, 연기가 마을을 자욱하
게 덮었다.

"따다다다닥. . . 쾅 . . . ".

직각으로 마을을 향해 내리꽂힌 전투기가 다시 수직 상승을 했다. 멀리서 보기엔 참 멋진
장관이었다. 이런 걸보고 전쟁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구나 싶었다.

전투기 공격이 끝나자 포병사격이 뒤를 이었다. 전투기가 뿜어내는 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둔탁하지만, 야포의 포탄이 작렬할 때 내는 소리는 날카롭게 째졌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이 날아다니듯 마을과 마을 사이를 쏜살 같이 뛰어 다녔다.

4개 소대가 마을을 하나씩 배정 받았다. 모두가 전략촌이었다. 억센 가시나무가 빽빽하게 마
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울타리에는 동그란 총구멍이 촘촘히 뚫려 있었다. 중대본부는 제4소
대와 함께 장갑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앞으로 전진하면서도 온 신경은 뒷마을로 곤두
서 있었다.

장갑차 위에 설치된 기관총이 뒷마을에 대고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사수가 공포감을 느낄
수록 기관총 소리도 요란했다. 뒷마을에서 총탄이 무수히 날아왔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를
꺾을 때 내는 "딱" 소리만 내고 여운을 내지 않는 총알은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들이었다. "
따쿵-"하고 여운을 남기는 총알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총알이었다.

M-16 소총의 초속은 마하 2.8이다. 소리보다 2.8배 빠르다. 바늘에 실 따라 가듯, 총알이 먼
저 나가면 그 뒤를 이어 총소리가 따라갔다. 총알을 맞은 사람은 소리를 미처 듣지 못한 채
의식을 잃게 된다.

중대본부와 4소대는 피해 없이 마을을 점령했다. 빈 마을이었다. 장갑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제2소대 무전병의 울먹이는 소리가 수화기에 울려 퍼졌다. 소대장이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웃 마을에 도착하여 장갑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 뒷마을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 붓는 베트콩의 총알에 머리를 맞은 것이다.

모두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정신나간 얼굴들! 초점 없는 동공들! . .하지만 한 사람의 죽
음에 대해 깊이 애도할 여유가 없었다. 중대장은 기지에 남아있던 부중대장을 불러 제2소대
장의 자리를 메우도록 조치했다.

부중대장은 부대에 남아 작전지역에 보급품을 보내주는 잡일을 맡고 있었다. 식량도 포장하
고, 고국에서 온 편지도 포장해서 헬리콥터장으로 가져가 작전지역으로 보내주는 일이었다.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부중대장에게 청천병력(?) 같은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를 위해 특별히 헬기가 마련됐다. 그 역시 장갑차를 타고 질퍽한 흙탕물을 가르며 마을로
들어왔다. 오는 동안 베트콩이 집중 사격을 가했다. 차에서 내린 그의 얼굴이 사색이었다.

그는 나보다 1년 선배로 성격이 유순하고, 행동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나를 볼 때마다 씨익
- 웃던 그였지만, 그날만큼은 얼이 빠져 있었다.

  숲으로 뒤덮인 마을에 모기떼가 극성이었다. 손으로 아무 곳이나 문지르면 수십 마리씩
잡혔다. 톡톡하기로 이름난 정글용 작업복을 뚫고 들어와 마구 쏘아댔다. 독한 모기약으로
얼굴과 손 그리고 작업복 위에 범벅을 해도 떼거지로 달려드는 모기떼에게는 소용이 없었
다. 모기를 막는 방법은 정글용 가죽 장갑을 끼고 판초우의를 뒤집어쓰는 것이었다.

야간에는 방어 초소들을 잘 선정해야 했다. 전사한 소대장과 친분이 있던 제4소대장은 슬퍼
하느라 아무 일도 못했다. 내가 그를 대신했다. 병사들에게 초소를 잡아주고 대응 요령을 꼼
꼼히 확인했다. 임무가 끝나자 잠이 쏟아졌다. 배트콩이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다. 언제 공
격해올지도 모른다. 이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으면서도 쏟아지는 잠을 가눌 길 없었다.  

전장의 선머슴, 부중대장이 그날 밤 전과를 올렸다. 논 속을 포복해서 마을로 접근해오는
월맹 정규군 3명을 사살한 것이다. 공장에서 갓 뽑아낸 소총 세 자루와 적탄통 한 개라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튿날, 병사들은 대나무 작대기를 뾰족하게 깎아 가지고 마을 바닥을 촘촘히 찔러댔다. 분
명히 땅속에는 비밀 땅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있다 해도 그렇게 찔
러서 발견될 땅굴이 아니었을 것이다.

불과 3일간이었지만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분 나쁜 전투를 치렀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다. 작업복에 갯벌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헬리콥터를 기다라는 동안 병사들은 네
전우의 시체를 나란히 눕혀 놓고 C-레이션 깡통을 따서 시장기를 메우고 있었다.

기지로 돌아왔다. 밤이 돌아왔다.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소대장의 죽음이
실감됐다.

그는 몇 달 전에 많은 전과를 올려 고국으로 포상 휴가를 다녀왔다. 그때부터 많은 여학생
들과 알게 되어 펜팔을 맺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끝냈는데도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식당에서 오자마자 그는 편지부터 읽기 시
작했다. 틈틈이 새어나오는 소리로 보아 여고생들은 월남의 영웅, 미남의 소위를 여간 흠모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언제나 꽃 봉투가 한 뼘씩 쌓여있었다. 읽을 때는 언제나 누워서 뒹
굴었다. 기분이 좋으면 18번이 나왔다.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였다. 약간 음치이긴 해도
특유의 가락과 감정이 배어 나왔다.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마치 예배를 끝마무리하는 목사님처럼 팔을 하
늘로 치켜올리고 목을 좌우로 저어가면서 소리를 뽑아냈다. 그 모습이 갑자기 없어진 것이
다. 텅 빈 침대 위에 임자 잃은 꽃 봉투만 쌓였다.

그는 침대 밑에 귀가 쫑긋하게 올라간 귀엽고 통통한 황색 강아지를 길렀다. 주인을 잃은
첫 날부터 그 강아지는 식음을 전폐했다. 병사들이 안아주고 밥을 떠 넣어 줘도 먹지 않았
다.

매일 밤 애조 띤 울음소리를 냈다. 병사들의 마음이 짖어지듯 아팠다. 어느 날 그 강아지는
천막이 보이는 모래 언덕 위에 잠들어 있었다. 강아지의 죽음과 함께 소대장에 대한 추
억도 바닷가 모래 위에 쓰여진 글씨처럼 조금씩 조금씩 소멸돼 갔다.

                      지만원의 글
       (묵념공간에서)  -  따이한
[이 게시물은 전체관리자님에 의해 2007-10-10 06:53:00 나도한마디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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