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중도'에 대한 얘기가 많다.
진보와 보수 두 진영 모두 중도의 시대적 의미를 강조한다.
중도가 '사쿠라'로 몰리던 예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세상 변화다.
광복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보혁갈등이 심하다 보니, 좌우 극단 사이의 충돌로 인한 파국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외곬 좌파 혹은 우파 정책으로 한국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모든 국가들을 적자생존으로 몰아 넣는 세계화는 어느 나라고 적극적인 성장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지만 또한 소극적인 분배정책으로 살아나갈 수 없게 만든다.
독일의 마르켈 우파 정부가 사민주의 기조를 포기할 수 없듯이, 브라질의 룰라 좌파 정부도 신자유주의 노선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의 실패와 자본주의의 성공이 극명하게 갈리는 지구인류적 대전환의 와중에서 여전히 경쟁과 효율 못지 않게 참여와 평등의 가치는 중요하다.
뉴레프트에 대항하여 뉴라이트가 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중도라는 이름 아래 진보와 보수 사이의 상생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돌이켜 보면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면,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가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편향에 대한 뉴레프트의 도전이 다시 좌편향에 대한 뉴라이트의 재결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보혁갈등이 바로 중도의 입지를 넓혀주고 있다.
일부 식자들은 우리 사회가 이념과잉의 상태에 있다고 지적한다.
분명 이념대립은 있지만 이것은 과잉이라기보다 표출이다.
언제 한국사회에서 좌파가 진보를 마음 놓고 주장한 적이 있었던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만 해도 잡혀가고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 바로 어제그제의 일이 아니었던가. 물론 주사파와 같은 교조적 좌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레드 콤플렉스' 아래에선 합리적 진보조차 살아남기 어려웠던 것이 우리의 이념적 자화상이었다.
한국사회에 좌파와 우파는 누군가. 흔히 친북반미가 좌파요 반북친미가 우파라고 한다면 이는 매우 우매한 발상이다.
북한의 수령식 사회주의가 지니는 전근대성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이 '보수꼴통'이요, 북한을 비판하는 사람이 '진보개혁'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동맹을 선호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친미냐 반미냐는 단순한 이분화보다 우리의 국익을 신장하기 위해 미국을 상대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보다 현명할 수 있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것이 보수라면 그 혁파를 지향하는 것이 진보라 할 수 있다.
보수는 만들어진 체제를 지키려 하고 진보는 기존체제를 바꾸려 한다.
예언자적 미래전망을 진보가 갖는다면, 보수는 사제적 현실해석을 중시한다.
결국 기득권을 버리느냐 아니면 집착하는가에 따라 진보와 보수는 바뀔 수 있다.
어제의 개혁이 보수가 되고 오늘의 보수가 개혁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좌우극단을 거부하면서 진보와 보수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 중도다.
중도는 단순한 좌우 사이의 산술평균이 아니다.
그것은 중용의 정신을 가지되 극단의 균형을 맞추는 형평의 이념이다.
음식에 비유하면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것, 적절히 간이 맞는 것 그것이 바로 중도다.
중도의 기능은 좌우의 시각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정책적 대안에 대해 간을 맞출 수 있다.
현대의 축구는 일종의 '토털 사커'다.
공격수와 수비수 역할을 구분하지만 '링커'를 중심으로 총공격과 총수비가 이뤄지는 것이 현대축구다.
일종의 링커로서 중도를 그려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중도의 중요성 못지 않게 한계도 있다.
독자적 색깔있는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정치에서 중도가 성공하지 못한 까닭이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예비후보자들마다 정작 진보와 보수의 속살은 감추고 '실용중도' 혹은 '중도통합'을 외친다.
일종의 득표전략이다.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이념적 지평에서 볼 때 예전과 같은 색깔칠하기로 국민을 미혹하기 어렵다.
다만 북한의 핵문제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관련하여 이념논쟁이 정책대결을 흐리게 할 수 있다.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대통령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극단적 좌우 대결구도를 넘어설 수 있는 정책마인드를 우리 모두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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