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강찬수 기자] "지하 100m 깊이 암반수라서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마셨는데 우라늄이라니…."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장평1리 이장 이권재(50)씨는 지난달 20일 환경부로부터 지하수를 먹지 말라는 통보를 받은 때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 이씨는 "물에 가라앉는 것이 있어 몇 년 전 검사를 받은 적은 있지만 별문제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마을 주민 180여 명은 한 달째 급수차가 실어다 주는 물로 식수를 해결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 지역 지하수를 폐쇄한 사실을 한 달이 지난 21일에야 공개했다. 환경부가 지하수를 폐쇄한 이유는 지하수가 방사성 물질인 우라늄에 오염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난해 전국 93곳 지하수의 수질검사를 했다. 그 결과 장평1리 주민들이 12, 13년 전부터 마셔 온 지하수에서 1640ppb(ℓ당 1640㎍)의 우라늄이 검출됐다. 국내 기준치는 없지만 미국의 음용수 기준치(30ppb)의 54배에 해당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보다는 109배나 된다. 기준치는 70년 동안 매일 2ℓ씩 마실 때 100만 명 가운데 1명꼴로 암에 걸리는 수준이다. 따라서 기준치의 수십 배 농도인 물은 단기간 마시더라도 체내에 축적돼 신장 이상이나 암 발생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은 정부가 조금만 서둘렀다면 오염된 물을 마신 기간이 4년 이상 줄 수 있었다기에 더욱 불쾌하다. 환경부는 2003년에 장평1리에서 4, 5㎞밖에 떨어지지 않은 부발읍 신하동과 이천시 사음동 지하수에서 우라늄이 다량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1999~2002년에 실시한 1차 조사 결과다. 본지는 이천시 전역에 대한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보도(본지 2004년 4월 9일자)를 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1차 조사 결과 의심이 가는 지역에 대한 정밀검사만 했어도 오염된 물을 먹는 기간을 4년 이상 단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적거린 정부=정부는 이 지역 지하수 오염 가능성을 알았지만 예산 탓만 하며 정밀조사를 미룬 것으로 드러났다. 이천시 남오철 상수도사업소장은 "(2003년 오염 가능성을 알았지만) 수질 기준에도 없는 데다 환경부의 지침도 없어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환경부 박응렬 토양지하수과장은 "2003~2005년에는 예산이 없어 조사도 못했다"며 "앞으로는 10년간 매년 150곳씩 조사하고 문제가 된 지역엔 조사 밀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산 핑계를 대기에는 수질검사 비용이 너무 싸다. 지하수 한 곳의 수질검사를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60만원가량이다.
시민환경연구소 안명옥 부소장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 재산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 역할"이라며 "매년 200조원이 넘는 세금을 거두는 정부가 60만원밖에 들지 않는 정밀조사를 예산 탓을 하며 미룬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부가 문제가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 분위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이천.여주 지역 7곳을 포함해 전국 24개 지점에서 미국의 잠정 기준인 ℓ당 4000pCi(피코큐리)가 넘는 라돈이 검출됐다. 지하수 라돈은 물 자체를 마셨을 때의 위험보다는, 공기로 휘발된 라돈을 호흡했을 때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규제하고 있다.
◆왜 오염됐나=자연 방사성 물질 농도는 지역의 지질 여건에 크게 좌우된다. 우라늄은 화강암.변성암 지역에서, 라돈은 화강암 지역 등에서 높게 나타난다. 국내에서는 대전과 이천 지역에서 우라늄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질자원연구원 성익환 박사는 "지하수의 방사성 물질은 지층의 맥(脈)에 따라 갑자기 많이 증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envirepo@joongang.co.kr
[이 게시물은 전체관리자님에 의해 2007-10-10 06:52:08 나도한마디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